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공명의 울림이 전해지는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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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스타 시즌3] ① CBS ‘시사자키’ 진행자 변상욱 CBS 대기자

입사 27년차 기자인 그에게는 승용차가 없다. 운전면허도 없다.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현장으로 뛰어 다니던 젊은 기자 시절에는 그의 한쪽 주머니에는 공중전화 카드가, 또 다른 주머니에는 동전이 가득 차 있었다.

▲ 변상욱 CBS 대기자 ⓒPD저널
동료 기자들이 골프채를 들고 교외로 나가는 주말. 그는 골프채 대신 죽도와 붓을 든다. “골프채는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라고 말한 그는 경력 15년차인 검도공인 4단의 유단자다. 신림동과 목동에서 수련생들에게 검술을 가르치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로부터 논어와 맹자를 배우며 심신을 단련한다.

변상욱 CBS 대기자. 그에게는 ‘언론의 가면을 벗긴 기자’(강준만, 한국의 언론인1, 1999)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의 온화한 얼굴과는 대비되는 이 수식어는 한국사회의 언론이 걸어온 길을 역설적으로 대변해 준다. 그가 걸어온 길이 그랬다.

1987년 박종철 치사사건 ‘항명보도’ 주도

1987년, 변 기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된 보도를 위해 주조정실 안에서 의자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밖에선 동료들이 몸으로 스크럼을 짠 가운데 1시간 15분간 ‘항명 방송’을 했고, 이한열 치사 사건 때는 조곡 틀기 등으로 방송투쟁을 벌였다.

1997년 1월 8일, 대부분의 언론이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에 대해 침묵하거나 기회주의적 태도로 일관했을 때.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은 ‘노동법 안기부법 개악 철회와 민주 수호를 위한 범대위’ 천영세 공동대표의 인터뷰를 1부 내내 여과 없이 내보냈다. 4부에선 종로에서 벌어진 ‘넥타이 부대의 대합창’이라는 집회를 생방송으로 30분간 보도했다. 편성부장이었던 그가 뒤에서 지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변 기자가 낸 〈언론 가면 벗기기〉(1996)에는 언론 스스로가 믿는 무한한 자유와 객관성에 대한 허구를 꾸짖은 글이 적혀있다. 그는 현직 권력에 약하고 전직 권력에 강한 하이에나 같은 언론이라고 비판했고, 최고 권력자를 위해 ‘용비어천가’를 지어 부르는 언론은 ‘혼’과 ‘얼’을 상실했다며 매섭게 비난했다.

▲ CBS <변상욱의 시사자키> ⓒCBS
하지만 변 기자에게 ‘특종’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그는 “타언론사에 비해 가난한 회사다보니 기자 개인의 인맥을 통해 취재원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87년부터 풀리기 시작한 CBS의 보도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해, 그는 어렵사리 뚫어놓은 출입처를 수습딱지를 막 벗은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물려줬다. 그가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출입처를 바꾼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CBS 방송민주화의 산증인…언론관계법에도 쓴 소리

또 CBS 노조위원장, 언노련 교육국장·법무국장 등을 역임하면서 언론인 생활의 반 정도를 언론민주화 운동에 헌신하다보니 그의 경력에 비해 현장 기자로서의 경력이 적은 이유가 되기도 했다.

변 기자는 라디오의 매력을 바로 ‘교감’이라고 말했다. 특히 TV와 나누는 교감과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음 깊숙한 곳을 울리는 공명이 TV드라마나 다큐멘터리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쉽게 온다”고 말한다. 이는 청취자와의 ‘소통’을 말한다.

1995~96년, 당시 음악 프로그램에서 시사이슈 해설을 담당했다. 음악과 시사의 접목이라는 생소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좋아하던 마니아 청취자들이 상당했다. PC통신 마지막 세대인 하이텔, 나우누리 등지에서 모인 이들은 자발적인 모임을 만들어,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모임을 계속하고 있다. 변 기자는 이를 ‘공명’의 힘이라고 규정했다.

▲ 변상욱 CBS 대기자 ⓒPD저널
변 기자의 라디오 사랑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 양주동 박사가 진행하던 동양방송(TBC) 〈유쾌한 응접실〉이라는 프로그램을 어머니와 함께 누워서 들을 때 ‘어떻게 저렇게 모르는 게 없을까’라고 감탄했다. 그의 ‘뻣뻣한’ 아버지마저도 무릎을 치게 만드는 지식인들의 탁견에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보냈다고 한다. 당시의 그런 자극들이 지금의 그를 계속해서 공부하는 언론인으로 만든 원동력이 됐다.

그러면서 변 기자는 최근 언론관계법 개정 논의와 관련해 현 정부에 쓴 소리를 던졌다. 그는 “방송계의 지형을 바꾸는 데 있어 현 정부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자본주의의 심화를 구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론의 독과점을 해소하면서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담보해 나가는 것은 민주주의의 발전인 것이고, 방송 광고 시장을 규제 없이 풀고 재벌과 신문재벌에게 시장진입을 허용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심화를 초래한다. 그러나 현 정권은 자본주의의 심화를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얼버무리고 있다.”

결국 선정적이고 상업적이고 심지어는 정파적인 방송이 등장하고 광고시장은 자본이 지배하며 자본주의의 폐해만 깊어질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방송은 시민사회로부터 멀어져 지탄의 대상이 되어 갈 것”이라며 “민주주의는 권력이 시민사회로 나누어지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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