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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주간 미디어 리뷰]

예전 방송위와 달리 무슨 일이든 거침없이 밀어붙여오던 방송통신위원회가 모처럼 한 발짝 물러섰습니다. 지상파방송과 보도ㆍ종합편성 진출이 금지된 대기업의 기준을 자산규모 3조 원에서 10조 원으로 올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10월 10일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유보한 것이지요.

▲ 이희용 부회장
방통위는 이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7월 29일 입법예고한 뒤 8월 14일 공청회를 열었으나 언론노조 등의 실력 저지로 무산된 데 이어 9월 9일 다시 연 공청회마저 무위로 돌아가자 9월 12일 보도자료를 내 "공청회를 다시 개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그동안 다양한 절차를 통해 수렴된 의견을 정리해 방통위 회의에 보고한 후 법적 절차에 따라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지요.

그런데 이날 전체회의에서 격론 끝에 국회와의 협의나 공청회를 거쳐 마무리 짓기로 한 것이지요. 당시 회의에서 야당 추천을 받은 이경자 위원과 이병기 위원은 "의견 수렴 과정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여당 추천 몫의 송도균 부위원장과 형태근 위원은 다시 공청회를 열더라도 똑같은 문제가 생길 것이고 의견을 더 듣다 보면 연내 개정이 불가능해진다"고 맞섰답니다.

여기서 최시중 위원장은 "세계화에 걸맞게 가려면 자본적 규제는 필요 없다는 입장이지만 의결을 일단 보류한 뒤 국정감사 후 국회와 협의하고 (여야 합의가) 안되면 공청회를 시도하기로 하자"며 결론을 냈다고 하네요.

공청회가 열리기도 전인 9월 4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며 대기업 진입 제한(3조 원 기준)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빚은 최 위원장이 돌연 야당 추천 위원들의 편을 든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요?

9월 1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와 10월 9일 국회 문방위 국정감사에서 쏟아진 야당 의원들의 질타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10월 7일 언론사유화저지 미디어공공성쟁취 공동행동(미디어행동)과 방송학회가 방통위와는 별개로 연 '법외 공청회'의 반대 의견을 존중했기 때문일까요?

▲ 지난 7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미디어행동,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열린 공청회에서 방통위의 규제 완화 일변도의 정책들이 공공성 위기를 초래하고 오히려 전체 시장을 황폐화시킬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PD저널
국회 설명회를 요구하는 야당 의원들의 요구에 최 위원장이 긍정적 답변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여야 합의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한나라당이 반대하면 성사되기 어렵습니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대기업 기준을 5조 원 이내로 정해 시행령이 아닌 모법에 못박자는 방송법 개정안을 10월 14일 발의했지만 시행령 개정 이전에 개정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한 형편입니다. 야당 반대 때문에 방통위가 의결을 보류했다고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지요. 법외 공청회에서도 기준 완화에 찬성한 사람이 적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여기에 무게를 두기는 더 어렵지요.

최시중 위원장의 의중을 움직인 핵심 동인은 엉뚱하게도 IPTV 재송신을 둘러싼 지상파방송사와 통신업체의 갈등에서 찾는 게 맞을 것이라는 게 제 짐작입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방통위 전체회의가 열리기 직전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강행 처리될 경우 IPTV에 대한 지상파 재송신 반대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선언하고 나섰지요.

IPTV 사업자들이 지상파 재송신을 사활이 걸린 과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지상파 3사에 언론노조의 영향력이 상당히 크긴 하지만, 찬찬히 따져 보면 아이러니한 구석이 있습니다. IPTV법 시행령에는 이미 대기업 기준이 10조로 완화된 상태에서 케이블TV협회가 방송법 시행령 기준도 여기에 맞춰 완화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거꾸로 IPTV가 발목을 잡은 격이지요.

지상파와 통신업체의 재송신 협상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케이블TV협회로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애매할 겁니다. 돌발변수가 생겨 IPTV 출범이 지연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규제 완화를 통한 투자 기회 확대가 늦어지거나 줄어들게 됐으니까요. 케이블TV로서는 방통위가 시행령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고 언론노조가 이 문제를 들어 반대투쟁을 벌여 IPTV와의 협상이 계속 지연되는 게 가장 좋은 그림일 겁니다.

방통위는 케이블TV, 위성방송, DMB 등 뉴미디어들이 하나같이 소프트 랜딩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IPTV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조기에 정착시켜야 한다는 조바심을 내는 듯합니다. 일자리 창출이나 경제 부양 효과가 매우 높다고 자랑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방통위는 초기 사업 성공의 관건인 지상파 재송신을 성사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기도 했지요.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이 김인규 씨 역할론입니다. KBS 사장 영순위로 꼽혔던 김 씨는 10월 10일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창립총회에서 회장으로 뽑혔습니다. 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에는 IPTV 사업자로 선정된 KT, SK브로드밴드, LG데이콤 등 통신 3사와 KBS를 비롯한 지상파 3사, 스카이라이프, DMB 업계, 오픈TV, 셋톱박스 업체 등이 골고루 참여하고 있지요.

