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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도 PD의 온에어오프에어]

▲ 윤성도 KBS PD
우리나라의 최장수 오락프로그램인 〈가족오락관〉이 오는 18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1984년 시작된 가족오락관은 26년간 KBS의 프로그램 중 〈추적 60분〉, 〈전국 노래자랑〉과 함께 누구나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브랜드를 유지하며 서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해왔다.

방송이 처음 시작됐을 때 30대 중반이었던 MC 허참씨는 이제 환갑의 나이를 맞게 되었고  26년간 20여명의 여자 MC를 갈아치웠으며 수십명의 PD들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갔다.

그리고 그 수십명의 PD중에는 나도 있었다. 내가 〈가족오락관〉 제작에 짧게나마 참여를 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1997년. 당시 나는 입사 2년차로, 당시 교양프로그램을 하고 있다가 예능 파트(TV2국이라 불렀다)에 가서 선배 밑에서 조연출을 담당하게 된 프로그램이 〈가족오락관〉이었다.

처음 접하는 연예오락프로그램에서 먼저 알게 된 것은 ‘사전녹화’의 중요함이었다. 보통 방청객들은 초등학교 어머니회에서 단체로 신청을 해 순번이 되면 출연을 하게 된다.

녹화에 들어가기에 앞서 1부 MC를 맡은 박해상씨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방청객들을 무대로 불러내 댄스 대결 같은 이벤트를 벌이게 되는데, 처음엔 쭈뼛쭈뼛하던 아주머니들은 5분만 지나면 경쟁적으로 무대로 뛰어올라가 광란에 가까운 춤을 선보이고, 이런 분위기는 본방 녹화로 그대로 이어져 프로그램을 더욱 화기애애하게 만든다.

▲ KBS <가족오락관> ⓒKBS
허참 선생은 유재석이나 신동엽처럼 정교한 진행을 하지는 않지만 어쩌다 진행상의 미스가 생겨도 고조된 분위기를 끊지 않고 적당히 눙치고 넘어가는 솜씨는 과히 세계적이라 할만 했다.

녹화 중 나의 중요한 임무는 O-X 버저 역할을 하는 실로폰이 NG가 안나게 실로폰 치는 사람 옆에서 실로폰을 치기 전에 사인을 주는 것이었는데, 허참 선생이 아니라면 그 분위기를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녹화는 정신이 없게 진행이 된다. 그러다보니 NG도 가끔 나는데, 한번은 제2의 ‘왁자지껄’사건 (80년대에 가족오락관에서 벌어진 유명한 방송사고로, 그 내용에 대해선 말하기가 좀 그렇다)이 벌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고요속의 침묵’이란 코너가 있었는데 음악소리가 크게 들리는 헤드폰을 끼고 앞의 사람이 단어를 말하면 그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그 입모양만 보고 단어를 전달하는 게임인데, 보통 마지막에 가면 엉뚱한 단어로 둔갑이 돼 사람들의 배꼽을 잡게 한다.

그날 가수 김흥국씨가 출연을 했는데, 앞의 사람이 뭐라고 단어를 외치자 김흥국씨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다가 뭔가를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좋아요’를 외쳤다. 웬 ‘좋아요’? 앞의 단어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말인데..

녹화 후 김흥국씨가 그 시추에이션에 대해 설명을 했다.

“뭐라고 외치는데 아무리 봐도 XXX(신체 특정 부위를 뜻하는 말이 포함된 비속어)로 보이는 거야. 그런데 어떻게 그대로 말해? 나도 방송인인데. 그래서 ‘좋아요’ 그래버렸지 뭐.”

뭐니뭐니해도 가장 인기가 좋은 코너는 ‘방과 방 사이’였다. 칸막이에서 하나씩 열며 한 사람이 동작을 하면 옆의 사람이 동작을 따라하고 마지막에 그 동작이 뭔지를 알아맞히는 게임인데, 개그맨 심형래씨가 나오면 반드시 내는 문제가 ‘파리’였다.

허참선생이 파리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면 심형래씨는 〈쇼비디오자키〉 ‘벌레들의 합창’에서 하던 파리흉내를 내는데, 몸을 비비꼬며 손을 얼굴에 비비면서 파리 흉내를 내면 스튜디오는 폭소로 뒤집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끝의 사람이 맞힐 확률은 0%다.

한번은 육상종목인 ‘투포환’을 문제로 냈는데, ‘투해머’그림을 그려놓고 ‘투포환’이라고 써놓았다. 투호환과 투헤머를 혼동한 실수였는데, 출연자들도 모두 투해머와 투포환을 헛갈려 마지막에 ‘투포환’이라고 했는데도 실로폰은 ‘딩동댕’을 울렸다.

이게 실수였다는 것을 안건 방송이 나가고 나서였는데, 사내 심의평에도 지적이 됐다. 아침회의를 마치고 당시 CP였던 홍순창 부장(얼마전 정년퇴직을 하셨다)이 들어오더니 농반진반 왈, “너희들 나 엿먹이려고 일부러 그랬지?” 그 다음부터는 문제를 낼 때 국어사전을 반드시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 프로그램을 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녹화가 끝나고 허참선생이 내는 저녁 자리인데, 허참선생처럼 술이나 음식을 그렇게 맛있게 먹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허참선생은 술과 담배를 무척 즐기는 편이었는데, 낙천적이고 즐거운 삶의 방식과 왕성한 식욕이 건강의 비결인 것 같았다.

▲ KBS <가족오락관> 최종회 ⓒKBS
그 후 나는 예능을 떠나 교양프로그램으로 정착을 하게 되었지만, 생각해보면 그때처럼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즐거웠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제 그 프로그램이 없어진다니 제작에 참여했던 PD로서, 시청자의 한사람으로서 아쉬움이 남는다. 화려하진 않아도 그렇게 오랜 세월 서민들과 같이 해온 프로그램 하나가 없어진다니 다시는 그런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을까 싶다.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지금 다시 〈가족오락관〉을 하라고 하면 그때처럼 즐거울까?

과히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요즘 우리의 방송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나부터가 맘껏 웃을 일이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잡혀가고, MC가 하루아침에 화면에서 사라지는 그런 느와르 속에서 나 혼자서 사람들을 웃겨보겠다고 하면 그건 참 고역이 아니겠는가.

웃음이 사라지는 시대를 사는 PD는 괴롭다.

※ 이 글은 윤성도 PD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윤성도 PD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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