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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태인(경제평론가, 성공회대 겸임교수)

▲ 정태인(경제평론가)
과연 오바마는 루즈벨트가 될 수 있을까? 지금 미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앙숙이었던 경제학의 두 줄기 정책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7000억달러짜리 구제금융을 포함하여 이미 1조 달러를 훌쩍 넘은 유동성 공급은 통화주의 정책기조에 따른 것이다. 30년대의 대공황은 전적으로 화폐적 현상이고,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했다면 파국으로 치닫지 않았을 것이라는 프리드만-슈워츠의 주장은 지금 말 그대로 실천되고 있다. 현재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 버냉키야말로 프리드만의 진정한 신도이다.

한편 오바마는 무려 8125억 달러에 이르는 재정지출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케인즈주의의 처방전이다. 두 정책을 동시에 ‘선제적이고 과감하게’ 시술했을 때 초래될 인플레이션의 공포를 무시할 만큼 발등에 떨어진 불은 뜨겁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단순히 경기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돈을 쏟아 부어도 ‘돈맥경화’가 풀리지 않는 것은 케인즈의 ‘유동성 함정’에 빠졌기 때문인데 이 함정은 이자율이 너무 낮아서 생긴 것이라기 보다 복잡하게 얽힌 파생상품으로 인한 자신의 위험을 스스로 모르기 때문에 깊이를 알 수 없게 파인 것(“살려면 현금을 최대한 끌어 안아라”)이다. 케인즈주의적 재정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부 지출이 한번의 소득을 증대시킬 것은 틀림없지만 그 소득이 금융기관으로 흘러들어 갔을 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시 유동성 함정일테니 말이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결국 오바마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월 스트리트와 대결하지 않을 수 없다. 롱텀 매니지먼트 캐피탈(LTCM)사건(1998), 엔론사건(2001)이 이미 경고했던 문제(잘못된 유인구조와 허술한 규제)를 그 때 그 때 해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험을 분산시키면 된다며 적극적인 규제완화로 위험을 창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과연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금융자본이 벌어들이는 미국 기업 이윤의 40%를 포기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데, 바로 그 월스트리트는 또한 글로벌 불균형이라는 대외문제를 외국 돈으로 해결할 수 있게 만드는 원천이다. 더구나 달러 헤게모니를 스스로 놓겠다면 어느 국민이 흔쾌히 찬성할까?

오바마노믹스에는 해법이 없다. 그러나 그가 실패할 것이라고 지금 단정하는 것 또한 무모한 일이다. 루즈벨트는 처음 당선됐을 때 오바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경제사회정책, 예컨대 재정긴축을 신봉했다. 그러나 그는 대중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였고, “당신의 말이 옳다. 거리로 나가서 외쳐라. 내가 그 주장을 실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사회보장법과 와그너(노동조합 관련)법이 그 결실이다. 뉴딜 정책 하나 하나를 따져 보고 별 실효성이 없었다는 경제사학자들의 주장은 그 자체로는 맞을지 모르지만 공허하다. 루즈벨트가 국민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희망을 되살렸고 취임사에서 약속한대로 ‘공포 그 자체’를 잊도록 만든 것이 뉴딜 성공의 비밀이라는 사실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미국 헤게모니 확립기이자 대중운동이 한참 타올랐던 시기의 루즈벨트에 비해 헤게모니 쇠퇴를 관리해야 하고 이렇다 할 대중의 목소리도 없는 시기의 오바마는 분명히 더 불리하다. 그러나 아직도 그가 ‘담대한 희망’인 것은 풀뿌리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그 아우성을 듣는 훈련이 충분히 되어 있으며 그것을 철학으로 승화했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말은 떼일 뿐이다.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 그 외침을 물대포와 특공대로 막아라” 이런 대통령이 있다면 그가 아무리 루즈벨트의 노변정담(라디오 방송)을 흉내내 봐야 100% 실패한다. 위기에 책임져야 할 지배계급의 이익만 옹호하는 정책을 더욱 강화해서 결국 국민을 절망에 빠뜨리는 지도자가 위기를 극복한 예는 동서고금에 단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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