업계 소문에 따르면 IPTV 사업자와 지상파방송사가 지상파 재송신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지상파방송 관계자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의 대기업 기준을 10조에서 5조로 낮추지 않으면 IPTV 재송신을 해주기 어렵다"며 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으로 내정된 김 씨에게 협조를 요청했고, 김 씨가 이를 최시중 위원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언론노조는 대기업 기준 완화가 공영방송 민영화와 관련해 중대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재벌의 지상파 진출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것이지요. 노조뿐 아니라 사장들의 모임인 방송협회도 여기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통위로서는 IPTV법 시행령에서 대기업 기준을 10조로 늘린 마당에 방송법 시행령에서는 차별적으로 규정하기가 어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PP가 동시에 케이블TV와 위성방송에 프로그램을 제공하듯이 IPTV에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언론노조는 당시 이 문제에 전력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망 개방과 프로그램 동등접근권, 자회사 분리 여부, 권역 등의 이슈가 더 중요하다고 봤으니까요. 또 IPTV법 시행령에는 대기업 진출 금지 대상에 보도와 종합편성만 규정돼 있어 지상파 문제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크게 인식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방송법 시행령에는 보도, 종합편성과 함께 지상파도 똑같이 규정돼 있지요.

대기업의 지상파 진출이 큰 문제라면 보도ㆍ종합편성과 지상파를 나눠 규정할 수도 있긴 하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모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까다롭고 복잡합니다. 그렇다고 일단 완화한 IPTV법 시행령을 다시 고치는 것도 쉽지 않지요.

이런 형편이어서 언론노조가 지상파방송사들을 압박해 대기업 기준 완화와 IPTV 재송신을 연계시킨다면 IPTV의 출범은 계속 늦어지거나 초라하게 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방통위에 IPTV 콘텐츠 사업자로 등록을 신청한 PP 가운데 케이블TV 시청률 '톱 10'에 든 채널은 YTN이 유일하다는군요. CJ미디어와 온미디어 계열의 채널들은 SO들과 MSP로 엮여 있기 때문에 최대한 저울질을 하며 늦게 합류할 겁니다. 이런 마당에 지상파와 지상파 계열 PP들이 IPTV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시청자들이 매력을 느끼기는 힘들겠지요.

IPTV를 대표해 협상을 벌이고 있는 KT의 한 관계자는 "지상파 가운데 MBC와 우선 협상을 벌여왔는데 9부 능선은 넘었다. 그런데 방송법 시행령 문제로 난색을 표명해 정체된 상태다. 그러나 방송법 시행령은 IPTV와 별개의 문제다. 둘을 연계시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도 출범했고 김인규 씨가 회장으로 취임했으니 잘 풀려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하더군요.

MBC의 한 관계자는 "재송신 문제가 방송법 시행령과 연계된 건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가격에 대한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해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이다. 방통위가 대기업 기준을 낮춰주면 좋은 일이지만, 예정대로 10조로 가더라도 이 문제를 IPTV 재송신 문제와 계속 연계시키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있다"고 말하더군요.

지상파와 케이블의 재송신 공방 어디까지 갈까

지상파와 IPTV의 재송신 협상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가 SO에 대한 지상파 재송신 문제입니다. 방송협회는 케이블TV방송협회에 공문을 보내 디지털케이블TV에 지상파방송을 무단 재송신하지 말라고 요구했습니다. 저작권 계약을 맺고 돈을 지불하라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케이블TV협회는 무료 보편적 서비스인 지상파를 직접 수신할 수 없는 가구가 많아 케이블TV가 이를 재송신하는 것인데 사업자가 자의적으로 유료화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또 아날로그에 대해서는 묵인해오다가 디지털에 대해서는 돈을 내라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반문도 덧붙였지요.

방송업계에서는 지상파의 요구를 IPTV 재송신 협상에 활용하기 위한 카드로 분석하면서도 일단 IPTV 재송신 계약이 체결되면 SO에 대해 강공책을 쓸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방송협회 차원에서 저작권 소송 등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지상파나 케이블이나 모두 완강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그렇다고 파국으로 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만일 지상파가 케이블에 나오지 않는다면 케이블협회로서는 가입자를 IPTV와 스카이라이프에 대거 빼앗길 수밖에 없고, 당장 지상파로서도 시청자들의 불만에 시달리고 광고 효과도 떨어지겠지요.

만일 케이블협회가 지상파에 저작권료를 지불하기로 한다면 현재 HD 콘텐츠에 대해 지상파와 재송신 계약을 맺고 있는 스카이라이프의 상황도 달라지게 됩니다(2004년 재송신 때는 저작권 계약이 아니라 스카이라이프가 수신료의 1%를 지역방송발전기금으로 지원한다는 협정을 맺었음). 반대로 스카이라이프가 OBS의 재송신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설득력을 얻게 되겠지요.

