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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세상읽기]

▲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88만원 세대 저자)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민중’이라는 단어를 여전히 좋아하고, 또 종종 쓰는 편이다. 불어의 peuple이라는 단어는 헌법에 들어가 있을 정도로 특별한 이미지가 없이 그저 ‘우리들’ 혹은 ‘사람들’에 더 가까운 뉘앙스의 단어인데, 우리말의 ‘민중’이라는 단어는 좀 무섭고, 또 지나치게 엄격한 느낌을 준다. 조선 ‘민중’ 문화사에 들어가 있는 민중은 어딘가 해학이 넘치며 끈끈한 인간미의 느낌을 주는데, 21세기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민중이라는 단어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아마도 80년대를 뒤덮었던 리얼리즘 계학의 민중 미학이 이런 장중한 느낌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민중이라는 단어 대신에 ‘대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난 여전히 민중이라는 단어와 대중이라는 단어가 뭐가 그렇게 엄청나게 다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내가 만나는 PD들은 대중이라는 단어는 뭔가 좀 낮고 어쩐지 ‘낮다’라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

대중이라고 할 때에는 보통은 mass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같고, 대중음악이라고 할 때에는 popular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같다. 막상 대중이라고 하지만, 대중이 무엇인가 정확히 규정하면 이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방송 내용으로만 보면, 어떤 때에는 대중의 반대말이 클래식 혹은 귀족이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전문가이기도 한 것 같다.

정치적으로 얘기할 때에는, 대중이라는 단어는 때때로 ‘국민’이라는 단어로 치환되기도 하고, ‘서민’이라는 아주 특수한 용어로 대변되기도 한다. 어쨌든 존재적 실체는 대중, 서민 그리고 민중까지 다 같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 때는 민중은 노동자에 농민을 더한 것이라고 아주 강한 정의에 의해서 규정되기도 하였지만, 대체적으로 민중은 ‘배고픈 그들’ 정도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사회과학 내에서 민중은 자각하였거나 자각할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 같고, 대중은 그러한 자각이 불가능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기는 한데, 어차피 대중이나 민중이나, 다 같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하여간 한국 사회에서 민중은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의 당원일 것 같은 느낌을 주고, 민주노총이나 전농의 머리띠를 두르고 여의도나 광화문에서 ‘생존권’을 위하여 ‘가열차게’ 투쟁하고, 결국 ‘구국의 강철대오’의 일원일 것 같은 선입견을 준다.

▲ MBC <황금어장> '무릎팍 도사' ⓒMBC
반면에 대중은 ‘강호동쇼’나 ‘유재석쇼’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으며, 선거 때만 되면 자신의 경제적 처지나 지역경제에서의 존재적 현실은 모두 망각하고, ‘동네 형님’ 아니면 ‘우리 고장 사람’들에게 이끌려 지역감정에 이끌려 ‘묻지마 투표’를 하는 사람과 같은 이미지를 준다.

그러나 이미지는 결국 이미지일 뿐이 아닐까 싶다. 실체적으로 대중이 곧 민중이고, 민중이 곧 개인이 아닐까 한다. 이 사람들은 결코 다른 사람이 아니고, 그들과 호흡하고 대화하고, 성경식으로 ‘임재’하는 것이 바로 민중 문화이고, 민중 언어가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버라이어티 쇼는, 바람직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시대의 민중 문화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버라이어티 쇼에 임하는, 흔히 ‘예능 PD’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2009년 민중 문화의 최전선에 선 사람이라는 사실을 환기시켜주고 싶다. 9시 뉴스, 시사 프로, 그리고 각종 교양 프로, 그게 민중 문화가 아니라, 좋든 싫든, 한국의 가장 많은 대중이 보는 방송, 그게 바로 민중 방송이 아닐까 싶다. 무게감이, 보통이 아닐 듯 싶다.

한국, 이제 신빈곤 사회로 잰 걸음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일본에서 소설 〈게공선〉과 함께 프로문학이 복귀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프로 문학 혹은 참여 문학이 돌아올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빈곤한 시대, 그 시대가 열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중도 돌아올 것인가? 버라이어티 쇼와 리얼리티 쇼를 보는 그 사람들, 그들이 이미 민중이 아닌가? ‘강호동쇼’, 그것이 이미 민중 문화가 아닌가? 이걸 혀를 차면서, “나라 망한다”고 경시하면, 그게 바로 꼰대가 아닐까 한다. 좋은 싫든, 이들이 바로 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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