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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세상읽기]

▲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88만원 세대 저자)
지난 20일, 1심 법원에서 인터넷에 경제관련 글을 올리던 미네르바에게 무죄를 선고하였고, 그는 석방되었다.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최소한 지난 1년 동안 정말로 기쁜 소식을 내가 들었던 것이 뭐가 있나 생각해봤는데, 정말로 처음인 것 같다. 지난 1년 동안은 우울하고, 힘든 소식들만 있었고, 정말로 한국 사회가 좋아지고 있거나, 최소한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는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은 거의 없었다. 이명박 정부의 ‘법치’는 무서운 법치이고, 일벌백계라는 말로도 잘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그야말로 ‘괘씸죄의 법치’에 가까울 정도였다.

내심을 말하자면, 나는 한나라당이 잘 해주기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었고, 비록 내가 지지했던 대통령 후보는 아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어느 정도로는 정상적인 국정 운행을 해주고, ‘좋은 통치’라는 것을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나라 망하지 않는다.” 이 명제가 어느 정도 사실로 입증되어야, 이름뿐인 ‘진보’라는 말도 해체가 되고, 국가가 정상적인 좌파와 우파 구도로 자리를 잡고, 그 안에서 더 많은 토론과 협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일부러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정부가 뭘 잘 못해서, 반사적으로 다른 정파가 이득을 얻어서 재집권하게 되는 그런 상황을 바라지는 않는다. 정치와 달리, 국민 경제는 멈춰서 있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학자들은 집권에 더 많은 의미를 둘 수도 있겠지만, 경제정책은 누가 집권해도 멈춰서는 법이 없기 때문에, 누가 되든 국민들의 경제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원칙부터 얘기하면, 경제에 관한 담론이 사회 맨 앞으로 나오는 상황이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좋은 사회라면, 예술가들이나 문필가들 혹은 철학자들이 맨 앞에 나와서 사회의 담론을 이끌어가고, 법이나 경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그 뒤에서 조용히, “이런 얘기도 있다”고 하는 그런 상황이 가장 이상적인 상황일 것 같다.

그러면 우리는 뭐 먹고 사나? 최근의 내생성장론의 이론을 약간 소개하자면, 다양성을 확보하고, 더 많은 상징적 지식 혹은 문화적 창출이 많아지고, 그래서 국민 경제 자체가 창의성에 가까워지면 경제 성장률은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지식과 문화가 새로운 부가가치를 위해서 긍정적인 요소로 작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경제를 위해서라도 사람들이 경제에 대한 얘기를 덜 하고, 더 재밌는 얘기, 더 신나는 얘기를 많이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 한겨레 4월 21일 3면
경제는 수단이다. 그 수단이 맨 앞으로 나오게 된 사회는 좋은 사회도 아닐뿐더러, 정상적인 사회도 아니다. 미네르바의 글이 사회 맨 앞에 나와 있는 사회를 나는 좋은 사회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앞서 예술이나 문화에 관한 글들이 있어야 하고, 우리가 만들어야 할 좋은 사회에 대한 얘기들이 있는 것이 더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지난 수년간, 우리는 수단이 목적이 되는 사회를 살았고, 그러다보니 그 어느 때보다 경제주의 혹은 시장 근본주의가 팽배한 시대를 살았다. 물론 말은 멋지게 성장주의 혹은 전도된 신자유주의라고 붙일 수 있지만, 그 근본은 ‘땅값 따먹기’의 전국화라고 할 수 있는 토건경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나쁜 사회는, 경제에 대해서 집권세력이 원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얘기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냥 사법적 잣대를 들이미는 경우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의도가 필자들과 저자들 혹은 네티즌들의 발언의 자유를 틀어막고, “경제는 좋아지고 있다”는 한 가지 말만 하라고 하는 상황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리고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그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 살아오고 있었다. 한국 경제가 비극적이라고 전망을 했다고 해서 ‘불온인사’ 처리하듯이 일종의 사상범을 만드는 일은 우리가 얼마나 비극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일 뿐이다.

어쨌든 그간 시대의 어둠을 대신 짊어지고 감옥에서 황당한 경험을 한 미네르바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를 주고 싶다. 그리고 다시는 경제 전망이 집권세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감옥에 가게 되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경제의 세계에서 어쩌면 ‘사실’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은 해석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른 문화나 철학보다는 경제 내에 구체적인 사실이 조금은 더 많은 것 같다. 경제도 자유롭게 해석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문화나 철학 혹은 사회를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 신자유주의 시대라고 하는데, 정작 가난한 사람과 주변부의 사람은 아무런 자유도 없는 시대, 그 시대를 이것으로 마감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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