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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투고

제2회 다큐멘터리영상제 - 그 파행의 전말을 밝힌다
자본의 논리에 짓밟힌 다큐멘터리 정신
l승인1997.05.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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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최진아<표현의 자유 쟁취와 영상관련 악법폐지를 위한 대책위원회 기획실장>1997년 4월 15일4월 11일부터 17일까지 열렸던 여성영화제에서 모 일간지 영화담당 기자를 만났다. 업무이기도 했거니와 그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이 애정을 배가시켰던지 내가 얼굴을 들이민 사흘 내내 행사장 주변에서 마주쳤는데, 그 중 한날 잠깐의 대화 때 그 기자분 한 말이 걸작이었다. “우리도 먹고 살아야되는데, 10년째 똑같은 얘기를 아주 지겨워죽겠”단다. 지난 3월 14일 확정된 영화진흥법 개정안 얘기를 꺼내자 나온 응대였다. 충분히 진지하면서도 그 표현이 능청스러워 가끔 사람을 웃게 만드는 그 양반의 면면다운 멘트다. 등급심의제를 성안해서 개정을 요구한 때가 88년이었으니, 정말로 꼬박 10년이다.‘불법’으로 반기를 들었거나, 악법을 토양으로(?) ‘온유’의 화법을 구사했거나, 참담하지만 제약은 비껴갔던 영화인들과, 그런저런 전말을 알고 ‘검열 철폐’에 연대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이끌어낸 ‘공륜 사전심의’에 대한 위헌 판정. 등급외전용관 허용을 둘러싼 공방을 통해 다다른 ‘표현 자유’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공감의 확대. 그 자유를 보장하는 법적 근거가 될 완전등급심의제와 소형, 단편영화,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에 대한 등급예외규정의 명문화. 그리고 야당의 공조…. 제도적 검열의 철폐를 위한 또 한차례의 싸움은 이렇게 몇 달을 숨가쁘게 하더니, 끝났다. ‘가위질’이 ‘등급보류’라는 방식으로 변형된 검열제도의 온존, 신한국당의 ‘완승’이었다. 지겨운 건 기자 양반만이 아니다.
|contsmark1|1997년 4월 16일‘제2회 다큐멘터리영상제’에 문제가 생겼다. 개막작 ‘태평천국의 문’이 취소되고, 국내 공모전 출품작은 ‘개별 심의’를 받으라는 통보가 왔단다. 심사위원으로, 프로그램 어드바이저로, 코디네이터로 다큐영상제에 결합했던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자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밤 10시 30분, 긴급 회의가 열린다.제도적 검열이 존재하는 땅에서, 그나마 ‘영화제’라는 공간의 특수성조차 인정되지 않는 나라에서 열리는 이 행사의 태생적 한계는 분명했다. 그러나 95년 서울단편영화제를 시작으로 다큐영상제, 또 부산국제영화제 등 규모와 대중적 호응도가 전례 없는 행사들이 생겨나면서 ‘영화제’는 국가기관에 의한 검열 문제를 제기하는 장이자, (각종 편법으로) 검열조항을 사문화시켜가는 매개이기도 했다. 현행법이 규정하고 있는 ‘심의예외요건’을 충족시키는 영화제가 하나도 없었으므로, 참가를 요청해야 하는 외국 감독들에게 영화제도 검열 받는다는 사실을 납득시킬 수 없다는 곤혹스러움과, ‘비판과 실험의 자유’ 보장이 경쟁의 활기를 북돋운다는 출품자들의 계속되는 문제제기가 문체부와 공륜, 그리고 영화제 주최측의 ‘협상’을 낳았고, 결과는 ‘일괄 심의’니, ‘서류 심사’니, 외국 초청작은 ‘심의’를 하되 국내 초청작과 공모작은 ‘면제’한다는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났다.