2007년 7월 위성DMB사업자 TU미디어가 MBC의 지상파DMB 채널 재송신 계약을 맺자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무료 보편적 서비스를 돈 때문에 유료방송에 팔아넘겼다"고 거세게 비난했습니다.

같은 논리로 따진다면 지상파TV가 IPTV와 재송신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이나 케이블TV협회에 저작권료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도 민언련이 문제를 삼아야겠지요. 그러나 최근 언론계 현안이 워낙 많아서인지, 입장이 바뀐 탓인지 이 문제에 대해 성명이나 논평을 낸 적은 없습니다. 어떤 이는 유료방송의 위상이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 중간광고도 안되고 미디어렙도 안되고 수신료 인상에도 문제가 있으니 지상파의 재원 확보 수단을 어느 정도 용인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이상적으로 따지자면 온 국민이 유료방송을 통하지 않고도 무료 보편적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어야지요. 또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유료방송이 지상파TV 콘텐츠로 돈을 벌려고 하면 지상파방송사에 저작권료를 당연히 지불해야지요. 그러나 이상과 원칙은 늘 현실에 부딪히면서 수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유료방송이 난시청 보완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도 인정하고 방송사로서도 저작권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 그 절충점이 어디인가가 관건일 텐데, 그렇다고 이것이 차별적으로 적용돼선 안되겠지요.

KBS 사장, 구조조정의 칼 언제 빼들까

10월 13일 KBS를 상대로 한 국회 문방위 국정감사에서는 여러 의원들이 일제히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성윤환 한나라당 의원은 "프로그램 외주제작 비율은 높아져 왔는데 PD 숫자는 오히려 늘어났다"고 비판했고 같은 당의 정병국 의원은 "실무진보다 간부가 많은 항아리 조직을 수술해야 한다"고 주문했지요. 또 친박연대의 김을동 의원이나 창조한국당의 이용경 의원 등도 높은 간부 비율과 인건비성 경비 비중의 문제를 지적했지요.

이에 반해 민주당은 KBS의 적자 요인은 방만한 경영이 아니라고 반박하며 사장 교체 이후 부당 인사와 주요 프로그램 폐지 시도 등 방송 장악 기도가 노골화되고 있다고 공격했지요. 그러나 구조조정의 필요성 자체를 정면으로 반대하는 발언은 거의 없었습니다.

▲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13일 KBS를 상대로 진행한 국정감사에서 이병순 KBS 사장이 여당 의원들의 적자경영 해소를 위한 구조조정 주장에 답변하고 있다.
사실 방송가에서는 "KBS에서는 기둥 뒤에 숨어서도 정년까지 간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고 창가의 좋은 자리에서 신문만 보다가 퇴근하는 이른바 '창가족'이란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늘 시간에 쫓기며 바쁘게 일하는 상당수 KBS 직원들로서는 억울한 노릇일 겁니다. 실제로 KBS는 BBCㆍNHK에 비해 인력 규모가 훨씬 작다거나 MBCㆍSBS와 견주어 채널이 훨씬 많다는 점 등을 들어 여러 차례 반박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사실 여부를 떠나 KBS에는 늘 '방만한 경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고 수신료 인상의 전제조건처럼 여겨져 왔지요.

현실적으로 인위적인 감원은 쉽지 않겠지만, 이병순 사장의 평소 스타일로 보아 신규 채용을 줄이고 명예퇴직을 받는 등의 구조조정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10월 15일 KBS 임시 이사회에는 프로그램 개편과 함께 국 부활 등을 골자로 하는 조직개편안이 상정될 예정이었으나 다음 주로 미뤄졌지요.

KBS 사원행동은 이날 이사회에 앞서 발행한 특보에서 조직개편안에 대해 "전사적 통제를 강화하려는 방안"이라며 "기술 부문의 왜소화, 방송 현업조직의 축소는 다가올 구조조정의 신호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측과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던 노조도 9일 성명을 통해 △국장과 주간 직위 신설로 기존 팀의 대폭적인 축소 △대규모 팀 양산으로 인한 팀장의 조직 관리자 기능 약화 △권력과 자본에 비판적인 탐사보도팀이 직제에서 사라진 것 △특임본부(지역방송 정책 담당)의 폐지 등을 지적하며 백지화를 요구했지요.

다음 달 노조위원장 선거를 앞둔 상태에서 이 사장이 구조조정의 칼을 섣불리 휘둘러 반대 여론을 불러일으키려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원들을 자극하면 자극할수록 강성 집행부가 들어설 공산이 크니까요. 아마도 선거가 끝난 뒤 본격적인 작업에 나설 겁니다. 노조로서는 어떤 집행부가 들어서더라도 반대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겠지요.

노조 투쟁의 관건은 단결력과 사내외 여론 확보인데 구조조정 문제에 관한 한 여야 할 것 없이 외부 여론은 KBS 노조에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은 듯합니다. 더욱이 KBS 노조는 사장 교체 과정에서 언론노조와 단절을 선언하고 현업 언론인단체나 시민단체 등과도 선을 그었기 때문에 외롭고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지 모릅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에서 제공했습니다.    [이희용 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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