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필승전략 : 용어 싸움에서 이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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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식PD의 미국 리포트(4)]

선거를 치를 때마다 항상 의문이 드는 게 있습니다. 왜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이 오히려 부유층을 대변하는 정당을 찍고, 대학 교수처럼 잘난 사람들이 오히려 서민층을 대변하는 정당에 지지표를 던지는 것일까?

결국 유권자들은 자기가 처해 있는 이해관계보다 도덕적 가치 등을 더 중요시할 때가 많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예를 들면, 기독교나 가톨릭 신자 중에서는 동성애나 종교문제를 다른 어떤 공약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군대에서 혹독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반공문제를 어떤 가치보다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이 결합되어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클린턴 대통령의 경제호황에도 불구하고 부시가 당선되고, 또 부시 대통령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재선에 성공한 것은 도덕적 가치와 이데올로기 문제에서 공화당이 그동안 압도해 왔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공화당은 1992년 클린턴에게 패한 뒤 절치부심 보수의 가치를 다듬어 왔습니다. 1994년 하원의장 뉴트 킹그리치의 ‘미국과의 계약’에서 밝힌 공화당의 가치를 선거에서 전면에 내세우면서 반격에 나서 상하원 의석을 모두 석권합니다. 이때 정립된 공화당의 가치는 세금 인하, 작은 정부, 가족가치 중시, 국가안보 강화입니다. 이러한 공화당의 가치는 ‘세금 구제(tax relief)’, ‘도덕적 가치(moral value)’,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과 같은 대중적인 용어로 자리 잡으면서 미국 국민들에게 스며들었습니다.

▲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
반면, 민주당은 그동안 변변한 가치를 내세우지 못했고, 오히려 “Liberal”이란 말은 점점  ‘방종’의 의미로 굳어져 가면서 기피대상이 되었습니다. 즉, 민주당은 자신들의 이념과 비전을 구체화할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선거 캠페인과 토론 방송에서 수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사실 세금내기 싫은 것은 모든 국민의 공통사입니다. 정부 예산중에 아무리 쓸 곳이 많아도 그건 나중의 문제입니다. 이를 ‘세금 폭탄’이란 말로 구체화하면 대응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테러와의 전쟁’에 대해서도 전전긍긍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민주당은 마치 표도르의 ‘암바’에 걸린 것처럼 빠져 나가지 못하고 허우적거렸습니다.

보다 못한 버클리대의 조지 레이코프(Lakoff) 교수가 ‘절대 코끼리를 생각하지마(Don’t think of Elephant)’라는 책을 쓰며 훈수에 나섭니다. 공화당이 ‘세금 폭탄’으로 공격해오면 절대로 ‘세금’ 이야기를 꺼내지 말고 다른 화제로 돌려라. 세금 폭탄이냐 아니냐는 논쟁을 하면 할수록 국민들의 뇌리에는 세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점점 굳어져 갈 뿐이라는 겁니다. ‘세금=부담’이란 등식이 이미 서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민주당에 제갈공명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에머리대의 심리학과 교수인 드류 웨스턴(Drew Westen) 교수로 ‘중도 진보주의자들을 위한 메시지 핸드북(Message Handbook for Progressives from left to Center)’이란 책으로 진보의 가치를 정립하며 단숨에 민주당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정부의 역할, 경제, 이민, 세금, 의료 보험, 총기, 낙태, 동성애, 국가 안보, 이라크 등의 항목에 공화당에 대응해 싸울 진보의 가치와 캐치프레이즈를 간결하게 정립합니다. 예를 들면,

- ‘정부’라는 말을 쓰지 말고 그 자리에 ‘리더십’이란 말을 써라,
- 빈부대립을 연상시킬 수 있는 ‘극빈층(poor)’이란 말 대신에 ‘중산층(middle class)’을 써라,
- 반기업적이라는 딱지를 벗어버리기 위해 기업(특히 중소기업)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라
- ‘대기업의 특혜’에 맞서 열심히 일하는 보통사람들과 중산층 등과 같은 대중적 용어를 써라
- 고삐 풀린 규제가 가져올 폐해에 대해 강조하면서도 ‘규제(regulation)’란 용어는 피해라 등입니다.

