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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이성규 독립PD

괜찮은 다큐멘터리 속엔 만드는 이의 엄청난 인내력과 투지가 담겨져 있다. 관객 동원 300만에 육박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는 이충렬 PD의 인간승리다. 3년에 걸친 촬영. 1년이 넘게 진행된 편집. 집념과 용기가 없인 불가능한 영화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경제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비효율적인 영상산업이다.

나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면서 동시에 연출자다. 방송용 다큐멘터리 작업이 주류를 이루고, 가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연출하기도 한다. 이승준 PD와 함께 제작 연출한 〈보이지 않는 전쟁〉(2000년), 아내와 내가 제작비를 충당하고 이승준 PD가 연출한 〈신의 아이들〉  (2008년)이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다.

보이지 않는 전쟁〉은 수익을 전혀 내지 못한 영화다. 기획 단계에서 ‘경제적 고려와 가치’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신의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승준 PD가 ‘만들고 싶다’고 했기에, 아내와 의논을 하여 제작결정을 내린 영화다. ‘얼마를 벌 수 있는가?’는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못했다. 기획 초기엔 방송용 다큐멘터리였다. 몇 곳에 문을 두드려본 결과 방송사로 부터 외면을 당했다. “승준씨! 방송을 안 해도 되니까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 제작비는 우리가 알아서 할게.” 아둔하고 미련하게 시작된 영화 제작이었다.

▲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
<워낭소리>도 방송사로 부터 외면을 당했다. 시간을 길게 두고 진행된 제작이다 보니, 이충렬PD의 재정난은 심각해졌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는데, 도움이 좀 필요해요.” 2005년이다. 당시 내겐 여유자금이 전혀 없었다. 생활비조차 없었다. 이충렬PD의 요청을 애써 외면해야만 했다. 이게 제도권 밖에 있는 한국 다큐멘터리스트의 현실이다.

2008년에 두 명의 독립PD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각각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 전주국제영화제와 한중일 PD포럼에서 이승준PD의 <신의 아이들>이 수상을 했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충렬PD의 <워낭소리>가 상을 받았다. 2009년 5월 초, 캐나다의 핫독 다큐멘터리 필름 페스티벌에서 <워낭소리>는 경쟁작으로 <신의 아이들>은 초청작으로 상영된다. <신의 아이들>은 미국의 다큐멘터리영화 최대 배급사인 ‘벵가드’와 수출계약을 맺었고, 방영권을 놓고 미국의 PBS 그리고 프랑스의 아르떼TV와 협상중이다.

독립PD들의 잇단 쾌거는 힘겨운 독립PD 진영의 새로운 활력소로서, 영상시장의 또 다른 출구를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국내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는 경제성이 없는 영상 산업이다. 이런 경향은 영화뿐만 아니라 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투자 대비 경제적 효율성이 적다.

▲ 이성규 독립PD
아직 우리의 환경은 다큐멘터리를 산업논리에 적용할 수 없다. 다큐멘터리 영상 시장은 여전히 방송사의 독점적인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한국 영상 시장에서 다큐멘터리는 만드는 이의 끈기와 인내 그리고 희생을 요구할 뿐이다. 관객은 여전히 감독에게 비효율적인 집념과 인내력을 지닌 인간승리를 기대한다. 슬프지만,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한국 다큐멘터리스트의 막강한 힘이 되기도 한다.

자! <워낭소리>와 같은 성공을 바라는가? 그러면 우선 마음을 비워라. 단지 100개의 떡밥을 던져 그 중 월척 한 마리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투자를 해라. 물론 가끔 준척도 몇 마리 잡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월척이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는 송사리조차 안 잡힐 것이다.다. 반드시 얻겠다는 심정으로 달려든다면 잃을 것이다. 반드시 잃어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워낭소리>는 숱한 잃음 속의 결과란 것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이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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