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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세상읽기]

▲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88만원 세대 저자)
얼마 전에 일본 출판계의 어느 한 지인에게 들은 얘기가 있다. 일본의 지식인을 정의하는 방법에 관한 얘기이다.

“NHK를 늘 욕하면서, NHK가 불러만 주면 언제든지 달려가는 사람이 일본의 지식인이다.”

대충 이 정도면 일본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중적 행태와 함께 NHK가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최근 NHK가 방송프로 두 개를 같이 만들면서, NHK가 어떤 곳인지, 조금 더 직접적으로 경험할 기회가 생겼다.

전에도 NHK와 인터뷰 정도는 몇 번 한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기획부터 같이 하거나, 아니면 내가 방송의 주축이 되면서 NHK와 일을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솔직히 심경을 얘기하면 좀 귀찮다. 본 촬영 전에 현지 담당자가 예비 조사를 하고, 그 다음에는 준비 방송을 또 두 번 정도 하고, 그렇게 다 정리가 된 다음에 담당 PD와 하는 본 촬영을 하게 된다.

말로만 듣던 “10년씩 준비한다”는 NHK 다큐멘터리에 같이 참여하면서, 그 꼼꼼함에는 나도 좀 치를 떨 정도이다. 물론 그래봤자, 어차피 비슷한 얘기를 네 번 혹은 다섯 번씩 하게 되니까, 그렇게 한다고 해서 꼭 질이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어쨌든 꼼꼼히는 하는 것 같다.

KBS와도 오랫동안 다큐멘터리나 시사프로 같은 것들은 꽤 많이 만들었던 것 같은데, NHK에 비하면 KBS는 즉흥성이 강하고, 준비과정이 훨씬 짧다. 그래서 깊이는 좀 없는 편인데, 그 대신 PD들이나 작가들의 창의성이 더 많이 들어가게 되어서, 기계적으로 질이 떨어진다고 말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적은 돈을 들여서 짧은 시간 동안에 만든 것 치고는 멋진 화면들이 나왔다고 말하면 어느 정도 비교가 될까?

▲ NHK 홈페이지(http://www.nhk.or.jp) ⓒNHK
토론 프로도 좀 비교를 해보게 된다. 위성으로 방송하는 NHK의 주말 토론 프로 하나를 같이 준비해보는 중인데, 출연 하루 전에 질문지를 받아보고 나가게 되는 한국의 토론 프로와는 달리, 스무 개도 넘는 항목에 달하는 질문지에 한 달 전부터 미리 답변을 하고, 다시 이 답변을 모아서 새로운 질문지를 만들고, 다시 답변을 만들어내는 그런 절차를 밟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꼼꼼하다 못해서 논문 하나를 쓰는 기분이 들기는 한다. 반면에 한국의 토론 프로는 즉흥성이 강하고, 그래서 다이내믹하며 ‘쇼’라는 특징이 더 많이 가미되어서 재미는 있는데, 촘촘하다는 느낌은 훨씬 덜한 것 같다.

사극의 경우는 아직 한국은 다른 공중파에서도 사극을 만들기는 하는데, 일본은 공영방송인 NHK 외에는 거의 사극을 만들기가 어려워져서, 일본 시청자들은 사극이 나오면 “아, NHK구나”라고 이해한다고 한다.

그러면 뉴스의 데스크를 한 번 비교해볼까? 이건 좀 처참하다. NHK의 뉴스 역시 심층 취재와 다양성 측면에서 욕을 먹기는 하는데, 최근 KBS의 9시 뉴스의 데스크처럼 ‘양아치’라고 부를 정도까지는 아니다. 어쨌든 NHK는 ‘공익’ 그리고 ‘점잖음’ 정도의 가치는 아직 지향하는 것 같은데, KBS 9시 뉴스는 전두환 시절의 뉴스라고 하면 딱 좋을 정도로, 데스크가 최소한의 ‘점잖음’도 포기한 것 같다.

자, 5년 후에 어떻게 두 방송국이 달라지게 될까? 이 상태로 5년 지나면, KBS는 “한국의 지식인은 모두가 욕하고, 불러주면 창피하다고 안 나가는” 부자들만의 ‘애꾸눈’ 방송이 될 것 같다. 지난 연말, NHK는 ‘파견 마을’의 농성을 생중계했는데, KBS는 보신각 타종을 ‘쇼 프로’로 전락시켰다. 이러다 365일, KBS 9시 뉴스가 ‘쇼프로’가 될 지경이다. 그러나 ‘명박 쇼’, 솔직히 재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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