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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의 그때그때 다른 영화] (4) 똥파리 (Breathless, 2008)

▲ 영화 <똥파리> (양익준, 2009)
영화 속 비탈진 골목에선 변방의 냄새가 났다. 기자시사회에서 양익준 감독은 난곡에서 5년간 살았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영화에서 연희, 영재 남매가 살던 집은 사실 그의 전세방이다. 어쩐지 그 비탈이 낯익었다. 내가 3년 동안 살았던 난곡도 그렇게 낡고 뒤틀리고 불편했다. 좁은 골목 속에 숨은 사연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변경. 밀려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서울 외곽. 밤늦게 돌아다니다 보면 술 취한 노인이 죽은 듯이 쓰러져 있고, 낡은 주택가에서 부부싸움 하는 소리가 고래고래 들리는, 삶의 처연하고 가난한 현장.

〈똥파리〉(2009)는 양익준이 직접 연출, 각본, 주연까지 도맡았다. ‘〈워낭소리〉와 〈낮술〉을 잇는 독립영화의 힘’이라는 수사를 붙이기엔 어딘지 낯 뜨겁다. 〈똥파리〉는 작품에 달린 화려한 수상내역이 무색할 정도로 우직한 영화다. 영화는 절대로 영리하지 않다. 계산되지 않은, 정제되지 않은 날것이 독립영화의 자산 운운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양익준은 그런 말을 비웃듯이 실컷 욕을 퍼붓는다.

이 영화의 힘은 이야기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이야기가 닿을 수 없는 부분에 있다. 그걸 드러내는 게 욕이고, 인물들의 번들거리는 눈빛이다. 그들의 눈은, 분노는 어딜 향하고 있는 것일까. 걸핏하면 욕하고 싸움만 일삼는 김상훈(양익준)은 딱 봐도 동네 깡패. 직업도 그에 어울리게 용역 깡패. 오로지 욕 밖에 들어본 적이 없고 욕 밖에 해본 적이 없는 삶에 꽃으로 뿌려진 길이란 없었다.

그저, 이 씨발 놈아, 퉤. 꽃 대신 침과 피로 범벅 된 길을 걷는, 그렇고 그런 인생이다. 인생막장라인을 타고 있는 인간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지만 끝내 좌절하고 만다는 평범한 서사는 영화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서울 외곽에 사는 사람들이 빠진 가난과 절망의 쳇바퀴-아비가 어미를 패고, 그걸 본 아이가 형제를 패고, 그 아이가 아비(어미)가 되어 다시 아이를 패는-를 도려내 프레임으로 옮기는 데 있어서, 외곽의 헤어날 수 없는 수렁보다 인물의 눈빛과 표정에 더 초점을 맞춘다.

감독 본인이 수긍하다시피 이 영화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세상이야 어떻든 내 아픔은 오롯이 내 것이란 듯이. 그래서 상훈의 캐릭터는 모질어 보여도 결코 모질지 못하다. 아비에 대한 증오로 아비를 패던 상훈이, 자기의 배다른 혈육 형인(김희수)이 아비를 패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장면에서 상훈의 미움은 맥을 잃고 쓰러진다. 또, 그렇게 증오스러운 아비여도 손목에 칼을 그어대니 업고 뛰지 않을 수가 없다. 뚜드려 팰 때도, 당신은 살아야 한다. 발버둥을 칠 때도, 상훈은 욕투성이다.

▲ 영화 <똥파리> (양익준, 2009)
그의 욕은 그래서 뜨겁다. 〈똥파리〉는 말의 힘을 믿지 않는다. 동생을 아비에게서 잃고 어미마저 교통사고로 떠난 상훈에게 아비에 대한 증오는 말로써 해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희(김꽃비)도 똑같다. 베트남파병 후 반쯤 미친 아버지와, 집밖에선 쪼다지만 집안에선 제왕인 ‘작은 꼰대’ 영재(이환)에게 시달리는 연희는 줄곧 강한 척, 유쾌한 척을 한다. 상훈도 연희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걸 굳이 헤집어내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들의 언어는 끊임없이 허공을 맴돈다. 한강변에서 연희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운 상훈이 울고, 연희도 따라 우는 건 그 때문이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욕하고 거짓말뿐이기에, 진실이 들어설 자리는 눈물 밖에 없다. 결국 서사도, 언어도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감정 뿐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감정 하나 붙잡고 뚜벅뚜벅 제 갈 길을 간다. 상훈과 연희의 기억을 파고드는 과거는 그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걸로 족하다. 영화는 감독이 직접 밝혔듯이 ‘가족’이 중심이다. 어떤 대안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엄마, 아빠, 아이가 있는. 너무 진부해서 그걸 당당하게 들이댄 것이 뻔뻔스러울 정도다.

▲ 김주원/ 블로거

그래도 영화에는 감정만 가지고도 관객들의 마음속으로 치고 들어가는 오기가 있었다. 상훈과 연희의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각자의 기억과 희망을 향하듯이. 영화는 끝났지만 사람은 남기 마련이다.

상훈은 죽었어도 양익준은 살아있다. 3년여의 고생을 유쾌하게 고백하는 양익준 감독의 웃음이, 약간 거슬리는 그 경박함조차 편안해 보였다. 〈똥파리〉는 그렇게도 뜨거웠는데. 감독의 얼굴을 살짝 보았다. 두려움이 없다. 그 점은 영화 속 상훈과 꼭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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