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경영진의 ‘자발적 복종’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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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다음 단계는 제작 자율성 ‘침해’인가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한국PD연합회 창립 21주년 기념식 및 제21·22대 회장 이취임식이 열렸습니다. 저도 이 자리에 참석을 했습니다만, 시국이 시국이라 그런지 분위기는 다소 비장했습니다.

신임 회장으로 취임한 김영희 MBC PD협회장도 인사말에서 시국이란 단어를 언급하며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이런 시기에 회장직을 맡아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이런 때일수록 방송에 대한 소신과 원칙을 지켜나가겠다.”

MBC 시사교양국장 교체가 상징하는 것

그 모습을 보며 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아는’ 김영희 회장은 ‘비장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분인데, ‘저런 분’이 비장함을 느낄 정도면 지금 상황이 정말 심각하구나 뭐 이런 생각. 행사를 마치고 뒤풀이 장소로 함께 이동하면서 나눈 대화에서도 ‘심각성’이 느껴지더군요.

▲ MBC 경영진이 < PD수첩>에 대한 사과방송을 결정하자 MBC노조가 사과방송을 저지하기 위해 농성을 하고 있다 ⓒPD저널
사실 지난 5일은 방송계 특히 MBC의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6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사교양국장을 교체하면서 내부 반발이 거셌기 때문입니다. 이번 인사는 징계성 인사가 분명하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였습니다. 무엇에 대한 징계성 인사였을까요. 짐작하시는 것처럼 광우병 논란을 다룬 < PD수첩>에 대한 징계성 인사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해석입니다. MBC 내부반발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MBC 구성원들 특히 시사교양국 PD들은 이번 인사를 ‘단순한 인사’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실 MBC가 사과방송을 했을 때 사과방송으로만 끝나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현재의 정국은 그때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셈입니다.

다음 수순은 ‘제작 자율성 침해’인가

한번 보세요. < PD수첩>에 대한 사과방송을 강행하고, 조능희 < PD수첩> CP와 진행자인 송일준 시사교양 부국장을 보직 해임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정호식 시사교양국장이 교체됐습니다. MBC 구성원들은 이 모든 것이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시사교양국장이 교체된 건 이후 진행될 MBC 내부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 ⓒPD저널
그렇다면 이제 MBC에서는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요. 단정은 피해야 하지만 만약 경영진의 현재 기조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예상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제작 자율성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민감한 아이템의 경우 방송 전 사내에서 열리는 ‘시사회’를 거치면서 ‘수정’되거나 아예 ‘폐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는 더 이상 < PD수첩>에서는 광우병 논란과 같은 아이템이 방송될 가능성이 낮다는 걸 말합니다. 그리고 설사 방송이 된다고 해도 지금까지의 기조와는 좀 ‘다른 방송’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전국언론노조 MBC본부(MBC노조)를 비롯해 시사교양국 PD들의 격렬한 반발이 있을 겁니다. 이미 MBC 내부에서 반발 움직임이 ‘조직화’ 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습니다.

MBC 경영진의 ‘자발적 복종’이 초래할 ‘비극’

저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방송사의 자발적 복종이 가져올 ‘비극’에 대해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인사에 정부가 개입했다거나 압력을 행사했다는 식의 ‘가정’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아무리 ‘막 나가는’ 정부라고는 하지만, 일개(?) 방송사 국장급 인사에 정부가 개입할 가능성은 ‘0’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문제 삼아야 할 것은 경영진의 정부에 대한 ‘자발적 복종’입니다. 이번 인사는 내부적으론 MBC ‘개혁 PD’들에 대한 징계의미를 담고 있지만, 외부적으론 ‘정부에 대한 구애적 성격’이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시너지 효과’를 내는 여러 가지 조치들이 앞으로 MBC에서 더 나오지 않을 거라는 보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럼 어떻게 될까요. MBC 내부의 조직적 반발과 그에 따른 후유증이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심각성이 더해지면 제작거부나 파업까지 갈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전 궁금합니다. 내부 구성원들의 극한 반발을 초래하면서까지 이런 조치를 취하는 경영진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외부의 만족’을 위해 ‘내부 반발’을 감수하겠다는 걸까요. MBC 경영진은 그걸 원하는 걸까요. 그것이 초래할 비극을 정말 MBC 경영진은 모르는 걸까요.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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