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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일 칼럼

게임속의 나그네쥐는 되지 말자 l승인1997.05.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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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한물 가버렸지만 한창 인기있던 컴퓨터게임 가운데 ‘레밍스’라는 게임이 있었다. 사전을 찾아보면 ‘북극산 나그네쥐’ 라고 나오는 이 귀엽고 작은 동물들은 오로지 줄지어 앞으로 걸어갈 줄만 알았지 방향을 틀거나 멈출 줄 모르는 단순한 동물들이다. 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 가능한 많은 숫자를 살려내는 것이 게임의 목표다. 그래서 게임의 관건은 게임하는 사람이 앞만 보고 줄지어 걸어가는 레밍스에게 갖가지 장애물을 극복하는 능력을 시기적절하게 부여해 주는 데 있다. 만약 레밍스에게 적당한 능력을 적시에 주지 못할 경우 그들은 두 개의 벽 안에 갇혀 끝없이 왕복한다든지 바다를 향해 걸어가 빠져 죽는다든지 아니면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줄줄이 떨어져 죽는다든지 하는 끔찍한 운명을 맞는다.요즈음 눈에 띄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모두가 초보게임꾼이 하는 레밍스게임 속의 나그네쥐들이 생각난다.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대로 기업가들은 기업가들대로, 또 다른 부류는 그들 대로 각각 색깔이 조금씩 다른 레밍스가 줄지어 어디론가 끝없이 걸어가고 있지만, 뭔가 제 방향을 잡지 못하고 길거리를 방황하다가 게임이 실패로 끝날 것만 같다. 대선정국에 들어서기 직전의 정치인들은 통일정책이나 국민을 위한 정책대결이라는 정도(正道)로 접어들지 못하고 어딘지도 모르는 좁은 골목 안에 갇혀서 서로 부딪히고 복닥거리는 전형적인 초보 레밍스게임의 형국이다. 기업하는 사람들 역시 합리적 경영에 의한 지속성장의 길을 찾지 못하고 남의 뒤만 따라 가다가 높은 곳에서 줄지어 떨어져버리는 레밍스의 형국을 닮았다. 허리가 휘는 과외비를 싸들고 입시전쟁 대열로 일찌감치 아이들을 내모는 학부모들도 그렇고, 의사들의 부작용경고도 아랑곳하지 않는 남자들의 강정제 탐구행렬이라든가 한 누드모델을 둘러싼 떠들썩함, 게다가 다마고찐가 디노쿤인가 하는 일제 애완게임기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의 아우성 따위 마저도 온통 레밍스의 맹목적인 행렬을 보는 듯 어지럽기만 하다.방송계는 어떤가? 시청률 때문에 어느 방송사는 잔칫집인 반면 어느 방송사는 반대로 초상집이라느니 어쩌니 하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프로듀서들 역시 레밍스게임 속의 나그네쥐들이 돼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시청률경쟁에 저도 모르게 빠져버려, 애초에 하고자 했던 멋지고 훌륭한 프로그램들을 포기한 채, 스타를 끌어다 한탕꺼리를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짜낸다거나 사람들의 눈을 붙들어 맬 선정적인 그림을 끼워넣기 위해 날밤을 새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방송사간의 과당경쟁이란 실상 방송의 발전이라든가 방송사의 경영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자로부터 방송계 최고의 게임꾼임을 인정받고자 안달하는 몇몇 사람들 때문은 아닌가? 그들의 이름을 최고 랭킹에 올려주기 위해서 방송쟁이들은 산재처리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목숨 건 중노동을 지금 이 시간에도 길거리에서 스튜디오에서 편집실에서 레밍스처럼 꾸역 꾸역 해내고 있지는 않은가 말이다.레밍스의 비극은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는 데 있다. 게임꾼의 손에 운명을 맡긴 채 헤매는 레밍스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스스로 멈추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일단 멈춰서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고 잠시 옆길로 빠져서 돌아가는 판을 살펴볼 일이다. 경제가 좋지 않아 방송광고가 떨어져서 시청률 경쟁이 곧 광고수입 경쟁이 되었으니 먹고 살려면 알아서 하라고 한쪽에서 목소리를 높일지라도, 그럴수록 냉정하게 그 원인을 따져보고 상황을 예측하며 그 속에서 방송의 발전방향과 프로듀서의 할 일을 생각할 일이다. 아무리 편할 대로 그때 그때 논리를 바꾸는 방송계의 게임꾼들이라도 방송이 공익적이어야 한다는 대명제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므로. 그리고 방송인들은 레밍스가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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