관객을 만날 수 있는 대중적 공간의 필요성과 검열에 대한 저항 사이의 딜레마를 존재조건으로 지녀온 독립다큐멘터리가 다큐영상제와 관계를 맺은 것도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공식적인 저항은 아닐지라도, 개별 작품에 대한 검열은 피하고 관객을 만날 수 있었으므로 그것 또한 자유로운 ‘공간’을 열어나가는 한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공모전 출품작에 대한 개별 심의’는 독립다큐멘터리와 다큐영상제가 결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를 무너뜨렸다. 주최측이 문체부의 압력을 무시하지 못하리라는 건 분명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독립영화의 제도권 진출(?)이 시작됐지만, 그럼에도 ‘검열 반대’는 독립영화의 강령이고 무엇보다 이행사의 결합은 조직적이지는 않았으나 공식적인 것이었으므로, 심사위원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사퇴는 자명했다.또 하나, 개막작 취소문제는 재벌이 돈을 대는 영화제가 어떤 파행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실감하게 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사건이다. 문체부와 안기부, 중국 대사관, 삼성 경영진 그리고 삼성이 제작한 영화의 중국 배급을 중개하는 중국 쪽 에이전트가 연루된 개막작 취소 사건은 자본에 의한 검열이 제도적 검열만큼이나 위력적임을 인식시킨다. ‘태평천국의 문’은 중국정부가 문제삼은 작품이므로, 만약 상영을 할 경우 영화 ‘은행나무 침대’와 방송 드라마 간이역 의 중국 배급에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언질이 삼성 경영진의 ‘마음’을 움직인 결과란다.재벌은 돈을 대고, 운영권은 영화인들이 갖는 국제 영화제의 관례를 우리는 알고 있고, ‘태평천국의 문’이 상영된 여러 영화제에 중국 정부의 압력이 있었음에도 그 영화제들이 굴하지 않고 영화를 지켜냈다는 사실도 전해들었다. 경제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자본의 논리가 ‘개막작 쯤’은 바꿔버릴 수 있고, 그래서 다큐멘터리의 정신을 짓밟는 것이 그토록 수월할 수 있다면, 자본과 독립다큐멘터리의 ‘공존’에 대한 실험은 중단하는 것이 마땅하다. 영화에 대한 공(公)적 인식이 경제적 가치에 우선하지 않는 한 자본이 마련하는 영화제의 태생적 한계는 너무 뚜렷하므로.
|contsmark2|1997년 4월 17일심사위원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주최측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동시에 공모전 출품작 ‘개별 심의’ 소식을 알게된 ‘풀은 풀끼리 늙어도 푸르다’의 제작자 김태일 감독이 작품 출품을 철회했다. 그리고 문제는 더 커져갔다. 영상제 자원봉사단이 총사퇴 결정을 내린 것이다. ‘개막작 취소는 우리가 동의하고, 지지를 표한 다큐멘터리영상제의 기본정신을 훼손한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개막작을 취소하는 영화제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지지를 표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자원봉사를 선택한 결정을 철회한다…’ 영상제 개막 전날이었다.
|contsmark3|1997년 4월 18일공식 프로그램이던 기자회견은 취소됐다. 예상대로 심사위원은 대체됐고, 행사 진행은 삼성의 신입사원들이 하고 있었다. 사퇴한 자원봉사단은 행사진행 대신 극장 주변에서 대자보를 들고 서 있거나, 전단을 배포했다. 기이한 분위기였지만 개막은 선포됐다.
