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강국 영국의 씁쓸한 ‘언론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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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 발효 후 ‘언론탄압’ 양상으로 번져

▲ 영국의 미디어잡지 '브리티시 저널리즘 리뷰'
“Goodbye to media freedom?” 이게 어디서 굴러온 말인가? 이 말을 듣는 혹자는 분노할 것이고, 혹자는 서글퍼 하겠지만 목청껏 “굿바이 미디어”를 외치지 못해 혀끝이 근질거리는 어떤 이도 있을 터. 그 어떤 이를 희색케 할 만한 이 표현은 다름 아닌 유럽 언론인 연합(AEJ)이 지난 2월 발표한 한 보고서의 제목이다. 내용을 보면 첫 장부터 보고서가 왜 이런 서글픈 제목을 달고 나왔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유럽의 미디어 환경이 정치, 경제적 파워로 부터 전방위적인 공격을 받으면서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는 거다. “총체적 난국”이란 이럴 때 쓰는 가장 적절한 표현일 듯싶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자유독립 언론을 위태롭게 하는 현상은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으로 언론 강국이라는 영국도 예외가 아니다. 보고서는 영국 부분에서 크게 두 가지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그동안 주류매체로써 권위를 인정받아 왔던 언론사들이 지명도를 급속히 잃어 가고 있다는 것. 두 번째는 고도의 취재기술과 가치를 지녀온 저널리즘이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물론 받아들이기 힘든 비참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기자든 프로듀서든 언론인들의 도덕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언제 직업을 잃게 될지 모르는 공포 속에 사는 언론인에게 높은 도덕성을 강요하는 것이 무리 일수도 있겠다. 섬뜩하지 않은가? 불과 3, 4년 사이에 직업을 잃은 영국의 언론인이 자그마치 6000명이나 된다니 말이다 (영국 언론인노동조합 NUJ 발표). 일손은 부족하고, 업무량은 많아지는 작업환경의 악화도 큰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권위지 가디언의 닉 데이비스는 기자는 더 이상 ‘팩트’를 확인할 시간도, 현장을 나갈 짬도 없이 사무실에 앉아 보도자료나 다른 매체의 기사를 베끼기에 급급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고 말한다. 이런 환경의 변화는 정부뿐 아니라 그 어떤 대상과의 대결구도도 어렵게 하고 있다.

▲ BBC 홈페이지

미디어를 둘러싼 일련의 부정적 현상들을 보면 영국의 미디어가 악순환의 함정 속에 빠져버린 듯 보인다. 정치권력의 공격, 불안정한 고용구조, 악화일로의 재정상황, 언론인 개개인의 과중한 업무량과 낮아지는 도덕성, 무뎌지는 비판력이 모두 일련의 연결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악순환의 구조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으로 선과 후를 구별 할 수 없다는데 있다.

한 예를 보자. 전 세계 언론계의 든든한 맏형, BBC가 얼마 전 시청자가 전화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조작했다가 발각이 돼 1억 원이라는 막대한 벌금을 물었다. (비슷한 잘못으로 GMTV는 40억, ITV는 약 120억 원을 물었다) 여왕관련 프로그램에서는 자료 화면을 잘못 사용해 책임자가 물러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맏형이라는 위치에 어울리지 않는 이런 불미스런 사고는 결국 인플레이션에도 못 미치는 낮은 수준의 수신료 인상을 불러왔고 이는 다시 BBC의 경영에 엄청난 압박을 불러왔다. 급기야 BBC는 유튜브, 애플 아이튠, 론리 프라넷 등과 거래를 시작했고, 일부 웹사이트에 광고를 허용하는 등 노골적인 상업행위를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BBC의 최근 행보에 많은 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영방송이 스스로 숨줄을 끊기 위한 자살행위를 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 수신료 넉넉하게 줄 테니 제발 공영방송 체면 구겨지게 기업에 손 벌리지 마라”하면 다행이겠지. 하지만 “상업행위를 하는 BBC를 공영방송이라고 할 수 있나? 상업 방송과 다를 바 없는 방송사에 수신료는 왜 줘야 하나” 하는 부정적 시각에 힘이 실려 수신료가 내려가거나 아예 없어져 버리면 그땐 진정한 자유×독립 언론을 어디서 찾겠느냐는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BBC뿐 아니라 재정상황의 악화는 모든 미디어 매체가 한결 같이 겪고 있는 아픔이다. 루퍼드 머독의 BskyB를 제외하고….)

