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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contsmark0|cbs에서 방송 일을 한다는 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요즘 같은 다매체 시대에 라디오 채널만을 갖고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뻔한 사정도 그렇고, 제작 여건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구질구질한 이야기도 이젠 새삼스러울 정도가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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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한 명의 직원으로서 cbs를 생각할 때에도 시원한 사연은 별로 없다. 다른 방송사보다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고, 방송의 영향력이 엄청나서 거기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보는 것도 애시당초 바라기 어려운 일이 돼 버린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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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사정이 이렇게 한심한데도 불구하고 그래도 cbs가 나름대로의 그 독특한 역할을 해 온 것은, 당연하겠지만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cbs에서 pd로 일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방송계에서 가장 큰 자율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뜻했고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 가장 독립적인 방송 제작을 할 수 있는 환경을 향유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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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9|가장 공정한 방송, 가장 진보적인 뉴스와 프로그램, 소외된 계층의 목소리를 가장 잘 대변하는 방송 이라는 평가들은 그래서 가능했다. 누가 뭐라 하든, "우리가 내야 할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데 우리 cbs의 유일한 장점이 있었던 것이다. 방송과 관련한 각종 시상에서 cbs의 pd와 기자들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엄청난 수상을 해 온 것도 cbs만의 그런 독특한, 유례가 없는 자율성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참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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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2|그런데 지금, 2000년도 7월 하순에 접어들고 있는 이 순간, 우리의 그 유일한 장점이 땅에 묻히고 있다. 아니 이미 땅에 묻혀버렸는 지도 모른다. 다시 파 낼 수 있을는 지, 그것조차 확실치 않다. 그게 지금 우리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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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5|다들 아는 것처럼 이 비극은 하나의 화분에서부터 시작됐다. 집권당 사무총장에게 권호경 사장이 보낸 화분에서 "축 총선승리"라는 글귀가 "발견"됐을 때만 해도, 사장님이 제법 심각한 "실수를 하신 것"으로 보려고, 봐 주려고 했던 직원들이 상당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의 상황은 그런 직원들까지 "치를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모습은 cbs가 무너져 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으며 한 최고 경영자에 의해 50여 년 전통의 언론사가 그렇게까지 참담하게 더럽혀질 수 있음을 만천하에 증명한, 우리에겐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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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8|우리의 사장이란 분이, 우리의 자존심이었던 몇몇 프로그램을 "일부 젊은 층의 굴절된 시각"에 의한 "편견에 치우친" 프로그램이었던 것으로 최고 권력자에 고백을 하고, 그래서 그 "편견에 치우친" 프로그램들을 자신이 폐지했음을 자랑스럽게 신고를 하는 대목(이른바 "ys 충성편지"의 하이라이트 부분이다)은 특히 우리 "일부 젊은 굴절된 pd"들로선 참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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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1|pd들의 대부분이 결정적으로 돌아선 것이 이 "ys 충성편지"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그 이후 부장단의 "시국 선언"과 뒤이은 서명 부장단에 대한 부당 징계와 대규모 보복 인사는 오히려 cbs 사람들의 결의를 다져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된다. 약간의 망설임의 단계에 있던 사람들까지, 이젠 권호경 사장의 실체를 정확히 보고 자신이 서야 할 곳이 어느 쪽인지 명확히 판단하게 됐다고 하면 적절한 표현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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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4|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회사측의 징계가 부당하다는 결정을 내렸고, 이례적으로 각 신문에는 권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기명 칼럼들이 실리고 있으며, 언노련은 권사장이 언론사 방북단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도 아닌 cbs 사장이 방북 언론사 사장단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정말 창피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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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7|cbs가 지금 겪고 있는 창피함은 당연히, 권호경 사장 때문이다. 또는 권호경 사장 그 자신이 우리의 창피함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권사장이 기다리는 건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는 것뿐이라는 분석도 있는데, 이른바 "파업 유도"가 그의 유일한 전략이라면 그 또한 창피한 노릇이다.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파업을 대비해서 사규까지 무시해가며 정신없이 신입사원을 뽑으려고 하는 거라면, 이건 정말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게 아닐까.
|contsmark28|cbs는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다. 이걸 아직도 모르고 있는 사람이 cbs에 한 사람 정도 있는 게 아닌지, 사실 이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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