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리고 아웅? 방통기본법 공청회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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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마련 TF 관계자 4명이 토론자로 참석…방청석에서 문제제기 ‘망신’

“방송통신기본법이라고 하지만 정작 방송은 없다.” (이영준 KBS 정책기획팀 부장)
“기본이라곤 안 된 기본법이다. 더구나 법안을 만든 이들이 토론자로 나와 있는 건 무슨 경우인가.” (채수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실장)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 이하 방통위)가 21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개최한 ‘방송통신발전에 관한 기본법’(이하 방통기본법) 제정(안) 공청회에서 쏟아져 나온 방송계의 문제제기다.

방송통신 융합시대를 맞아 방송과 통신을 통합적으로 규율, 발전을 뒷받침하겠다는 취지 아래 진행되는 법 제정 작업이건만 양쪽 업계의 의견, 특히 방송계의 의견은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밀어붙이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방송과 통신의 완전한 융합을 위해선 화학적 결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법은 방송과 통신을 물리적으로만 엮고 있다는 지적도 뒤따르고 있다.

더구나 이날 공청회에 방통기본법의 타당성을 논하기 위해 참여한 패널 일부가 방통위 통합법제 태스크포스(TF)팀의 일원으로서 법안 마련 과정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져 향후 공청회의 신뢰성과 관련한 논란이 예상된다.

▲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 이하 방통위) 주최로 21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방송통신발전에 관한 기본법’ 제정(안) 공청회에서 장석영 방통위 정책총괄과장이 법안의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방송통신 ‘화학적’ 결합 대신 ‘물리적’ 결합에 치중한 방통기본법?

방통위는 방통기본법(안) 2조에서 방송통신의 개념을 ‘유선·무선·광선 및 기타의 전자적 방식에 의하여 방송통신콘텐츠를 송신하거나 수신하기 위한 일련의 활동과 수단’이라고 정의했다.

또 방송통신의 발전을 위해 방통위로 하여금 방송통신 산업 발전, 방송통신콘텐츠, 방송통신 기술진흥, 이용자 보호, 방송의 공익성·공공성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방송통신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했으며(13조), 현행법상 적용이 명확하지 않은 신규 방송통신서비스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서비스 제공자가 적용 법률이 정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것과 달리 방통위가 30일 이내에 적용 법률을 결정토록 했다.(16조)

또한 기존의 방송발전기금과 지식경제부가 운용하는 정보통신진흥기금 중 통신사업자가 부담하는 연구출연금, 주파수 할당대가, 전파사용료 등을 통합해 방송통신발전기금을 조성키로 했다.(31조)

방통위는 방송법과 IPTV법에 근거, 지상파 방송을 포함한 방송 사업자로부터 전년도 방송서비스 매출액의 100분의 6의 범위 안에서 기금을 징수할 수 있다. 홈쇼핑 방송의 경우 전년도 매출액의 100분의 6 범위 안에서 방통위가 기금을 징수할 수 있다. 통신사업자의 경우 전년도 매출액의 100분의 1 범위 내에서 방통위에 기금을 내야한다.(이상 31조 2항~5항)

기금은 방송통신 분야 발전과 직결된 사업과 전파자원 관리·진흥 등에 사용되는데(32조) 방통위는 10인 이내로 구성된 방송통신발전기금운용심의회를 통해 해당 기금을 관리·운용해야 한다.(33조)

그밖에도 방통기본법은 △방송통신콘텐츠 진흥 △방송통신기술의 진흥 및 인력양성 △방송통신 재난관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방송 공공성·공익성·자율성 등 누락”

이날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여한 이영준 KBS 정책기획팀 부장은 “방송과 통신 양측의 본질을 잘 녹여내지 못하고 언론으로서의 방송을 기술집약적 산업인 통신 안에 무리하게 집어넣었다”며 방통기본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 부장은 “제1장 총칙 안에서 방송의 공익성과 공공성 등과 관련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법안 2조의 방송통신에 대한 정의 역시 전기통신기본법에 나온 통신에 대한 규정에 방송이란 단어 하나를 넣었을 뿐이며, 방송과 통신을 구분하는 주요 기준인 ‘편성’ 역시 사라졌다”며 개념의 보완을 요구했다.

