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과 유력일간지 대표, 그리고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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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장씨 유족, 신문사대표 등 고소 이후 신문보도를 보며

이른바 ‘장자연 문건’에 있는 언론계 고위인사의 윤곽이 드러나는 분위기다. 19일 KBS 보도에 따르면 장 씨의 유족은 신문사 유력인사와 IT업체 대표 등 4명을 성매매특별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이들은 모두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포함된 인물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날 MBC <뉴스데스크>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언론계 고위인사를 “유력 일간지의 대표”라고 보도했다. 지난 15일 KBS가 처음 언론계 유력인사가 문건에 포함돼있다고 보도한 뒤 유력 일간지 대표(MBC 19일), 중앙일간지 대표(국민일보 20일) 등으로 범위가 좁혀진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유가족의 고소로 어떤 식으로든 이 인사를 포함한 고소대상자들에 대한 경찰 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 3월 19일 KBS <뉴스9>
뉴스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과연 유력 일간지 대표가 연루된 이 사건을 다음날(20일) 유력 일간지들은 어떻게 보도할까’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앞서 <장자연 리스트에 언론사 임원 있다면?>이라는 기사에서 “언론사 고위인사가 실제 연루돼있다면 해당 언론을 포함해 이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들의 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 바 있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만약 대표가 이번 사건에 연루된 신문사라면 장자연 유가족의 고소 사실을 어떻게 보도할까? 물론 간단한 방법은 고소 사실을 아예 다루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너무 ‘눈에 띌’ 뿐더러 세련되지 못하다. 명색이 ‘유력 일간지’ 아닌가. 사안의 중요성으로 볼 때 해당보도를 생략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고, 대한민국의 유력 일간지라면 손에 꼽히는데 이 방법은 도리어 오해를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장 씨 유가족이 신문사 대표 등을 고소한 것은 ‘팩트(사실)’이니 어쩔 수 없이 간단히 언급하고, ‘장자연 파문’과 관련된 다른 이슈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장자연 문건’을 둘러싼 의혹들이 그렇다. 문건의 종류와 유출경로는 여전히 의문투성이지만 경찰 조사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이 부분을 집중 공략하는 것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이 정도 가설을 세우고 20일자 신문을 펼쳤다. 일반적으로 유력 일간지, 중앙 일간지로 분류되는 전국단위종합지를 대상으로 했다. 예상대로 대부분의 신문은 장 씨의 유족이 신문사 대표를 포함한 4명을 고소한 사실을 주요기사로 보도했다. <경향신문>과 <서울신문>은 1면, <국민일보> <세계일보> <한겨레> <한국일보>는 사회면 기사의 제목에 이 내용을 적시했다. <중앙일보>는 해당 기사의 본문 안에서 해당 사실을 언급했다.

▲ 국민일보 3월 20일자 6면.
반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장 씨 유가족의 고소 사실을 전하면서 유력 일간지 대표 등 4명이 성매매특별법 위반 혐의로 대상에 포함돼 있다는 내용을 빠뜨렸다. 조선과 동아는 왜 장 씨 유족의 고소대상에 유력 일간지 대표 등이 포함돼있다는 ‘팩트’를 전하지 않았을까. 두 신문은 물론 영향력·열독률 등을 감안할 때 상위권을 차지하는 ‘유력 일간지’들이다. 그렇다고 이 신문들이 관련 보도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일치 기사를 보자.

동아는 사회면(A15) <경찰 ‘장자연 리스트’ 담긴 문건 추적>에서 “경찰은 장 씨가 남긴 문건은 총 7장으로 언론사에서 4장을 제출받아 확보했고, 나머지 3장에 이른바 리스트가 있는 것으로 보고 추가 문건 확보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동아는 기사에서 장자연 씨 유족의 고소 내용을 “유족이 사자(死者) 명예훼손과 성매매특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한 7명”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했다.

조선은 ‘사건과 사고’면(A12)에 세 꼭지를 할애해 장 씨 사건을 비중 있게 다뤘다. 다만 조선이 주목한 것은 ‘장자연 문건’을 둘러싼 의혹이다. 조선은 <“KBS 문건, 유족들이 태운 것과 달라”>에서 KBS가 입수한 문건에 여러 의혹을 제기하며 원본 이외에 ‘제2의 문건’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이어 <괴소문 키우는 답답한 수사>에서는 인터넷에 떠도는 ‘장자연 리스트’에 따른 루머가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장자연) 문건의 진위, 실체적 진실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지지부진하면서, 괴담은 괴담대로 커지고 루머 유포자에 대한 수사는 아예 착수조자 못한 상태”라고 비판했다.

조선은 이 기사에서 루머에 의한 엉뚱한 피해자 없도록 신속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히며 “루머에 이름이 올라있는 피해자들은 장 씨 문건에 언급된 술자리가 있었는지, 동석자가 누구인지를 수사하면 얼마든지 진실을 가릴 수 있는 게 아니냐며 경찰 수사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전했다.

▲ 조선일보 3월 20일자 12면.
공감한다. ‘장자연 파문’의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문건에 언급된 술자리가 있었는지, 동석자가 누구인지를 수사하면 얼마든지 진실을 가릴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장 씨 유족은 문건에도 나와 있는 일간지 대표 등 4명을 성매매특별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이들에 대한 조사는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조선은 이보다 루머 유포자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은 신문사 대표 등이 고소대상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언급조차 안했다. 대신 “성 상납과 술자리 접대 강요 등과 관련해 장 씨 소속사 대표 김모(40) 씨를 포함해 4명을 함께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고만 명시했다. 4명 가운데 익히 알려진 소속사 대표 김모 씨보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이 더 중요한데 말이다.

물론 신중한 보도는 중요하다. 문건의 진위여부도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함부로 유력인사 운운하는 것은 섣부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장 씨 유족은 성매매특별법으로 유력 일간지 대표 등 4명을 고소했고, 이들은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이름이 거론된 인물들이다.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경찰 조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KBS는 19일 <뉴스9>에서 “고소대상에 포함된 유력인사의 해당 신문사가 (장자연) 문건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지만 보도하지 않은 정황이 포착됐다”고 단독 보도했다. 여론은 이제 더욱 ‘유력 일간지’의 장자연 관련 보도를 주목할 것이다. 대표가 이번 사건에 연루된 ‘유력 일간지’는 앞으로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관련 보도를 놓고 매일 고민을 할 것이다. 명성에 걸 맞는 세련되고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너무 감추거나, 너무 티 나는 보도는 자충수가 될 수 있으니 이점에 유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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