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진검승부 펼쳐지는 ‘음악 신대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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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야기]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제51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U2는 4년 여 만의 신곡을 발표했다. 유서 깊은 음악 시상식의 오프닝을 장식한 ‘On Your Boots’는 전형적인 U2의 음악 스타일과는 조금 다른 구성이라 사람들을 꽤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대부분 호의적인 평가를 보냈다. 아닌 게 아니라 디스토션이 걸린 전기기타가 긴박한 템포로 흐르는 와중에 전자음이 등장하고 랩처럼 흐르는 보노의 보컬은 마치 블록버스터의 주제곡이나 삽입곡처럼 들린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보노가 왠지 혼자 분주한 액션영화의 주인공처럼 느껴져 좀 ‘거시기’했다. 그러니까 별로 재미없었다는 얘기다. 근데 사실 U2의 음악이 재미없어진 건 꽤 된 일이다. 그들의 앨범을 한창 끼고 살았던 십대 후반과 이십대 초반을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U2는 내 인생의 밴드였고, 〈Joshua Tree〉는 내 인생의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할 일도 없고 직장도 없는 나는 왜 U2의 음악이 더 이상 흥미롭지 않은지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먼저 U2는 너무 유명해졌다. 이게 뭐 혼자 좋아하던 밴드가 유명해지는 게 싫어지는 그런 류의 얘기는 아니다. U2는 아무 것도 안 해도 한해에 몇 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밴드고 그 정도로 성장한 밴드가 새 앨범을 낼 때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몇 개 안된다는 얘기다.

▲ U2 ⓒU2 홈페이지
그러니까 딜레이와 피드백으로 혁신적인 기타 사운드를 만들어낸 엣지의 방법론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것으로 여겨지지 않고, 냉전이 끝난 시대에 U2의 진보적인 정치성향은 911 테러 위문 공연에서 보여준 퍼포먼스(수퍼볼 경기 막간에 진행된 이 공연에서 보노는 자켓을 벗어 성조기 모양의 티셔츠를 보인 채 노래했다)로 무용지물이 됐다.

노엄 촘스키가 미국의 반성을 목청껏 외치던 그때 ‘좌파 밴드’ U2는 이라크 전쟁의 명분에 팔려갔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런 정황들이 3월에 발매될 예정인 U2의 새 앨범에 대해서 음악적으로, 내용적으로 기대할 게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너무 거대해졌고 앞으로도 쭉 슈퍼스타로 살아야할 운명인 것이다. 라디오헤드처럼 안드로메다로 날아가지 않는 한 그들은 여전할 것이다. 물론 그게 나쁜 건 아니다. 지금까지 잘 해 오던 걸 앞으로도 계속 잘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흥미 있게 듣는 건 지금 여기의 음악들이다. 영국과 미국의 팝과 록 음악은 이미 혁신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비대해졌다. 포화상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너바나 이후, 그리고 라디오헤드 이후 영국과 미국의 대중음악에서 혁신적이라고 할 만한 음악과 음악가는 등장하지 않았다. 잘하던 걸 잘하는 친구들이 늘었을 뿐이다.

그건 당사자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과 환경의 문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좀 다르다. 홍대 앞에 국한되긴 했지만 인디 씬은 지난 10년 동안 자생적으로 탄탄하게 성장했고, 열악한 와중에 음악 환경도 어쨌든 자리 잡고 있다. 주류 가요계는 그 동안 뻔질나게 외국 음악을 베끼던 수준에서 흥미로운 비트와 사운드를 만드는 수준으로 도약했다. 일본과 미국을 벤치마킹해온 아이돌 산업은 아시아 지역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 빅뱅 ⓒYG엔터테인먼트
의리가 우선시되던 비즈니스 환경도 구조조정이 되며 시스템을 만들어냈고, 노래운동진영이라는 틀에 머물던 진보적인 음악가들도 울타리 밖으로 (떨어져)나와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대중음악의 수용자들의 태도가 급변하고 있다. 국내의 상황이 이런데 어찌 흥미롭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중에 가장 재미있는 건 수용자들이다. 기존의 음악 수용자들이 장르와 국적에 갇혔다면, 요즘은 그걸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빅뱅의 앨범과 시규어 로스의 앨범을 동시에 구입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음반을 사지 않더라도 mp3로 소녀시대와 카니예 웨스트의 음악을 동시에 들을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게 그 변화다.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좋은 음악’에 대한 안목이 보편화되었다는 게 타당할 것이다.

▲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그래서 나로서는 U2의 새 앨범에 대해 구태의연한 평가를 하는 것보다 카라의 음악이 어떻게 일본식의 록 음악(혹은 TV애니메이션의 사운드트랙)을 벤치마킹하고 그걸 실천하는지에 대해 말하는 게 더 재미있다.

그 흔한 경영서에도 나오지만, 혁신이란 어떤 텐션이 유발하는 가치다. 한국의 음악시장은 바야흐로 너나할 것 없이 진검승부를 벌여야할 수준으로 성장 중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TV와 라디오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면 이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야말로 지금 동시대에 가장 흥미로운 음악지형도가 감춰진 신대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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