이렇게 쓰고 보면 BBC의 경영악화가 매체 스스로 신뢰성을 잃어버린 데서 시작된 것 같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어쩌다 신뢰성을 잃었을까, 어떻게 하면 신뢰를 잃을 수 있을까 하는 측면에서 보면 모든 게 맞물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작환경의 악화는 도덕성과 신뢰성의 상실을 초래할 수 있다. 도덕성과 신뢰성의 상실은 다시 제작환경의 악화로 이어질 수도 있고 말이다. 영국은 지금 그 악순환의 구조를 온몸으로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 언론인을 더욱 지치게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정치권력의 입체적 압박이다. 모든 권력은 칭찬과 아부에 익숙할 뿐 감시와 비판에 약하다. 비판에 익숙한 권력은 없다. 언론이 권력에게 불편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권력은 속성상 그런 언론을 통제하려 든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발달한 언론 선진국 영국에선 쉽지 않았다. 그런데 상황이 변하고 있다. 9·11이후 영국의 정치권력이 테러리즘을 앞세워 언론에 대한 공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테러리즘에 대한 개념을 날로 확대 시키면서 대한민국의 독재정권이 한때 (아니 지금도 간간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식으로 국가보안법을 휘둘러 대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대테러 방지법’을 이용하고 있다. 영국이 치르고 있는 전쟁에 대한 보도, 영국 내 테러나 전쟁과 관련된 정부 정책, 주요 보안시설 (때로는 하찮은 시설까지도) 이나 정보 등을 잘못 건들이면 바로 기소되어 감방신세를 질 수 있는 것이다. 테러리즘에 대한 개념의 확대는 테러리즘을 조장하거나 부추기는 행위로 까지 그 개념이 확대되었음을 뜻한다. 예를 들어 무슬림 등 종교나 종교인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일체의 행위를 불법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 법의 발효로 언론은 종교에 대한 혹은 종교와 관련된 어떤 종류의 언급에도 극도로 몸을 사려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영국의 언론인들에게도 소송은 가장 큰 두려움 이다. 판결에 질 경우 그 피해액은 재앙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이유로든 무뎌지는 언론의 비판력은 헤어나기 어려운 악순환의 구조물을 돌리는 또 하나의 매개로 작동된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해 새로운 정보 공개법이 공표되었다는 거다. 이 새로운 법에 따라 일반인과 언론이 보다 쉽게 폭넓은 정보를 정부에 요청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정부는 “비밀”이라는 딱지를 더 이상 함부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 글을 보고 거봐라 “우리만 언론 탄압하는거 아니다” 하면서 기뻐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착각은 마시라. 영국은 언론을 대하는 사회 정치적인 성숙도가 100점에 가깝던 나라고 이제 그 점수가 80이나 90점쯤으로 떨어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제 막 평균 점수인 50점대를 지났을 뿐인데 그 점수가 30점대 아래로 낮아지려 하고 있다. 국제 협상 관련 문서에 “비밀”딱지를 남발하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하여 노골적으로 언론인 단죄를 운운 하고, 취재물 일체를 내 놓으라 하고, 대통령이 언론사의 사장을 좌지우지하는 건 아직 영국에서 가능하지 않다. 위기의 영국언론이 우려스러우면서도 여전히 부러운 이유다.

▲ 런던=장정훈 통신원/ KBNe-UK 대표

참고로 브리티시 저널리즘 리뷰(British Journalism Review) 최근호에 실린 언론인 및 매체 신뢰도를 보자. 18세 이상 성인 1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는 이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언론인에 대한 신뢰도가 선생님이나 의사에 비해 낮다. 그러나 신뢰도의 하락편차는 전통적으로 신뢰도가 낮은 국회의원보다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정치인에 비하면 신뢰도 면에서 앞서지만 지난 5년간 신뢰도의 하락폭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흥미로운 것은 방송언론이 신문언론에 비해 신뢰도 면에서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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