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침묵한 ‘정청래 폭언 허위사실’ 판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핫이슈] 문화·조선일보의 보도는 정당한가

정청래 전 통합민주당 의원의 ‘교감 폭언’ 파문을 기억하시는지. 지난 18대 총선에서 서울 마포을에 출마한 정청래 전 통합민주당 의원이 초등학교 교감에게 폭언을 했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교감 폭언’ 파문은 당시 <문화일보>와 <조선일보>가 보도해 알려진 내용인데 보도 직후 정 전 의원이 반발하면서 진위 논란을 빚었다.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서 발생한 이 사건의 영향으로 당시 정 의원은 한나라당 강용석 후보에게 6383표 뒤져 낙선했다.

그런데 지난 12일 ‘주목할 만한’ 판결 하나가 내려졌다. 서울 서부지방법원 제11형사부(장진훈 부장판사)의 판결이다. 재판부는 ‘정청래 전 의원의 교감 폭언’이 허위사실이라며 이를 언론에 유포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나라당 구 의원 이모(41) 씨와 주부 최모(40) 씨에 대해 각각 벌금 200만 원과 8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 “정청래 전 의원 교감 폭언은 허위”

▲ 데일리서프라이즈 12월12일자 보도.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구 의원인 이 씨가 공직선거법 규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경험하거나 확인하지 않은 사실을 기자에게 전달한 것은 왜곡된 선거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으므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모 씨 등은 지난 4월 5일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서울 마포 을에 출마한 정 전 의원이 초등학교 교감에게 폭언을 했다는 허위 제보를 2곳의 언론사에게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었다.

이번 재판부의 판결이 의미하는 건 단순하고 명쾌하다. 정청래 전 의원이 교감에게 폭언을 했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폭언 파문’의 영향으로 낙선까지 한 정 전의원 입장에서 보면 무척 억울한 일이지만 지금 선거결과를 되돌리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남는 문제가 있다. 당시 ‘허위제보자’의 발언을 바탕으로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문화일보>와 <조선일보>의 책임은 없는가 하는 문제. 이 문제와 관련해선 이미 검찰이 내린 판단이 있다.

▲ 문화일보 7월25일자 8면.
지난 7월25일 서울 서부지검 형사5부(노승권 부장검사)의 무혐의 처분 결정이 그것이다. 검찰은 “언론사의 보도 과정에서 일부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취재기자들이 현장 목격자라고 주장하는 제보자들의 진술을 믿고 보도했다”며 “기자들이 허위 인식하에 보도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어 무혐의 처분했다”고 밝혔다.

자신들의 보도가 정당했음을 ‘밝혀주는’ 검찰의 결정이었음에도 당시 문화·조선일보는 이를 거의 단신 수준으로 처리했다. 그 이유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언론사의 보도 과정에서 일부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되지만”이라는 검찰의 판단이 자신들의 뒤통수를 계속 당겼기 때문일 것이다.

허위 제보자의 발언 중심으로 보도한 문화·조선일보의 책임은 없나 

당시 검찰이 내린 결정을 두고 논란이 일긴 했지만 기본 취지는 대강 이런 것 같다. 기사가 비록 허위제보에 의해 작성됐지만 만약 해당 기자가 그 사실을 몰랐다면 명예훼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뭐 이 정도 아니었을까.

문제는 검찰의 이 같은 취지가 ‘정청래 전 의원의 교감폭언’ 파문에 온전히 적용될 수 있는 지 여부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재판부의 판결을 계기로 이 부분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언론의 침묵을 고려하면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지만 제2의 ‘피해자’는 막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주목해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우선 “확인하지 않은 사실을 기자에게 전달한” 당사자가 한나라당 구 의원이라는 점이다. 이 사실을 당시 문화·조선일보 기자는 몰랐을까. 단정은 피해야겠지만 선뜻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 문화일보 4월4일자 8면.
지난 7월 발행된 <한겨레21>(720호)은 이와 관련해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공개하고 있다. 당시 <한겨레21>은 정청래 전 의원 소송과 관련해 문화일보가 검찰에 제출한 답변서를 입수해서 공개했는데, ‘교감을 자르겠다’는 문제의 발언은 김모 당시 강용석 한나라당 마포을 국회의원 후보 선거사무실 사무장의 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니까 문화일보 기사의 결정적 제보자가 바로 정청래 전 의원 상대 후보 진영 선거사무실 사무장이었던 셈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문화·조선일보는 18대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서 상대측 후보 진영의 말을 바탕으로 선거 판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는 것.

이 대목에서 주의깊에 봐야 할 것은 정청래 전 의원이 그동안 문화·조선일보가 자신과 관련한 기사를 ‘정치적 보복’ 차원에서 보도했다고 주장해왔다는 점이다. 과거 자신이 문화일보 연재소설 ‘강안남자’의 선정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해 온 점 그리고 조중동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것에 대한 보복차원에서 이를 집중 보도했다는 게 정 전 의원 주장이다.

제보자가 한나라당 소속 … 기자는 정치적 의도 정말 몰랐을까

실제 문화일보는 지난 4월4일부터 총선이 치러진 4월9일 전까지 정청래 전 의원의 ‘폭언사건’과 관련해 9건의 기사를 쏟아냈으며 정 전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 강용석 후보에게 6383표 뒤져 낙선했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한겨레21>(720호) 보도에 따르면 문화일보가 법원에 제출한 취재 기록과 당시 문화일보 보도 내용이 다르다. 취재기록과 보도 내용이 다르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상황인데 이 다른 부분이 핵심이다. 정 전 의원이 교감을 자르겠다고 발언한 것을 당사자인 김모 교감이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겨레21>이 보도한 내용을 일부 인용한다.

▲ 조선일보 4월7일자 10면.
“교감 선생님, 그날 그 사람이 말했던 게요, 제가 질문을 드렸는데 그거랑 많이 다른가요? 어떻게 현직 의원에게 이럴 수 있냐, 당신하고 교장 다 자를 수 있다,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한.”(문화일보 기자)

“아니, 정말로 내가 그 부분은 못 들었어요. 못 들은 이유가 그때도 얘기했지만 나는 안쪽에 있었고, 그 사람 내가 밀어내고 나는 안에 있었고, 그 사람은 밀려서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그 후속 이야기는 내가 들을 수가 없었어요.”(김 교감)

그러니까 정리를 하면 이렇다. △정청래 전 의원으로부터 ‘모욕적인 언사’를 들은 김모 교감이 정작 ‘교감을 자르겠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 ‘교감을 자르겠다’는 발언은 김모 당시 강용석 한나라당 마포을 국회의원 후보 선거사무실 사무장의 발언이다 △문화일보가 당시 현장에서 들었다는 제보자(한나라당 구 의원)는 현장에 없었으면서 허위제보를 했고, 결국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으며 이번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문화·조선일보 기자는 무혐의 결정이 내려졌다.

<한겨레21>이 지적한 것처럼 “오직 문화일보와, 문화일보가 제보자라고 밝힌 정청래 전 의원의 상대 진영 관계자가 유일한 ‘폭언’의 목격자들인 셈”인데 과연 문화와 조선일보의 무혐의 처분이 온당한 것일까. 이 언론사의 ‘정치적 의도’는 정말 전혀 없었던 것일까.

▲ 문화일보 4월7일자 사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