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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극한직업> 이란 프로그램이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에 EBS를 통해 방송되고 있다. 극도로 힘들고 위험한 작업 환경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치열한 직업정신을 담아낸 현장다큐멘터리로 극한의 직업에 종사하며 역경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실한 현장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이를 위해 제작진들은 깊은 바다 속에서 일하는 산업 잠수사들과 함께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때론 수만 볼트가 흐르는 높은 송전탑에 오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어느 날엔 잔잔한 바다에 나가도 배 멀미가 심할 텐데 거센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에 나가 작은 어선에서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독립PD들 역시 극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임이 틀림없다. 

이런 극한직업을 가진 독립PD들에 대한 노동조건 실태 조사 결과가 나왔다. 최근 성공회대 노동사연구소가 작성한 ‘비정규 연출직의 노동조건과 생활 세계’란 제목의 중간 보고서다.  이 보고서에서 이종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독립PD들, 더 넓게 해석하자면 방송제작 비정규 연출자들이 극한 근로조건 속에서 일하고 있음을 객관적 자료를 통해 확인해주었다. 아직 최종으로 완성된 보고서가 아니기에 구체적인 항목을 인용하여 그 근거들을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지만 몇 가지 항목만 보더라도 이점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 한국독립PD협회는 지난 2월19일 제 3차 정기 총회를 개최했다.
비정규직 연출인력들이 업무상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놀랍게도 59.9%가 개인 비용으로  처리하고 있었고 산재적용을 받는 경우는 1%로 조사 됐다. 전체조사 대상 중 30%는 휴일이 한 달에 1~2일 또는 몇 달에 1~2일 정도만 사용 할 뿐 이었다. 그렇다면 시간외 수당과 휴일근무수당을 받는 경우는 어떨까? 겨우 7.3%만 수당을 받고 있었다. 고용안정측면에서 21.3%가 계약기간 내에 해고 또는 계약 해지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듯 전체 70문항 중 극히 일부 사례지만 이중에는 노동법상 최소한의 기본권도 보장 받지 못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열악한 근로 조건하에서도 자신들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높았다. 하지만 이중 절반이 전직을 희망하고 있다는 결과는 비정규직 연출자들의 현실을 잘 대변하고 있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 처한 비정규직 연출자들의 모임인 한국독립PD협회는 지난 2월19일 제 3차 정기 총회를 개최했다. 2008년 한국독립PD상 시상식과 함께 진행된 이번 총회는 그 어느 때 보다 참가자가 많아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다. 특히 이번 총회에서는 협회가 비정규직 연출자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겠다며 뜻을 모아 결의문을 채택했다. 주요내용을 보면 방송사의 일방적인 제작비 삭감, 불합리한 외주제작 관행개선, 일방적인 저작권 독점 관행개선 등을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경우 노조설립 절차 논의에 대한 의견을 조만간 인터넷 투표를 통해 실시하기로 했다. 이제 창립 3년째를 맞이한 협회가 감당하기에 너무 무리한 사안이란 의견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1991년 방송 산업에서 외주제작정책이 실시 된 이후 방송제작 비정규직 종사자에 대한 실태 조사가 몇 차례 있었지만 이를 바탕으로 이들이 처한 극한 근로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후속 조치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볼 때 아무리 훌륭하고 정확한 연구 보고서가 있다 한들 결국 이 문제는 당사자들 스스로가 원하고 요구할 때만이 해결되는 문제인 것이다. 앞으로 결의문에 근거해 후속 조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협회 회원을 포함 전체 비정규직 연출자들과 심도 깊은 논의는 필수적이다. 뿐만 아니라 언론노조를 포함한 언론방송단체와 협회, 방송사업자, 나아가 외주제작사와도 소통이 필요하다.

▲ 복진오 독립PD

이 과정에서 어쩌면 지금까지 겪지 못한 정말 극한상황까지 갈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코 주저하거나 멈춰서는 안 된다. 이는 비정규직 연출자에 대한 단순한 권리 찾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방송프로그램 40%가 외주로 제작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중 상당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비정규직 연출자들, 이들은 이미 방송산업에서 경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한 중심에 서 있다. 이들이 자신들의 숭고한 직업에 대해 가치를 인정 받고자하는 것은 권리가 아닌  책임과 의무이기 때문이다. 
2009년 한국독립PD협회는 ‘경계에서 중심으로’의 이동을 선언하며 결코 쉽지 않은 길을 나서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이들이 이미 중심에 서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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