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에 있어서의 사실(史實)과 허구(虛構)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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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contsmark0|역사극은 크게 정통사극과 통속사극으로 나눌 수 있다. 정통사극은 정사(正史)를 바탕으로 하여 스토리를 전개하는 드라마로서 가능한 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려는 태도를 취하는 반면 통속사극에선 역사는 단지 배경으로 존재할 뿐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역사라는 옷을 걸친 멜로드라마일 뿐 역사성은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통속사극의 특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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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용의 눈물>, <왕과 비>, <태조 왕건>으로 이어지고 있는 kbs의 대하드라마는 정통사극을 표방하고 있다. 때문에 집필에서 제작에 이르는 전 과정을 통해 사료의 검증과 고증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옛 시대를 오늘에 완벽하게 재현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며 역사 연구가나 사학자들 사이에도 역사를 보는 관점과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주장을 정설로 받아 들여야 할지 갈등을 겪게되는 일이 허다하게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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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최근 <태조 왕건>과 mbc <허준>이 인기몰이를 하면서 역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함께 사극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비판도 늘어나고 있다. <태조 왕건>에서 궁예의 어린 시절 묘사나 해적 능창과 견훤의 대결, 그리고 왕건이 궁예에게 투항하기까지의 행적은 가공된 것이며, <허준>의 경우에도 허준의 스승 유의태는 허준보다 오히려 후대인 숙종 때의 인물이라는 지적과 함께 tv사극이 사실(史實)을 왜곡하고 있다는 학계의 비판이 있었다. 역사적 사실을 추적하고 연구하는 사학자로서 이런 주장은 지극히 당연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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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9|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역사극이 비록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하여 구성된다고 하더라도 역사 교과서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 점을 혼동하고 있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사극도 드라마인 이상 사실의 전달보다는 진실의 전달을 생명으로 하는 창작의 영역이라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즉 역사를 소재로 하되 사실이 어떠한가를 밝히기보다는 그러한 사실을 있게 한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 사극이 지향하는 목표인 것이다. 때문에 사극집필에 있어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사실묘사가 아니라 시대를 통찰하는 안목과 해석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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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2|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놓고도 작가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며 같은 인물을 놓고도 보는 관점에 따라 상반된 평가를 할 수도 있다. 역사소설의 경우 이광수의 "단종애사"에선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의 충절에 무게를 두고 세조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반면 김동인의 "세조대왕"에선 오히려 세조에게 긍정치를 두고 있다. 또한 김동인은 "젊은 그들"에서 민비를 반역사적 인물로 묘사하고 대원군을 위대한 지도자로 추켜 올리고 있는 데 반해 이문열은 "명성황후"에서 민비를 적극 옹호하고 있다. 작가의 창의력이 존중되는 서양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다. 뒤렌마트는 희곡 "로물루스 대제"에서 로마를 망하게 한 폭군 로물루스를 현자(賢者)로 묘사하고 있으며 소설 "람세스"엔 시대가 전혀 다른 두 인물, 이집트 왕 람세스와 그리스의 시인 호머를 대면시켜 동양과 서양의 사상적 관통을 시도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이냐 아니냐의 차원이 아닌 작가의 창작의 영역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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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5|tv사극이 갖는 국민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사료의 뒷받침이 없는 역사 뒤집기나 인물에 대한 지나친 미화는 절제되어야 한다.
|contsmark16|그러나 사실이냐 아니냐의 잣대로만 사극을 재단하려는 태도는 좋지 않다. tv사극 또한 역사소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지만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과 해석력이 보다 중요시되는 창작의 영역이라는 전제아래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역사극의 힘은 개론적 지식의 나열보다는 시대적 맥락 속에서 역사적 상상력을 통한 감동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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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9|사극을 집필하는 작가와 제작자는 무척 피곤하다. 조상을 미화시키려는 후손들이 걸핏하면 문중의 이름으로 공격과 압력을 가해오며 때론 사관이 다른 학파들의 논쟁에 휘말려 곤욕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작가를 괴롭히는 것은 사실의 잣대로만 사극을 재단하려는 풍조이다. 그것은 작가의 상상력을 고갈시키고 창작의욕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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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2|영국의 사극은 기사도를 강조하고 일본의 사극은 무사도를 고취시키고 있으며 역사적 전통이 일천한 미국에서조차 서부극을 통하여 개척정신을 부각시키고 있다. 우리의 사극은 국민들에게 과연 어떤 가치관을 심어줘야 할 것인가? 이 시점에서 우리가 참으로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사실이냐 아니냐의 논쟁이 아니라 tv사극을 통해 어떤 가치관과 철학을 제시할 것인가에 모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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