美육류수출협, 한겨레에 ‘백지수표’ 광고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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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4일 임원회의서 거부 결정…고광헌 사장, 사원들에게 메일

미국 쇠고기 관련 업체들의 이익단체인 미국육류수출협회가 최근 한겨레 측에 파격적인 광고금액으로 ‘미국산 쇠고기 광고’를 실어줄 것을 제안했지만, 〈한겨레〉 경영진이 24일 열린 임시 임원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거절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은 고광헌 〈한겨레〉 대표이사가 25일 오전 한겨레 사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자세한 경위가 알려지게 됐다.


이메일에서 고광헌 대표이사는 “미국육류수출협회가 한국 내 지사를 거치지 않고 제3의 홍보 에이전시를 통해 우리 신문에 미국산 쇠고기 광고를 내고 싶다는 제의를 했다”며 “홍보 에이전시 관계자가 7월 17일 우리 회사 광고국에 찾아와 ‘〈한겨레〉에 미국산 쇠고기 광고를 싣고 싶다. 얼마면 되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어 고 대표이사는 “미국육류수출협회는 그동안 주로 ‘조중동’ 에만 광고를 하고 우리 신문에는 광고를 거의 하지 않았다”며 “지난해에도 딱 한차례, 1500만원을 내고 광고를 한 게 전부였다”고 설명했다.

고 대표이사의 이메일 내용에 따르면 광고제의를 받은 〈한겨레〉 광고국 직원들은 ‘백지수표’와 같은 파격 제안에 당황했고, ‘촛불 집회’ 정국에서 독자들과 시민들이 보내준 성원과 지지를 고려해 미국산 쇠고기 광고를 실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광고국 직원들은 사실상 광고 게재 거절의 의미로 ‘광고 10차례에, 광고료 10억 원’의 제안을 미국육류수출협회 광고를 대행한 홍보 에이전시 쪽에 제시했다.

그런데 홍보 에이전시 쪽은  “미국육류수출협회와 협의하겠다”는 사실상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결국 이같은 미국육류수출협회 제안은 〈한겨레〉 경영진들에게 공식 보고됐고 24일 열린 임시 임원회 회의를 통해 만장일치로 광고를 싣지 않기로 결정하고 일단락했다.

이에 대해 고 대표이사는 “만장일치로 광고를 싣지 않기로 했다”며 “천금보다 소중한 게 바로 ‘신의’이기 때문”이라고 광고를 거절한 이유를 밝혔다.

이어 고 대표이사는 “〈한겨레〉의 보도를 믿고 40여 차례의 광고와 신문 구독으로 우리를 성원해 준 시민들과 독자들을 생각할 때, 미국산 쇠고기 광고를 싶는 것은 그 분들과 시민사회에 대한 배신이라는 게 임원들의 한결같은 의견이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고 대표이사는 이 같은 결정을 내리기까지 경영진으로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했다.

“10억원. 미국 돈으로 100만 달러다. 큰 금액이다. 특히 악화되고 있는 경영 여건을 감안할 때 정말 놓치기 아쉬운 돈이다. 국제 원자재난 탓에 올해 신문 용지값이 20% 이상 급등했다. 촛불집회 정국 속에서 ‘조중동 광고 기업 불매 운동’의 여파가 전체 광고 시장을 위축시키면서 우리 회사도 광고가 대폭 줄었다.”

그러나 고 대표이사는 “무릇 ‘정도를 걷는다’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또 때로는 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로 〈한겨레〉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강조하며 “모든 도정에서 닥치게 될 어려움들을 극복해나가자”고 사원들을 독려하면서 이메일을 끝맺었다.

아래는 고광헌 〈한겨레〉 대표이사가 25일 사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전문이다.


존경하는 사우 여러분.
고광헌입니다.

