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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

새로운 도전
박진석
l승인1997.05.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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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얼마전 무역상담을 위해 독일을 다녀온 한 친구로부터 유럽, 특히 독일인들이 가장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미래의 경쟁상대국 중 하나로 한국을 손꼽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을 때 그저 한 개인의 즉흥적인 견해려니 하고 가볍게 지나쳤던 생각이 난다. 그의 얘기인즉 21세기의 변화무쌍한 노정을 따라 과거 수세기를 지탱해온 기간산업의 거대한 하드웨어구조가 서서히 붕괴되고 이를 대체하게 될 소프트웨어의 기하급수적인 용량확장의 와중에서 질서와 규율의 오랜 틀 속에 알게 모르게 갇혀버린 모범국가들의 한계가 서서히 드러나는 반면 무질서와 변칙의 혼란함이 적당히 어우러진 국가군들의 신선한 도전이 새삼 돋보이게 되리라는 것이다. 하긴 ‘기술입국’을 입버릇처럼 되뇌는 정책입안자들의 산만한 청사진 한묶음보다 청계천 골방에 틀어박혀 얼핏 황당무계한 ‘가설’을 붙들고 기약 없이 날밤을 새는 소프트웨어 매니아들의 처절한 고군분투가 이러한 가능성의 한 단면으로 떠오를 수 있긴 하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들은 저들의 고색창연한 명검이 요리해낼 수 없는 뼛속 깊은 곳의 부드러운 속살들을 저며낼 수 있을 만큼 가늘고 섬세한 칼날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그래서인지 수년 전부터 해묵은 빚을 기필코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투의 당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논리로 게걸스럽게 덤벼들고 있는 저들의 ‘개방 압력’을 떨떠름하게 지켜보면서 우리네 방송의 험난한 미래가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예감하게 된다. 그리고 축적된 자본의 튼튼한 몸집과 선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두꺼운 피하지방을 자랑스레 두드리며 뭐든 먹어치울 수 있을 것 같은 저들의 가공할 식성을 견제할 수 있는 묘안이 무엇일까 고민해야 할 우리들의 처지를 생각해 보면 은근히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최근 국내외적인 핫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방송방식의 디지털화 계획이 주변여건의 성숙으로 보다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애당초 세계시장을 겨냥한 저들의 방대한 생산라인과 올망졸망 힘겹게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우리들의 소규모 생산라인을 비교해 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소나기처럼 퍼부어지게 될 정보의 홍수 속에서 과연 우리의 것을 얼마나 지키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여간 걱정스럽지가 않다. 디지털 방송방식은 신호데이터의 압축, 다중화 등으로 인해 전송할 수 있는 정보량이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나므로 수요자에게는 어지러울 정도의 다양한 선택권을 부여하게 되는 반면 정보공급자에게는 대폭적인 제작규모 확장 및 심각한 생존경쟁의 부담을 안겨주게 된다. 프로그램 제작, 공급의 제반 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우리네 현실을 감안한다면 다가오는 세기의 피할 수 없는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묘책을 서둘러 세워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그러나 한가지 고무적인 것은 다행히도 우리의 목표는 저들마냥 결코 채울 수 없는 ‘포만’을 향해 끝없이 계속되는 ‘허기’가 아니라 따뜻한 정과 아름다운 감동 그리고 맑은 진리에 굶주린 인류의 아픈 가슴을 어루만지는데 있기 때문에 늘 새로운 충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아무리 많은 점들도 그것이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다면 그저 위치를 나타내는 공허한 좌표에 불과하지만 하나씩 서로 이끌려 이어져나갈 때 비로소 하나의 차원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되며, 서로 이어진 점들의 양쪽 끝이 한없이 계속되는 ‘단면’의 ‘관성’을 포기하고 맞은편과 합체가 될 때 비로소 2차원의 ‘넓이’를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잡초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이끼의 황홀한 촉감을 땅바닥에 바싹 눈을 붙이면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는 조금 다른 각도로 접근하면 만날 수 있는 소박한 진리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구사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며 저들의 삭막한 가슴을 녹일 수 있는 신비로운 용해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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