이러한 전략들은 전방위적으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세금인상요인과 비효율로 공화당에게 공격을 받았던 의료보험문제는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일하는 시민들의 권리’로 맞받아쳤습니다. 또한 그는 미국의 최대 선거 이슈중의 하나인 낙태에 대해서도 ‘낙태찬성(pro-choice)‘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정부가 언제 가족을 구성하는지 등의 문제에까지 개입하는 것은 ‘비미국적(un-American)’이라고 주장하라고 주문합니다. 불법 이민에 대해서도 불법 이민자를 ‘허용(allow)’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로 초점을 맞추지 말고, 우리가 “필요해서 요구’하는 문제로 초점을 옮기라고 주장합니다.

▲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
경제문제에 대해서도 ‘미제(Made in USA)의 부활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민주당에 대해 위축되어 웅크리지 말고, 정정당당 하게 맞서서 싸우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전략들은 이미 2006년에 ‘담대한 희망(The Audacity of Hope)’의 저자이자 미래를 위한 개혁의 기수인 오바마의 이미지와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오바마는 그동안 민주당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중의 하나였던 ‘감세(Tax-cut)’에 대해서 정면승부를 걸었습니다. 즉 ‘증세’를 주장하며 찬반논쟁에 빠진 것이 아니라, 같이 감세를 주장하며 공화당의 공격을 무력화시켰습니다. 대신에 상위 5%만을 위한 특혜가 아니라 95%의 국민 대다수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겠다는 차별화 전략을 펼쳤습니다. 그동안 민주당이 무기력하게 당해온 ‘감세’ 문제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바마는 또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문제에서도 정면 승부를 걸었습니다. 이라크에 국민 혈세가 무려 한 달 평균 100억 달러가 투입됐는데, 미국이 얻은 것이 무엇이 있냐고 반문하면서 자신은 이 돈으로 미국을 위해 충성을 바친 가난한 군인들, 열심히 헌신하는 교사, 환자를 위해 애쓰는 간호사 등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중산층의 처우 개선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또한, 비싼 등록금 때문에 학교를 못 다니는 일이 없게 하고,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더 좋은 교육을 받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돈이 없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노인들이 없도록 하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즉, 국가에 혈세를 내야하는 사람들이 오바마 앞에서 순식간에 혜택을 받는 사람들로 바뀐 겁니다. 이들은 당연히 오바마의 공약 한마디 한마디에 환호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공화당의 ‘소셜리즘’ 공격에 대해서도 ‘재분배(redistribution)’란 말로 정면대응을 불사했습니다. 또한, 유치원에서 많이 가진 친구가 있으면 적게 가진 친구에게 나눠주는 게 진정한 친구라는 비유까지 들어가며 이른바 ‘좌파 논쟁’을 가볍게 제압했습니다.

▲ 박건식 MBC PD
그동안 공화당이 초강세를 보여 오던 종교와 가족의 가치 영역에서도 오바마가 매케인을 압도했습니다. 대선후보의 연설을 분석한 뉴욕타임스를 보면, 오바마는 누구보다도 더 많이 ‘believe’와 같은 종교적 어휘를 많이 구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신 매케인은 ‘patriotic’, ‘war’ 같은 정치 군사적인 용어를 많이 구사하고 있었습니다. 늘 종교적인 용어를 구사함으로써 오바마는 제레마이어 목사의 발언 같은 파문 속에서도 견뎌낼 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바마가 특히 역점을 둔 분야는 가족이었습니다. 오바마의 연설 중 가장 박수를 크게 받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저녁에는 TV를 끄고, 자녀들의 숙제를 같이 하고 책을 읽어주라”는 대목입니다. 구호가 아닌 실천하는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바마는 이와 같이 공화당의 강점을 모두 흡수하는 블랙홀 전략으로 중도층, 부동층을 모두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놀라운 성과를 거둠으로써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오르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전략은 바로 오바마의 진실성과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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