그는 법안 제6장(보칙) 46조가 ‘방통위는 이 법에 규정한 각종 시책의 수립 및 추진을 위해 필요한 경우 방통사업자에게 통계 등 관련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방통사업자는 이에 응해야 한다’고 적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언론 자유의 측면에서 볼 때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방통기본법이 통신사업자에 대한 (방통위의) 규제감독 권한을 그대로 방송사업자에게 전이, 언론 기능을 수행하는 방송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느낌”이라며 “보도전문·종합편성 채널 등 콘텐츠별로 세분화 해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선규 명지대 교수(디지털미디어학)는 “방송의 특수성이 고려돼야 할 필요는 있지만 특수하다 하여 특별대우를 할 순 없는 일”이라며 “법에 공익성 부분을 넣자니 공익이 무엇이냐가 불분명하다. 그런 것을 법에 쓰는 것은 문제”라고 반박했다.

또 편성의 자율과 관련해서도 “공영방송을 제외한 대부분의 방송사업자는 민간사업자로 기업으로서의 편성과 사회적 공기(公器)인 언론으로서의 편성은 대립할 수 있다. 방송의 특수성을 모두 받아들이긴 곤란하다”고 말했다.

“방송통신발전기금 징수, 방송 통신 차별”

성기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사무총장은 신규 방통서비스에 대한 적용 법률을 방통위가 30일 이내에 결정토록 한 16조가 현실적인지를 따졌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는 게 아닌 만큼 분명 어느 영역에 걸쳐 있을 텐데, 30일 이내에 의견들을 취합해 적용 법률을 결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성 사무총장은 방송사가 통신사에 비해 더 많은 방송통신발전기금을 내야 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했다. 어떤 기준에서 징수율을 결정했는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영준 부장도 “지상파의 경영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상파와 비교할 때) 매출규모가 10배 이상인 통신사업자에 대한 기금 징수율이 더 낮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기금의 차등책정 기준에 공공성을 추가하고 적자 발생 시 유예 혹은 면제해주는 방안도 검토해줄 것을 요청했다.

최영익 한국디지털위성방송 전무는 방송통신망의 고도화를 위한 방통위의 노력을 규정한 법안 18조를 거론하면서 “케이블TV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90%를 넘어선 지금 같은 상황에선 공정경쟁을 위해 망을 보유하지 못한 사업자들에게도 접근권을 허용해야 한다”며 “기본법에 방송통신 설비 결합보장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안 만든 당사자가 공청회서 토론? 짜고 치는 고스톱인가”

방통기본법에 대한 방송 관계자들의 이 같은 문제제기와 별도로 이날 공청회 자체의 타당성과 관련한 의문도 제기됐다.

공청회 말미 방청객 질의응답 시간에 채수현 언론노조 정책실장이 “방통기본법 등을 마련하기 위해 방통위가 구성한 통합법제 TF(태스크포스)팀에서 활동하는 인사들이 이날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여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채 실장에 따르면 방통기본법 제정 등의 작업을 진행하는 통합법제 TF팀에는 16명의 인사가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 중 3명이 이날 공청회에 토론자로 나섰다. 홍대식 서강대 교수(법학), 노기영 한림대 교수(언론정보학), 최선규 교수 등이다. 또한 사회를 맡은 조은기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 역시 TF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날 공청회가 각계의 의견을 들어 법안의 타당성을 검증·보완하기 위해 마련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법안을 만든 당사자들이 토론자로 참여했다는 것은 논의의 객관성·신뢰성 등에 의문을 남길 수도 있다. 짜고 치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공청회란 지적이 가능한 것이다.

이 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장석영 방통위 정책총괄과장은 “통합법제 TF는 향후 방송통신사업법 등을 제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을 대비해 구성한 것으로 기본법에 초점을 둔 게 아니다. (방통사업법 제정 논의에 참여하는 분들이 오늘 토론자로 나올 경우)오히려 오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채수현 실장은 “방통기본법이 이대로 제정될 경우 지금도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는 방통위의 전횡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며 방통위가 신규 방송통신서비스에 대한 적용 기준을 판단토록 하고 있는 16조와 방송통신발전기금을 관리·운용할 방송통신발전기금운용심의회에 대한 구성 권한을 명시한 33조 3항 등을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았다.

방통위는 방송·언론계의 이 같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이달 중 법제처 심사를 거쳐 내달 국회에 기본법을 제출할 계획이다. 그러나 언론사유화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은 오는 24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토론회를 열고 방통기본법 초안의 문제점을 짚은 후 대안을 논의, 의원 입법을 통한 대안 입법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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