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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의 미디어리터러시(44)]

▲ 고승우 박사
TV가 사회문제를 다루는 형식은 여러 가지다. 뉴스나 다큐 또는 시사프로, 연예오락프로, 드라마 등을 통해서 다양한 주제가 다뤄진다. 오늘날 TV가 다루는 사회문제의 영역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공간이 확대되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관용, 배려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살피면, 우리 TV의 역사는 사회적 문제의 공론화에 대한 금기를 깬 역사와 같다.

TV의 사회문제에 대한 접근은 고정관념의 제약을 받지만 그것을 허무는 선구자 역할도 동시에 행한다. 우리 사회가 정보화 사회가 되고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되면서 TV가 외면하는 사회문제의 영역은 자꾸 좁아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문제를 다루는 시각, 방영 시간대 등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최근 일부 지상파 TV에서 시사 고발 프로를 폐지해 논란이 되었는데, 경제난, 정치적 이유, 사회문제에 대한 시각 차이가 그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로, TV가 아무리 다뤄도 충분하지 않을 분야는 경제난, 남북문제 등일 것이다. 이 분야는 그 해결책 모색이 쉽지 않아 어떤 시각으로 다루느냐에 따라 상반된 결론이 제시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해당사자들이 TV 등 미디어에 자신들의 입장을 직접 알리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서 시위나 집회 등의 수단이 동원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지난 해 촛불 시위와 집회에 이어 최근 용산참사를 둘러싼 시위 집회가 지속되고 있다. 용산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 발표이후 수사의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더 거세지면서 TV가 거리로 나선 시민, 유가족을 비추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용산참사에 대한 공권력의 과잉진압이 정당했다는 정부 쪽 견해와 함께  인권침해, 공권력의 과잉진압 주장이 공존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시위 집회가 지속될 전망이다.

▲ 1월31일 SBS <8뉴스>
TV 속에 등장하는 사회문제는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다. 우선 우리 사회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경제문제와 직결된 노동자, 농민문제를 중심으로 TV가 사회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자. 노동자, 농민은 국회의 입법화를 외치거나 자신들의 주장이 정부 정책에 반영되기를 주장하면서 TV 등에 미디어에 적극적으로 소개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한다. 그것은 주로 시위와 집회다. 요즘은 성명서 양산 시대라서 말만으로는 미디어가 주목하지 않는다.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미디어와 사회가 관심을 갖는다.

TV 등 미디어는 노동자, 농민 시위 집회를 보도할 때 보도 당시 관련된 문제의 진전 상태에 주로 초점을 맞출 뿐 그 이전 상황에 대한 소개나 배경 등의 언급은 그 분량이 매우 미미하다. 이런 식의 뉴스 보도는 노동자, 농민에 대해서만 그런 것은 아니고 TV보도의 일반적인 특성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 내보낼 뉴스로 가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획특집 등의 형식이 아니면 뉴스만으로는 노사갈등이나 농촌문제의 전모를 알기 어렵다. 이런 형식의 정보 전달로는 시청자들이 관련 사항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다.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 미디어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우리의 경우 케이블, 위성 TV에 관련 채널이 존재하지만 아직 그 영향력이 미미하다.

사회문제에 대한 TV 프로는 미디어의 상업성과 관련해 살필 수 있다. 미디어 종사자들은 시장에서 이익을 획득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뉴스, 오락 등을 제작한다. 예를 들어 TV 뉴스 책임자들은 뉴스를 단순한 정보전달의 범위를 넘어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해 시청률을 높힐 수 있도록 방송하려 한다. 이 같은 방송가의 일반적인 경향으로 미국에서 'infotainment'라는 합성어가 등장했다. 정보는 단순히 정보로서만이 아니라 오락적 요소가 가미되어야 시청자들이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2월1일자 MBC <뉴스데스크>
그러나 문제는 간단치 않다. 흥미위주로 만들어진 각종 TV프로들이 시청자에게  부적절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때 자상파 TV에서 개그맨이나 코미디언을 등장시켜 빈곤층 가정이나 소년소녀 가장들을 찾아 집을 지어주거나 방을 살기 좋게 꾸려주는 등 갖가지 혜택을 제공하는 프로가 유행한 적이 있다. 빈곤, 결손 가정의 현실은 당사자가 공개하기를 원치 않는 불행인데도 TV는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TV는 빈곤과 결손 가정이라는 비극적 요인에 개그맨이나 코미디언들의 희극적 요소를 결합시켜 시청자에게 접근한 것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요인을 섞어서 만든 것은 비극적인 것도 흥미위주로 포장하려는 강박감의 표출이었다고 할까? 복지문제는 궁극적으로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지만 방송사 등 공공기관이 일조를 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시청률을 의식해야 하는 방송사가 개인의 불행을 오락적 요소와 결합시킨 프로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직도 그런 부류의 프로가 적지 않게 방영되고 있다.

TV가 현실을 담아서 보도하는 내용은 전달자의 가치관이나 일반화된 신념, 가치관 등을 반영하거나 정보의 취사선택 등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하나의 사회문제를 어떤 가치관으로 판단하고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판이한 내용의 정보로 가공되기도 한다. 이는 민주사회에서 불가피하고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그것은 획일적인 것에 비해 효용성이 크기 때문이다.

건강, 웰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각종 질병을 다루는 TV프로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일부 프로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실제 의학지식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모든 질병에는 환자 개인의 신체적 특성이 고려되어야 하고 치료방법 등이 신중히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TV가 이런 요소들을 지극히 단순화시켜 방송해 시청자들이 많은 오해를 하게 되고 그 부작용이 단순치 않다는 것이다.

TV는 세계화와 시장 개방화 등 지구촌 차원의 문제를 다루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가 간 또는 국가 내에서의 빈부격차 심화, 고용상태의 불안정 등에 대한 논란이 발등에 불이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문제를 미디어가 관심을 갖고 접근해서 일반 대중이 정확한 정보를 얻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미 FTA 같은 경우다. 그 찬반 주장은 너무 극과 극이다. 찬반 주장 어느 한 쪽은 거짓말을 하는 것인데 미디어가 그것을 가려주어야 한다. 미디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청자는 큰 혼란에 빠진다. 어느 한 견해만을 비중 있게 보도하면서 사실보도를 했다는 식의 자위를 하는 언론이 아직도 존재한다. 서글픈 후진적 현상이다. 이런 식으로는 민주주의나 언론자유의 영역이 질적으로 개선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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