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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답답하다. 가슴팍이 막힌다. 나는 왜 이렇게 운이 따라주지 않을까 자책도 해본다.
진짜 디지게 고생하며 촬영을 했는데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는데 왜 편집이 이렇게 힘들까. 왜 스토리가 이렇게 척척 달라붙지 않을까….

이런 고민들 방송프로그램 만들면서 특히 편집하면서 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나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본다. ‘내가 욕심이 너무 많구나. 내 스스로 만족할 만한 스토리와 영상을 담아내기에는 '2년이라는 시간도 너무 짧지 않은가.’

지금 편집을 하고 있는 <인간의 땅> 방글라데시 치타공에서 대형선박을 해체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정말 어렵게 오랜 시간을 들여 허가를 얻어 그곳에 들어갔는데…. “이런, 큰 배가 없었다” 아무도 접근하지 못한 곳에 들어갔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었을지 모르나 큰 배 까지 따라주지는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어쩌겠는가 하늘을 조금 원망하며 촬영을 하면서 기다렸다. 두 달 만에 드디어 다른 배가 한척 들어왔다, 헌데 정말 실망이다. 배가 너무 작았다. 결국 석달을 그곳에서 소비하고 여름을 기대하면서 철수했다.

여름이 왔지만 큰 배는 오지 않았다. 가을이 오고 10월이 지나면서 이제 기대감은 절망감으로 바뀌었다. 모든 계획들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결국 일정에 밀려 11월에 2차 촬영을 갔다. 배가 한척도 없으니까 ‘배가 한 척도 없는 상황을 찍자’ 이런 생각으로 말이다. 게다가 원래 1주일 예정으로 갔던 출장은 이래저래 사건이 벌어지고 방콕공항이 시위대에 점거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일정은 20일을 넘기고 말았다. 환율 1400원에 홍콩을 경유하는 별도의 항공권을 구매까지 했으니 돈이 얼마다 더 깨졌는지는 짐작하시리라. 결국 낙심하여 귀국했다. 스토리가 재미있으니 희망을 가져보자 라고 편집을 했지만 결국 시사회 평가는 좋지 않았다. 일단 스케일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 난 꿈에서도 큰 배를 기다렸는데 낙심했다. 나는 왜 운이 따라주지 않는 걸까.

근데 정말 웃기는 것은 시사회가 끝날 시점에 그곳에 엄청나게 큰 배가 들어왔다는 거다. 그것도 두 척이나 말이다. 정말 억울해. 도무지 그냥 포기할 수가 없어서 현지 촬영팀을 보냈다. 그리고 약 보름간 촬영을 하게 해서 어제 테이프를 받았다. 그런데 테이프를 보면서 나는 혀를 깨물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큰 배들 수십 척이 해체를 기다리며 바닷가에 줄지어 서 있었다. 치타공의 폐선사업 역사상 이렇게 많은 배가 들어오기는 처음이라 했다. 이런 상황이면 발가락으로 카메라를 돌려도 그림이 나오는 법이다. 압도적인 스케일의 그림이 나와 주면 스토리는 탄탄하게 찍은 게 있으니 나름 훌륭한 다큐멘터리가 나올 수 있었을 터….

현지 카메라맨이 보낸 테이프에는 쓸 수 있는 게 몇 카트 없었다.
결론은 이런 거다. 내가 아무리 1년을 죽어라 하며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한들 2년을 들락거렸다 한들 그 시간도 너무 짧다는 것. 그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까 이제 진짜 알짜배기 상황이 눈앞에 벌어지는 있다는 것.

▲ 박봉남 독립PD

시간의 벽은 이런 거 같다. 적어도 3년의 시간이 지나야 뭔가 할 수 있겠구나…. 아 그나 저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편집하는 거 제끼고 다시 그곳으로 가야 하나? 아니면 만족하지 못한 상태로 이대로 편집을 마치고 방송에 걸어야 하는 걸까? 평생 후회할 텐데 어떡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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