연일 계속되는 장맛비에 댁내 별 피해는 없는지, 혹시 격무 때문에 여름 휴가도 못 가시는 분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늘 건강부터 먼저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사우 여러분께 ‘촛불집회 정국’ 속에서 높아진 우리 신문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얘기 한 가지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미국육류수출협회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미국의 쇠고기 생산업체와 정육 가공업체, 수출업체 등이 설립한 이익단체로, 덴버에 본사가 있으며 서울에도 지사가 있습니다. 이 단체가 한국내 지사를 거치지 않고 제 3의 홍보 에이전시를 통해 우리 신문에 미국산 쇠고기 광고를 내고 싶다고 제의를 해왔습니다. 홍보 에이전시 관계자가 7월17일 우리 회사 광고국에 찾아와 “〈한겨레〉에 미국산 쇠고기 광고를 실고 싶다. 얼마면 되겠느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미국육류수출협회는 그동안 주로 ‘조중동’에만 광고를 하고 우리 신문에는 광고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에도 딱 한차례, 1500만원을 내고 광고를 한 게 전부였습니다.

말 그대로 ‘백지수표’나 마찬가지인 파격 제안을 받은 우리 광고국 직원들은 순간 당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광고국 직원들은 '촛불집회' 정국에서 독자들과 시민들이 보내준 성원과 지지를 생각할 때 미국산 쇠고기 광고를 실을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광고 10차례에, 광고료 10억원’을 홍보 에이전시 쪽에 제시했다고 합니다. 광고주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거부하지는 않고, 대신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을 사실상 거절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홍보 에이전시 쪽은 “미국육류수출협회와 협의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어떡하든 우리 신문에 광고를 싣겠다는 미국육류수출협회 쪽의 의지를 확인한 광고국은 이 사실을 경영진에게 공식 보고했습니다. 미국육류수출협회는 ‘조중동’이 아니라 〈한겨레〉에 광고를 해야 한국 소비자들을 설득하고 미국산 쇠고기를 팔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적어도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서만큼은 미국조차 ‘조중동’이 아니라 〈한겨레〉가 여론을 좌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국민의 편에서 검역 주권과 건강권 등에 관해 사실을 근거로 진실을 보도해온 당연한 결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0억원, 미국 돈으로 100만 달러입니다. 큰 금액입니다. 특히 악화되고 있는 경영 여건을 감안할 때 정말 놓치기 아쉬운 돈입니다. 국제 원자재난 탓에 올해 신문 용지값이 20% 이상 급등했습니다. 촛불집회 정국 속에서 ‘조중동 광고 기업 불매운동’의 여파가 전체 광고 시장을 위축시키면서 우리 회사도 광고가 대폭 줄었습니다. 또 자발 구독 신청 부수가 급증했다고는 하지만, 당장은 구독료 수입 증가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문 발행 부수 증가로 비용 부담이 커졌습니다.

어제 열린 임시 임원회의에서 미국산 쇠고기 광고 문제에 관해 결론을 내렸습니다. 만장일치로 광고를 실지 않기로 했습니다 천금보다 소중한 게 바로 ‘신의’ 이기 때문입니다. 〈한겨레〉의 보도를 믿고 40여 차례의 광고와 신문 구독으로 우리를 성원해 준 시민들과 독자들을 생각할 때, 미국산 쇠고기 광고를 싣는 것은 그 분들과 시민사회에 대한 배신이라는 게 임원들의 한결같은 의견이었습니다.

일일이 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한겨레 가족이라면 모두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여러분께 무한한 동지애를 느끼며, 다른 한편으로는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갖게 됩니다. 특히 힘든 광고 영업 여건 속에서 일거에 거액의 매출을 올릴 기회를 포기하고 이번 결정에 흔쾌히 동의해준 송우달 상무를 비롯한 광고국 사우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무릇 ‘정도를 걷는다’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또 때로는 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정도를 걸어가야 합니다. 〈한겨레〉가 시대의 소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모든 도정에서 닥치게 될 어려움들을 극복해내야 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버리는 순간, 얻을 것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한겨레 가족의 헌신과 열정, 능력을.

존경하는 사우 여러분.
무더운 날씨에 부디 무탈하시고, 가정에도 행복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2008년 7월25일

고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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