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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닷컴]

방송은 사람 사귀기에 참 좋은 직업이다. 일단 많은 사람들이 방송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고, 또 방송에 출연해서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쉽게 친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게 중에서도 특히 대구에 정착한 타지방 출신들이나 학교 때문에 서울 등지로 떠났다가 한참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더 사람이 그리운 법이다.

경북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쭉 살아온 나 같은 토박이 지방방송쟁이한테는 이렇게 가끔 다른 지방출신들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자극인지 모른다. 대체로 이들은 대구라는 지역사회에 대해 만족감과 불만을 정확히 드러낼 줄 알고 토착화된 문화나 풍토에 이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어느 지방이나 비슷하겠지만 토종 엘리트들의 끼리끼리 문화가 워낙 견고해서 그 주류에 끼지 못하는 소외의식도 강하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이들의 목소리가 지방에서는 매우 소중하다.

늘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같은 말만 주고받는다고 생각해보자.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만약 아놀드 토인비가 말한 ‘새로운 변방’이 한국의 지방에서 등장한다면 그것은 아마 이런 타 지방출신 정착민들에게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들을 제대로 대접하고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들 비슷한 처지지만 대구·경북도 인구 유입 대비 유출이 역전현상을 보이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지방언론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당연히 지역의 인재와 인구의 유출을 막는 대책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떠나는 사람들을 붙잡는데 쏟는 정성의 일부를 대구에 사는 타 지방 사람들에게 쏟아보면 어떨까? 알다시피 대구의 도시 이미지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보수를 넘어 수구의 이미지가 고착화되고 몇 차례 참사와 미제 사건·사고들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무슨 일만 터지면 “또 대구냐?” 라는 댓글이 따라 다닌다. 오죽 하면 ‘고담 대구’라는 말이 생겼을까? 하지만 어쩌겠나. 이게 다 도시 이미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대가인데.

그렇다면 도시 이미지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여러 가지 방법론이 있겠지만 우선 대구에 정착해 살고 있는 타 지방 사람들을 샘플로 해서 그들의 의식과 태도, 그리고 대구에 관한 관점 등을 면밀히 조사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는 게 필요하다. 그들이 대구에 살면서 바라고 아쉬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들이 정착할 때 힘든 점은 어떤 것들이었는지. 이런 걸 조사하고 추적하다 보면 대구 토박이들은 보지 못하는 대구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데이터와 정보를 확보한 뒤에야 진짜 도시 마케팅이 가능하다.

도시 마케팅에서 또 중요한 것은 유명한 인재, 인물들을 지방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다. 그런 점에서 강원도의 행보는 대단히 주목할 만한데, 고(考) 박경리 선생이 고향인 통영이 아니라 원주에서 말년을 보낸 일이나 소설가 이외수 씨가 화천에 살면서 창작 활동과 전국 방송을 타는 일 등은 의미심장하다. 이들이 지방에 정착한 데는 본인의 뜻도 있었겠지만 그 뒤에는 틀림없이 강원도의 뒷받침이 있었을 것이다. 대구시장이나 경북지사가 이런 일에 눈을 떠야 한다.

드물지만 전국적인 인사들 가운데 지방 살리기에 우호적인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을 대구나 경북으로 모셔 정착해 살도록 하면 어떨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만나려고 지방을 찾을 것이다. 서울에서 활약하는 대구·경북 출신 인물들은 또 좀 많은가. 한창 이름을 떨치려는 사람들은 좀 부담스럽다 하더라도 이미 입지를 굳힌 인물들은 지방정부가 조금만 공을 들이면 50대 이후부터는 지방에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이동유 CBS대구 PD

이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행사도 만들고 모임도 갖도록 후원하는 것이다. 21세기를 콘텐츠의 시대라고 하는데, 콘텐츠는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려면 뭔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들을 배려하고 대접하는 일에 현실적인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 그게 콘텐츠도 만들고 지방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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