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협상 장본인이 고소한 것 자체가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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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춘근 MBC ‘PD수첩-광우병 편’ PD

부인과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마치 영화에서처럼 갑자기 차들이 앞뒤로 가로 막았고, 그 즉시 검찰에 끌려갔다. 검찰이 MBC <PD수첩> ‘광우병’ 편 제작진에게 출석을 요구한 바로 그날이었다.

지난 25일 밤, 이춘근 PD는 ‘광우병’ 편 제작진 가운데 처음으로 검찰에 체포됐다. ‘뭐가 그렇게 급했을까? PD들을 꼭 감옥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건가?’ 체포되는 순간, 이 PD의 머릿속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쳤다.

“지난해만 해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나 보수 언론을 통해 <PD수첩>을 공격했다. 그런데 이제 그런 형식상의 염치나 체면치레도 포기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막장’이란 표현을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국민과 언론을 상대로 끝까지 전쟁을 하자는 것 아닌가.”

▲ 이춘근 MBC PD ⓒPD저널

이 PD는 48시간의 검찰 조사가 끝난 뒤 석방됐다. 검찰 조사에서 그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검찰 수사 자체를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PD는 “<PD수첩> ‘광우병’ 편은 잘못된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한 프로그램”이라며 “정부의 협상이 잘못됐다고 비판한 프로그램이 어떻게 ‘개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느냐”고 항변했다.

이 PD는 “심지어 정운천 전 장관의 이름은 프로그램을 통틀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며 “졸속 협상의 장본인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는 것 자체가 한 편의 블랙 코미디”라고 꼬집었다.

이어 “검찰 수사는 미운 언론 흠집 내기, 비판 언론 손봐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해 6월 농림수산식품부의 수사의뢰로 시작된 <PD수첩> 수사는 지난 3일, 정운천 전 농식품부 장관 등이 명예훼손 혐의로 정식 고소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때문에 이 PD는 “(<PD수첩> 수사는) 결국 정권의 ‘언론장악’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시나리오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3월 3일은 정치권에서 언론관계법에 대해 100일간 사회적 논의기구를 거쳐 통과시키자고 결정한 다음 날이다. 하필 그 시점에 다시 <PD수첩>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은 국민들에게 MBC가 부적절한 일을 저질렀다는 이미지를 계속 심어주려는 것이다. 결국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 손 보고, 여론을 모아 6월에 언론관계법을 통과시키려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일부에서는 당당하면 떳떳하게 나와서 조사를 받아라, <PD수첩>은 성역이냐 등의 비판도 제기한다. 이에 대해 이 PD는 “(검찰 요구는) 언론 전체에 나쁜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PD수첩>은 개인이 아니라 문제가 있었던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언론의 비판·감시 기능에 충실했다. 그런데 검찰이 수사하고, 취재 원본을 내놓으라고 하면 어떤 뉴스, 시사프로그램이 정부 정책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겠나. 강압적 상황에 대해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없다. 검찰에 자진 출두하거나 원본을 제출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다.”

<PD수첩> 방송 중 일부 오류가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제작진으로서 아픈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PD는 “<PD수첩> 제작진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완벽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PD는 그러나 “일부분의 문제로 전체가 왜곡됐다며 잘못된 방송으로 몰아가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설사 <PD수첩>이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건 시청자나 국민이 판단하는 거지 검찰이 할 일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임명한다. 대통령이 편 정책을 비판했는데 검찰이 수사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검찰에서는 <PD수첩>이 일부러 실수한 척 하면서 의도성을 갖고 왜곡한 것 아니냐고 하는데 검찰한테 오히려 물어보고 싶다. 이거 의도가 있는 수사 아니냐.”

▲ 검찰에 체포됐다 3월 27일 오후 10시께 석방된 이춘근 MBC PD ⓒPD저널
평생 처음 검찰에 체포됐다 풀려난 이 PD. “살다 보니 참 별일이 다 있다”고 말하는 그는 “개인으로서 감당하기 힘들지만 아직 도망가고 싶은 생각은 안 든다”며 “오히려 마음속에 분노가 인다”고 말했다.

“잘못을 행한 자들이 국민의 건강·알권리를 챙긴 <PD수첩>을 이렇게 대하는 것이 너무 화가 난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언론자유가 이렇게 침해당할 수 있나. 이런 식으로 언론을 탄압한다면 누구든 같은 문제를 겪을 수 있다. 힘들지만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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