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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가 쓰는 대중음악 칼럼 7

우리 음악의 미래, 양파, 리아, 그리고 황신혜밴드
김우석
l승인1997.05.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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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지금까지는 주로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전반적인 전개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인식의 틀과 과거·현재의 문제점들을 살펴보는 것에 이 지면의 대부분을 할애해 왔다. 그리고 그 결론은 불행히도 대중음악의 필수 3요소인 생산자, 매개자, 수용자 모두가 올바른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최근 20년간 경제성장 못지 않게 눈부시게 발전해온 대중음악의 빛나는 전통은 이 3자의 완벽한 조화에 의해서 파괴되어가고 있고, 진지한 작품경향보다는 고도의 상업성이 각광받는 완벽한 획일화로 치닫고 있는 것이 근래의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가장 요구되는 것이 강력한 매개자 집단인 프로듀서들의 각성과 분발이며, 그 구체적인 노력으로서 대중음악의 생산자에게 창작의 자유와 다양성을 부여하자는 것이 지금까지 필자가 글을 기고하면서 소리를 높인 주장의 요지였다. 그러나 올해 들어 불과 3~4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에도 비록 작지만 힘찬 변화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생산자와 수용자의 분발이다. 우리보다 대중음악을 수십년 일찍 시작한 구미 지역의 선진국형(?) 모델을 살펴보면 우리의 3자간의 역학관계와는 아주 다른 것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그들의 매개자는 우리의 매개자보다 영향력이 형편없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선진형 모델의 경우 매개자를 배제한 생산자-수용자간의 직접접촉과 상호작용의 빈도가 우리보다 현저히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음악을 대부분 라디오와 tv를 통해서 최초로 접하는 우리와는 달리, 그들의 청소년들은 대·소규모의 공연을 통해서 생산자와 수용자가 직접적으로 맞대면을 한다. 그 결과로 선진형 모델의 어린 수용자들은 거의 모두가 잠재적인 생산자이다. 이들은 단순히 대중음악 스타를 동경하는 우리의 청소년들과는 달리 대중음악을 진지하게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아주 일찍부터 키워나간다. 어려서부터 모든 아이들이 축구를 하는 나라의 축구 대표 팀은 당연히 강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저변의 무서움이다. 하긴 노래방이 없는 동네가 없는 우리나라 저변만큼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기는 하다. 그러나 생산자를 향한 진지한 노력은 노래방에서 자기 기분에 취해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정도의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우리의 청소년들은 우리가수들의 춤과 래핑(rapping)을 흉내내는 정도에 열광하고 있다. 이 정도로는 아주 고품위의 생산자를 만들어 내기는 턱도 없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선진기술(?)의 접목 없이는 더이상의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것은 제조업이나 대중음악이나 모두 마찬가지다. 기성가수들은 손쉽게 선진 기술을 접할 능력과 여건을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이룩한 상업적 발판을 잃을 것이 두려워서, 또는 자기 나름대로의 작품경향이 굳어졌기 때문에 획기적인 변화와 발전을 도모하기는 힘들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조용필이나 이승환 정도를 제외하면 꾸준하게 자기발전과 변신을 거듭해온 음악인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결국 우리는 무서운 아이들을 원한다. 그들은 무엇을 바꿀만한 힘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진정한 메시아와 적그리스도(anti-christ)를 식별해내는 것은 우리 프로듀서들의 몫이다. 진지함을 갖춘 무서운 아이들 중의 1번 타자는 양파였다. 비록 철저히 메인스트림의 영역을 고수하긴 했지만, 어린 학생의 나이로 현대적 r&b의 감각을 겸비한 가창력에는 박수를 보낼만 했다. 그 다음에 단단히 방망이를 쥐고 타석에 등장한 것은 리아다. 어린 소녀가 이 정도로 록음악을 소화하려면 어지간히 노력해서는 힘들었을 것이다. 마치 다년간의 무대경험을 경험한 베테랑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매달 이어지고 있는 그녀의 콘서트를 통해서 여실히 확인된다. 뭐니뭐니해도 무서운 아이들의 mvp감은 황신혜밴드이다. 이들은 앞의 두 사람처럼 무서운 실력을 갖춘 것도 아니고 선진기술을 완벽하게 소화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산울림 풍의 한국적 록과 네오펑크적 패배주의의 가사는 아주 진지한 음악적인 접근과 치기 어린 냉소주의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흔히 우리가 저항의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록의 본질은 사실 음악적인 진지함과 참을 수 없는 의미의 가벼움이다. 또 황신혜밴드는 생산자와 수용자, 메인스트림과 언더그라운드의 묘한 점이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즉 전통과 새로움이 혼재한다는 의미이다. 양파, 리아, 황신혜밴드의 접근방식은 모두 다르다. 그 그들은 모두 앞으로 우리 대중음악의 미래를 짊어질 무서운 아이들이다.
|contsmark1| 김우석 pd가 집필해왔던 ‘pd가 쓰는 대중음악칼럼’은 이번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김우석 pd와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주>|contsmar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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