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계에서]

나는 색약이다. 하지만 색약은 사는 데 거의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직업상 카메라 뷰파인더를 들여다 봐야하기 때문에 간혹 불편함을 겪을 때가 있다. 중국 연변에 취재를 갔을 때였다. 때는 여름을 조금 지나 고추가 무럭무럭 잘 자라서 수확을 앞두고 있는 고추밭을 촬영 중이었다. 붉게 익은 고추를 찍으려고 하는데 도대체 고추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흑백 뷰파인더로 보면서 고춧잎과 고추의 모양새 차이로 고추를 찾아 찍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도 덜 익은 대추는 잘 찾는데 잘 익은 붉은 대추가 나뭇잎사이에 섞여있을 때는 대추를 잘 찾지 못 한다. 아마 내가 채집생활을 하는 원시시대에 태어났다면 사는 데 상당히 지장이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언하건데 앞에서 말한 두 가지 경험 이외에 지금까지 살면서 색약으로 크게 불편을 겪은 적은 거의 없다.

이 얘기를 꺼낸 것은 '개인이 극복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불편함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에 관한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무조건 문과였다. 지금도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나 같은 색약이 지원 가능한 이과계열의 대학 전공과목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고3때 연극영화과에 지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색약을 받아주는 연극영화과는 없었다. 외국의 경우에는 어떤가 알아 봤던 기억이 난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그런 규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만약 그렇다고 하면 그 학교는 평등법에 어긋난다고 바로 고소를 당할 거라고 했다.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보이는 데 당신은 그렇게 보이니 영화나 미술을 전공 할 수 없습니다’라고 단정 지어놓은 논리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만약 내 색각에 정말 문제가 있다면 나는 흑백영화를 찍으면 되는 거 아닌가? 또 그림을 그리는데 자기가 보는 색으로 세상을 표현하면 그것이 틀린 것인가? 내가 보는 세상을 내 방식대로 표현하는 것이 예술의 본질 아닌가 말이다. 고추밭에서 빨간 고추를 잘 못 찾는다고, 또 대추나무에서 잘 익은 대추를 잘 못 찾는 다고 배움의 기회마저 박탈당해야 하는 것인지 교육관계자에게 묻고 싶다.

평균과 다르다고 지원의 자격마저 박탈하는 이 사회에서 나 같이 아주 작은 장애를 가진 사람도 이런 불평등을 겪는데, 나 보다 더 큰 장애를 가진 이들이 얼마나 많은 아픔과 불평등을 겪고 있을까? 생각하면 한 숨이 나온다. 그런데 요즘에는 나 같은 색각장애를 가진 것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 있다. 정상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데도 세상의 모든 색을 없애버리고 오로지 흑과 백으로만 보려하는 사람들이다. 나 같은 사람은 한 두 가지 색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도 억울한데 그 사람들은 스스로 모든 색을 지우려하니 말이다. 참 불쌍하지 않은가?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를 봤다. 한 사람을 빼곤 모든 사람들이 실명을 하게 된 도시. 한 여인이 유일하게 세상을 볼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세상은 총을 가진 폭력배 무리와 이미 맹인이었던 사람들 중에 교활하게 상황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기득권을 쥐고 세상을 지배한다. 식량을 통제하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사람들은 폭력 앞에 순치되어 나간다.

▲ 박정남 독립PD

어쩌면 이 상황은 우리가 얼마 뒤에 맞이하게 될 상황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힘 센 놈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 아마 그들이 노리고 있는 것이 그런 사회일지도 모른다. 기우(杞憂)이길 바라마지 않으면서도 조짐이 좋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절대 용납 할 수 없다. 색약이든, 아니 색맹일지라도, 더 눈을 크게 뜨고, 바르게 보고 감시해야 할 것이다. 4년 남았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