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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호 특별기고] 이성규 독립PD

▲ 이성규 독립PD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 가운데 하나가 바로 패거리 문화다. 학연, 지연, 그리고 조직별, 직능, 직종별로 말이다. 그런데 패거리조차 만들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방송가에선 독립PD가 비정규직 언론 노동자다. 2년 전 방송가의 독립PD들이 의기투합하듯 독자적인 협회를 만들었다. 그런데 여전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이다.

필자는 독립PD들이 이랬으면 좋겠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채 소주 한 잔으로 불만을 늘어놓기 보단, 힘이 있든 없든 그게 설령 계란으로 바위치기든 패거리를 지어 목소리라도 크게 내보자고 말이다. 최소한 독립PD협회 안에서만이라도 이러저런 소리 질러보고, 때로는 머리 터지게 싸워보자. 어디에서 독립PD 어쩌고 시비걸면, 확 몰려가서 “뭐야!” 하는 짓거리도 해보고, 한마디로 꼬장을 좀 부려보자. 우린 너무 얌전하다. 늘 숨죽이며 사는데 익숙하다.

여기서 두들겨 맞고 저기서 쓴 소리 듣고 엉뚱한 곳에서 돌멩이로 맞곤 한다. 말 한번 잘못했다가 여의도 근처에 얼씬도 못한다. 장면 하나 잘못 넣었다가 퇴출당한다. 방송가의 동네북인 게 독립PD다. 그렇다고 누구하나 나서서 든든한 언덕이 되어주지 않는다.

2007년 2월의 어느 날, 젊은 독립PD가 자신의 자취방에서 스스로 목을 맸다. 유언장 하나 없는 죽음이었기에 말은 무성했다. 심증은 있었다. 그가 몸담은 프로그램에서 오는 압박감이 죽음으로 내몰았을 거라고 말이다. 선정성과 연출 조작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프로그램이었다. 몇 사람이 퇴출을 당했다. 프로그램의 지휘관이었던 CP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죽고 다친 것은 오직 소총수들뿐이었다.   

“든든합니다. 정글 같던 중학교 시절, 진정한 싸움꾼 고수를 곁에 둔 느낌. 딱 그 느낌입니다.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서른 살이 갓 넘은 젊디젊은 PD가 자취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독립PD협회 홈페이지에 남긴 가입인사다. ‘정글 같은 중학교 시절’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난 싸움꾼 고수의 든든함. 그럴지도 모른다. 그는 득달같은 CP의 요구에 맞춰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느라 정글 속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싸움은 외로웠을 것이다. 힘겨웠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든든한 싸움꾼이 되기도 전에, 30대 초반의 젊은 PD는 스스로 유명을 달리했다. 일면식 조차 없었던 그의 장례식에서 펑펑 울며 이를 갈았다. 그것은 존재가 의식을 규명하는 적개심이었다.

방송가란 동네는 겉으로 따듯한 척 하지만, 자신들과 관련된 이야기만큼은 철저하게 함구하는 냉혹함을 보인다. 필자는 독립PD로서 우리 사회의 구습인 패거리를 지으려 한다. 이것은 계급의식으로 똘똘 뭉친 강철같은 대오가 아니다. 패거리를 지려면, 약발 혹은 떡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우리 패거리의 최대 약점이다. 그냥 분노만 있다.

우리들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던 PD저널이 발간 600회를 맞았다. 방송사 정규직 PD들 틈새에서 훔치듯 읽었던 PD저널이었다. 그런데 이젠 독립PD의 글이 오르고 있다. 모래알 같은 독립PD들의 패거리 지음에 그 떡밥의 역할을 PD저널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냥 막연한 언감생심의 희망일까? 독립PD들이 언덕으로 기댈 수 있는 지면으로 말이다. PD저널의 600회 발간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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