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대한민국 혹은 잊혀진 청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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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야기] 김진혁 EBS 어린이청소년팀 PD

<지식채널e> 사회분야(society) 카테고리 중 가장 처음으로 만든 편이 ‘잊혀진 대한민국-철거민’편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동대문 운동장에 갇혀(?)있던 청계천 철거 상인들을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고, 언젠가 꼭 한번 이들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결심하던 차, 시사 관련 내용으로는 첫 편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지금이야 <지식채널e>가 꽤 유명(?)해져서 아이템 하나하나가 주목을 받지만, 당시만 해도 그러한 프로그램이 있는지, 혹시 채널 돌리다가 보더라도 그것이 프로그램인지 아닌지 모르던 시절이라 정말 부담 없이 구성을 할 수가 있었다. 그래도 나름 조심하겠다고 서울시에 전화해서 그쪽의 입장을 물어 보기도 했었는데 다행히도 아주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어쨌거나 당시 동대문 운동장으로 쫓겨난 철거민들은 하루 벌이 1000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신음하고 있었다. 분명 이명박 서울 시장이 ‘세계적인 풍물시장’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며 힘없는 미소를 보이기도 했지만, 실상 상당수의 철거 상인들은 노숙자와 다름없는-막걸리 하나 나눠 마시며 거의 만취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이 서로 건네던 말이란 “죽지마, 자살하면 안 돼...”

▲ ‘용산 철거민 참사’ 추모제 ⓒ연합뉴스
이 믿겨지지 않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는 걸 보면서 과연 내가 이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인지, 아니면 이들이 사는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이 다른지 혼란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매번 동대문 운동장 앞을 지날 때마다 ‘어, 왜 요즘은 매표소 문이 만날 닫혀있지?’라는 생각을 하던 나로서는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난감함은 복원된 청계천 위를 오고가는 많은 이들의 행복한 표정 위에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어라? 이게, 도대체 뭐지?’

그리고 몇 년이 흐른 뒤 용산에서 또 다시 믿기지 않는 일이 발생을 한다. 화염에 휩싸여 타들어 가는 망루를 TV를 통해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그 때 조금 더 많은 이들이 청계천 철거민들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들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걷고 있는 그곳이 누군가 한평생을 일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집을 마련했던 삶의 터전이었음을 알고 있었다면, 좀 더 영향력 있는 매체에서 상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다면, ‘동대문 운동장,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라는 기사 보다,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실어 줬더라면, 만약 그랬다면 혹시 용산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 김진혁 EBS PD
어느덧 화면 속에서는 6명의 사망을 알리는 기자의 숨 가쁜 리포팅이 들려 왔다. 하지만 왠지 난 기자의 리포팅 대신 다른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환청인 듯, 아닌 듯 그렇게 아주 오래전인 것도 같고 바로 지금인 것 같기도 한 목소리가….

“우리 모두가 덩실 덩실 춤을 출 수 있는 것은, 협조를 아끼지 않았던 청계천 상인 때문이요, 희생을 감내했던 노점상 때문이요. 상인이나 노점상 이 분들에게는 저는 영원히 오랫동안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게 될 것입니다” - 새물맞이 행사 중, 이명박 당시 서울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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