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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최경진 대구가톨릭대 교수

요즘 KBS의 위상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진정 공영방송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제 갈 길 못 찾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여당의 미디어 악법 추진과 최근 공영방송법 제정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도 KBS가 수신료 인상 문제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듯 하는 인상을 보이는 것은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영방송이 공영성과 공공성을 지켜내고 국민의 방송으로 굳건히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 노심초사해도 부족할진대 당장 눈앞의 젯밥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KBS의 안정적 재원구조 방안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모두가 고민해왔고 또 반드시 해결해야할 중요한 문제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일에는 순서와 절차가 있는 법이다. 수신료 인상 문제 이전에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들이 있다는 말이다.

국민들은 최근 불과 십여 개 월 사이에 지난 십여 년간 그나마 어렵게 재건한 공영방송의 위상이 처참하게 무너져버린 것을 목도했다. 다수의 논리를 앞세운 강압과 민주주의로 위장한 폭거 속에 대통령이 공영방송 사장을 전격 해임시켜버렸고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이사회가 곧바로 낙하산 사장을 옹립한 것이다. 이른바 ‘방송의 쿠데타’라는 오명은 이에 기인한다.

▲ KBS 사옥 ⓒKBS

그 후 파면과 해고와 같은 극단적 보복성 인사가 자행되기도 했는가하면 공영방송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비판적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은 속 보이는 편성정책으로 자취를 감추었거나 변질되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국가기간방송이라는 KBS가 황당하고 선정적인 주제의 드라마로 시청률 경쟁에 몰두한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으니 5공 시절의 프로그램 저질화 비난이 다시 쏟아질 만도 하다. 자칫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방문진 20주년 축사에서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던 MBC의 ‘정명(正名)’ 논란이 이제 KBS에도 적용되어야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국민적 아픔이 점철된 용산참사에 대한 보도 역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남겼다. 보도를 둘러싼 어설픈 공정성도 도마에 올랐지만 강OO 연쇄살인 사건 보도로 하루아침에 그 참사의 비극이 뉴스에서 전격 사라져버린 것은 그야말로 또 하나의 비극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용산참사를 잠재우기위해 강OO 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청와대의 음모성 홍보지침과 맞물려 자칫 KBS도 정치적 외압에 휘둘리는 것은 아니냐는 국민의 비판적 시선을 받고 있다.

며칠 전엔 KBS-TV 채널 중 하나를 국민교육용으로 전환하자는 한나라당 백성학 의원의 기막힌 발상에 힘입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무려 7억 원이라는 혈세 예산을 들여 정부정책 홍보성 버라이어티 쇼를 제작하겠다고 했다가 호된 질타를 받고 없었던 일로 했던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졌다. KBS를 관제방송으로 만들려는 이명박 정부의 저의가 다시 한 번 노골적으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쯤 되면 KBS가 왜 이렇게 망가지는 것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정부권력 앞에 복지부동하다 못해 능동적으로 ‘알아서 기는’ 영혼 없는 조직으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누가 이러한 위기를 막아내고 공영방송 KBS를 지켜야 할 것인가. 가장 중요한 주체는 바로 KBS 내부 구성원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변질된 정체성으로 이정표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노조의 책임이 크다. 노조는 격한 풍랑에 휩쓸리는 KBS호의 조타기를 하루 속히 함께 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힘겹게 민주방송 쟁취를 위해 분전해온 기협 및 PD협회와 일심단결해서 KBS가 그야말로 국민의 방송으로 다시 거듭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해야 한다.

▲ 최경진 교수
KBS는 국가기간방송이자 국민의 방송이다. 국민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려면 국민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간파해야한다. 외압은 물론 내적 압력도 단호히 거부할 수 있는 역량을 모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머릿속의 가위’에 짓눌려 언론의 정도를 벗어나는 일부 부질없는 공명심도 경계해야한다. 그러한 노력과 진정성이 보일 때 세간에 꿈틀거리는 ‘제2의 수신료거부운동’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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