|contsmark4|1997년 4월 19일문제가 또 터졌다. 공모전 본선 진출작 ‘레드 헌트’의 상영이 갑자기 취소됐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날 밤 9시, 초청감독 세 사람이 모인 좌담회에선 ‘태평천국의 문’ 감독의 항의 성명이 낭독됐다.“…영화제는 전세계적으로 지배적인 해석에 도전하며, 강력한 기득권을 위협하는 독립영화를 관객들이 감상할 수 있는 흔치않은 공간이다. 영화제가 외부의 압력에 의해 자기 검열을 하게 되면 패배하는 것은 영화 제작자만이 아니며, 광범위한 관객들 또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하고, 복합적으로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태평천국의 문’이 곧 중국의 정치적 통제를 받게 될 홍콩에서 매일 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을 놓고 상영되는 반면에, 독립된 주권국가인 한국에서 외부의 정치적 이해가 그토록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컬하다. 우리는 이 영화제가 이러한 불행하고 잘못된 정치적 간섭에 굴복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이 영화제의 스탭, 심사위원, 그리고 모든 분들에게 지지를 표한다.”1997년 4월 20일제주도 4·3항쟁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레드 헌트’의 상영 취소는 검열이 얼마나 많은 유형, 무형의 억압을 낳고 있는지를 확인시켰다. 제작자의 ‘공식적인 해명’ 요구에 따라 작품 상영시간에 벌어진 토론회에서 들은 주최측의 답변은 차라리 비애스러웠다. 본선 진출작으로 확정된 ‘레드 헌트’가 ‘방송에 부적합한 소재’이기 때문에 실무선에서 본선 진출을 취소시켰다는 것. 영상제 개막 전인 17일에 나머지 본선 진출작은 ‘공륜 심의’를 받았고, 누락시킨 ‘레드 헌트’는 ‘심의’를 받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상영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당한 절차에 따라 본선 진출이 확정된 작품을 주최측이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이냐는 문제제기는 맥빠지는 얘기다. 핵심은 q채널 방영이 예정되어 있는 다큐영상제 수상작을 포함한 출품작에 대해 ‘방송 심의’를 고려해야 했다는 상황이다. 지난 해 이미 한 차례 경고를 받았다는 실무선의 고백은 ‘월급쟁이’의 고단함을 드러냈지만, 그렇다고 면죄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관객들은 ‘영화제’와 ‘방송’은 엄연히 다른 공간이며, 방송에 적합한 소재만을 찾겠다면 아예 영화제 규정에 명시하라고 목청을 높인다. 혹시 ‘공륜 심의’에 넣었는데 통과되지 못하자 본선 진출을 취소시킨 것이 아니냐는 혐의가 불거져나온 것도 (사실 확인은 어려웠으나) ‘문체부로 화살이 안 가도록 하라’는 경영진의 지시가 있었다는 ‘설’이 돌았기 때문이다. 제도적 겸열장치에 문제를 제기하는 쪽과 실무선의 ‘독단’일 뿐이라는 답변 사이에는 어떠한 합의도 불가능했고, 급기야 ‘그렇다면 공륜 심의에 넣어 보라’는 제안까지 등장했다.
|contsmark5|1997년 4월 21일실무선의 ‘독단’을 증명하기 위해서였을까. ‘레드 헌트’를 ‘공륜 심의’에 넣었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조건이 붙었다. “이 작품은 피해자 입장에서 제작된 것이며…” 문구를 자막에 넣으면 심의를 통과시켜 주겠단다. 제작자인 ‘하늬영상’은 거부했다. 제작자의 자유로운 의사에서가 아니라면, 어떤 식이든 작품에 손을 대라는 요구는 검열이므로. 그리고 ‘표현 자유’는 한국의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자가 곤궁함 대신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자산이자 기쁨이므로.
|contsmark6|1997년 4월 22일‘제2회 다큐멘터리영상제’는 방송프로덕션부문 상을 받은 ‘스트라이커’의 김진상 감독의 수상 거부로 막을 내렸다. 이날도 관객들 손에는 영상제에 대한 우려와 비판과 애정을 담은 각종의 전단이 쥐어졌고.제도적 검열의 의연함과 부가된 자본의 검열, 이 이중의 족쇄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은 우리에게 없다. 하다못해 영화제에서도 자유는 허락되지 않는다. 제도적인 검열의 완전 철폐와 영상물에 대한 공적 인식의 확대, 그것을 받치는 장치의 제도화가 아니고서는 이 족쇄를 끊을 수 없을 것이다.‘월급쟁이’의 비애와 고단함을 느끼게 했던 영상제 실무자의 모습을 아마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contsmark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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