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론과 인권] 김진웅(선문대 언론광고학부교수 ‧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장)

▲ 김진웅 교수
흔히 언론과 관련된 인권문제는 언론(인)에 의해서 일반시민이 피해를 입는 경우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이면에는 신문 방송 등 매스미디어에 종사하는 언론인도 권리를 크게 침해당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최근 PD들의 연출권 침해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12월1일, 드라마를 제작하는 방송3사 PD 수십명이 바쁜 일손을 멈추고 드물게 한자리에 모였다. 최근 드라마시장의 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덕분이다. 드라마제작의 특성상 조직문화나 세상의 흐름과는 담쌓고 자신의 일에만 전념하는 것이 일상생활인데, 왜 이들은 긴급히 회동했을까. 이미 오래전부터 드라마는 자체제작보다는 상업성을 지향하는 외주제작이 대세를 이루어 왔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를 기획하고 연출하고 제작하는 이들의 본업이 줄어든 것이다. 이들이 누렸던 과거의 화려한 위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PD에게 부여된 연출자로서, 제작자로서 고유한 권리가 박탈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PD는 드라마를 연출 감독해야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따라서 연기자, 작가 등은 PD의 지휘봉에 따라 화음(和音)을 내야하는 제작요소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스타 작가가 연출자를 고른다. 스타 연기자가 마음에 드는 PD를 찍는다. 드라마를 오로지 흥행산업으로만 여기는 제작사는 마음에 드는 PD를 고용한다. 따라서 최근 드라마는 스타 연기자 및 작가가 먼저 정해지고 나서 PD가 선정되는 주객전도의 시대가 된 것이다. 과거 PD를 정점으로 ‘기획-섭외-제작’ 순서로 진행되는 ‘드라마교본’은 더 이상 맞지 않는다.

PD는 주연 스타나 작가의 마음에 거슬리면 중도하차 당할 수 있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하였다. 사실 드라마에서 PD가 수행하는 역할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데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유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적 혼을 작품에 관철시킬 수 있겠는가. 이제 드라마감독으로서 이들의 인권은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한다. 

▲ ‘TV 드라마 위기와 출연료 정상화’를 주제로 한 세미나가 한국TV드라마PD협회 주최, 한국PD연합회 주관으로 지난 1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렸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가, 방송사는 이들을 보호할 수 없는가. 경영진을 대변하며 드라마를 지휘‧감독하는 방송사 담당국장은 한 세미나에서 의미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새벽에 출근해서 심야에 집에 들어갈 때가지 신경쓰는 것은 오로지 돈‧돈, 광고‧광고, 협찬‧협찬 뿐 입니다. 명색이 드라마국장인데 대본하나 읽지 못합니다.” 이는 비단 최근의 경제위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온 드라마제작시장의 단면이다.

PD의 불행은 드라마 제작영역을 자본시장논리라는 물신(物神)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권(物權)이 인권(人權)을 지배하는 현상이 일반화된다. 물신화된 스타 작가 제작자가, 연출자 감독자인 PD를 협박할 수 있는 상황에서 좋은 작품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 PD는 물신지배시대의 희생자이다. 따라서 오늘날 드라마PD가 처한 위기는 구조적이고 치유하기 힘든 인권침해에 해당된다.                 

공익적 지상파방송사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이들의 권리는 개개인이 누리는 자유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전 국민의 염원을 담고 이를 대신 수행하는 권리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연출자이자 제작자로서 이들이 향유하는 권리는 보호되어야 한다. 아울러 PD들도 대오각성 해야 한다. 예술작품으로서 드라마를 제작하는 권리를 지켜 왔는지, 혹은 PPL(간접광고)을 위해 드라마로 위장한 광고를 제작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PD들이여! 감독으로서 자존심을 회복하라.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