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의 눈물’이 북극을 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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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MBC 창사47주년 특집다큐 ‘북극의 눈물’

조연출 2년차, 장기 해외 출장 경험 없음, 운동 부족으로 근력이 약해 짐을 열심히 나를 수도 없음, 영어가 짧아 진행도 썩 매끄럽지 않음. 결론은, ‘도대체 조연출로 써먹을 구석이 없음’. 하지만 나는 “북극 보내주세요”, 하고 손을 들었고 결국 갔다 왔다. 살아 돌아 왔다.

지구 온난화가 문제라고 했다. 북극이 몇 년 내로 사라질 수 있다고도 했다. 더워진 날씨로 얼음이 모두 녹아버려 해수면이 상승할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뉴스와 통계에도 불구하고, 북극이 결코 ‘안 춥다’고 상상할 순 없었다. 아무리 날씨가 따뜻해졌어도, 북극은 북극이다. 가장 바깥에 입은 거위털 재킷에서부터 가장 안쪽에 입은 내복으로 도달하기까지는 다섯 장의 내피를 통과해야 했다. 해가 지지 않는 백야라지만 햇빛은 추위에 지친 몸을 달래주지 못했다. 생전 처음 겪는 한파. 발바닥과 등판에 항상 찰싹 붙어있던 핫팩의 따뜻했던 기억.

▲ MBC 창사47주년 특집다큐 <북극의 눈물> ⓒMBC
예상보다 추웠던 북극은, 생각보다 일찍 녹기 시작했다. 얼었던 바다가 쩍쩍 갈라졌고, 이렇게 일찍 얼음이 녹을 줄 몰랐던 촬영팀은 촬영하는 동안 큰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썰매를 달리는 얼음판 밑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고, 그 얼음판은 자꾸만 얇아지기 시작했다. 얼음이 일찍 사라지리라 ‘예상’을 했고, 그 예상을 ‘계산’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촬영 계획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죽을 뻔도 했다. 그린란드 사냥꾼 촬영을 갔던 B팀 조연출 선배의 이야기다. 사냥꾼이고 촬영팀이고 죄다 남자뿐인 얼음 판 위에서, 그녀가 화장실 자리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높은 파도가 얼어 적당한 가림막이 만들어진 곳이라면 어디든지 그녀의 화장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볼 일을 보러 큰 얼음 덩어리 뒤로 돌아갔고, 그런가보다 하고 나머지 촬영팀은 그녀를 기다렸다.

그러다 갑자기 사냥꾼 한 사람이 그녀가 있는(있는 줄 알았던) 얼음 덩어리 뒤를 향해 냅다 뛰기 시작했다. 놀란 촬영팀도 덩달아 뛰었다. 그녀가 사라졌다. 사냥꾼은 갈라진 얼음판 위에 걸쳐진 그녀의 손을 발견했다. 새파랗게 얼어버린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자 얼음물에 푹 젖어버린 그녀의 긴 머리카락과, 그 머리카락들 사이로 공포에 질린 그녀의 얼굴이 딸려 올라왔다. 1분만 늦었으면 마비가, 15분이 늦었다면…. 상상하기 싫다. 어쨌든 그녀는 살아왔고, 용감하게도 2차, 3차 촬영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소주, 소주 노래를 부르고 있다.

<북극의 눈물>은 참 (못난 조연출이 봐도) ‘빵빵한’ 프로그램이다. 돈도 참 많이 들었고(20억!), 좋은 장비도 썼고(영국 BBC <Planet Earth>에서 쓴 항공 촬영 장비!), 많은 사람들이 한데서 칼바람 맞아가며 공들여 찍었다.

▲ 서정문 <북극의 눈물> 조연출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가장 빵빵하게 만든 건 제작진의 ‘고민’이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누이트의 얼음판 사냥은 언제까지 가능할 수 있을까? 북극곰은 얼마나 더 북극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북극의 눈물>이 북극을 구할 수 있을까? … 답은 아무도 모른다. 12월 7일부터 28일까지 매주 한 편씩 방송 낸다고 밤새다 보면 어느 순간 턱 하고 답이 주어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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