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길 문방위원장, 이병순 사장의 슈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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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결산 승인 자리 불출석 일방 양해…민주당 ‘항의’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 위원장의 일방적 의사 결정이 도마 위에 올랐다.

2007회계연도 KBS 결산 승인과 관련한 26일 오전 문방위 전체회의에 이병순 KBS 사장이 내부 행사를 이유로 불출석하는 것을 위원들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결정해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은 것이다.

간사 합의 도출 안 되자 위원장이 결정…민주당 “국회 무시 행위”

이날 문방위는 오전 10시부터 회의를 열고 정부의 2007회계연도 세입세출결산(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재청)과 예비비지출 승인(문화부), 기금결산(관광진흥개발기금, 국민체육진흥기금, 문화예술진흥기금, 신문발전기금, 지역신문발전기금, 영화발전기금, 방송발전기금) 등의 승인과 함께 KBS·EBS 2007회계연도 결산승인안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이와 관련해 문방위원들의 질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이건문 문화재청장 등 주요 기관장들도 모두 참석한 상태였다. 이병순 사장만이 불참한 것이다.

KBS 비서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사장은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리는 ‘KBS 사원 정년퇴임식’ 참석을 위해 문방위 회의 불참과 관련한 사전 양해를 고흥길 위원장에게 구했다고 한다.

▲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이 26일 전체회의에서 KBS 결산승인안의 처리를 진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병순 KBS 사장의 불참을 허용,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항의를 받자 목이 탄 듯 물을 마시고 있다.

그러나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민주당 측 문방위원들의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이종걸 의원은 “이 사장이 KBS 직원들의 정년퇴임과 관련한 행사 때문에 불참하기로 했고 고흥길 위원장이 이를 양해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알았다”며 “결산 승인안과 관련해 어떤 이견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니 빨리 적절한 조치를 취해 달라”며 이 사장의 출석을 요구했다.

장세환 의원도 “전례를 남기게 되면 계속 이런 사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출석을 한 후 양해를 구한 뒤 돌아갔어도 무방했을 텐데 아예 불참을 하는 것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무시하는 결과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서갑원 의원 역시 “유인촌 장관, 최시중 위원장, 이건문 청장 등도 다 바쁜 분들이고, 저 역시 오늘 광주에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하고 이 회의에 참석했다”며 이 사장의 회의참석을 종용했다.

이에 고흥길 위원장은 “오늘은 결산안 승인만 하면 되고, 위원회에 대한 KBS의 업무보고가 끝난 상황에서 정책과 관련해 추가 질의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내달 국감도 열리는 만큼 이 사장의 불출석에 대해 제가 위원들께 양해를 구하면 될 것으로 봤다”며 “향후 이런 일이 없도록 KBS 측에 경고를 하고 주위를 환기하는 정도로 끝내 달라”고 설명했다.

고 위원장은 자신의 이 같은 결정에 이 사장에 대한 배려도 담겨 있었다는 점도 밝혔다. 그는 “오늘 이 사장이 참석해야 하는 행사가 32년간 KBS에서 근무하고 정년퇴임하는 사원들에 대해 공로패를 수여하고 그간의 노력에 감사하는 자리라고 알고 있다”며 “신임 사장으로서 사원들과 만나 스킨십도 올릴 수 있는 자리 아니냐. 제가 양해를 구하면 되는 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재 이병순 사장은 KBS 사원행동 등 내부 구성원들로부터 보복인사 논란 등으로 강한 반발을 받고 있다. 고 위원장이 이 사장의 이 같은 입장을 고려, KBS 사장으로서의 첫 번째 국회 결산 대신 내부 행사에 참석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더구나 고 위원장은 지난 19일 문방위에 대한 KBS 업무보고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시사투나잇> 등 정권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에 대한 폐지 계획이 있는지 여부를 따져 묻는 것에 대해 이 사장이 답을 하려 하자 “편성 등의 문제는 대외비”라며 답변을 사단에 차단하는 등 야당의 공세에 시달리는 이 사장을 감싸는 듯한 태도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또 이 사장의 불출석과 관련해 지난 25일 간사 협의가 도출되지 않자 고 위원장이 “내가 총대를 메겠다”고 한 뒤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점도 드러났다.

한나라당 측 간사를 맡고 있는 나경원 의원이 민주당 의원들의 항의에 “어제(25일) 간사회의에서 위원장이 결정하면 민주당 의원들이 일단 이의를 제기하고 의사 진행을 하기로 합의했다. 이의제기만 하고 끝내야지 출석 요구하면 위원장이 결정토록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자, 민주당 측 간사인 전병헌 의원이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했다.

전 의원은 “어제 밤 11시까지 국감일정과 증인 채택 문제에 대해 논의를 했는데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그런 상황에서 KBS 사장이 불출석에 대한 양해를 구해왔고 저는 반대했다. 그러자 위원장이 ‘내가 총대를 메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민주당 의원들은 수용하지도, 가만있지도 않을 것’이라고 미리 말을 해뒀다. 그걸 갖고 (제가) 합의해 줬다는 식으로 주장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지난 5월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조직 구성 완료가 안 됐다는 이유로 문방위 회의 불참 의사를 일방적으로 전달했다가 탄핵 등의 얘기가 나오자 결국 그날 오후 급히 출석한 사례가 있다”며 “이런 전례를 고려해 이 사장이 지금이라도 출석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병순 KBS 사장
민주당 측 문방위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회의 시작 40분여가 지난 오전 10시 47분 고흥길 위원장이 KBS 결산 승인안에 대한 처리를 잠시 미루고 이 사장의 출석을 요구하기로 정리했다. 그리고 오전 11시 15분 이 사장이 출석, 7분 뒤인 오전 11시 22분 결산안에 대한 승인이 이뤄졌다.

한나라당 측 문방위원인 정병국 의원은 “위원장에게 위임한 사안에 대해 재론을 하면 위원회의 의사 진행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앞으론 위임된 사안과 관련해선 위원장의 결정을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유감을 표시했다. 고흥길 위원장은 국감 증인 채택과 관련한 건에 대한 논의를 오후 다시 진행하기로 하면서 오전 11시 25분 정회를 선언했다. 그리고 마이크가 꺼지기 전 “아휴, 이렇게 해서야…”라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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