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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사건의 발단은 팀 회의를 마친 후, 야구 이야기를 시작하면서였다. 최근 OBS는 박찬호, 추신수 선수의 MLB 전 경기를 편성했다. 이야기의 화제는 상대적으로 부진한 박찬호보다는 WBC 이후 상승곡선을 그리는 추신수 선수에 대한 기대감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세계대회라기보다 한일시리즈에 가까웠던 지난 WBC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한국 대 일본의 3차전이라고 생각한다. 도쿄에서 충격적 콜드게임 대패의 1차전도, 1:0으로 신승했던 2차전도 극적이었지만 역시 백미는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첫 한일대결인 3차전이다.

백중세를 예상했던 경기는 의외로 한국의 편안한 승리로 막을 내렸다. 감격한 선수들은 마운드 위에 태극기를 꽂았다. 2006년 1회 대회처럼. 태극기 퍼포먼스는 두 대회 연속 유일하게 일본전 승리 후에만 벌어졌다. 태극기 퍼포먼스가 WBC 한일전 승리의 전통 세리머니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순간이었다.
세계대회에서 승자가 자국의 국기를 들고 행진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마운드에 국기를 꽂는 행위는 어떨까? 대부분의 한국인은 전혀 문제 삼지 않는 일이다. 2006년에는 필자도 ‘야구에서 우리가 일본을 이기다니!’에 열광했다. 2002년 시작된 스포츠 부문에서의 애국적 광기로부터 조금도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평소 일본과 일본인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잘 알고 있는 나라의 여론은 언제나 궁금하기 마련이다. 또한 최근 몇 년간 급속히 퍼져가는 혐한(반한도 아닌 혐한?)에 대해 언제나 경계하고 있다. 쉽게 드러내지 않는 본심이 미덕인 일본이기에,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에서 속마음을 털어놓는 그들의 진심은 언제나 궁금하다. 일본 주류 언론은 태극기를 일부러 ‘한국기’로 오기하며, 불편한 감정을 우회적으로 드러냈지만, 일본 네티즌의 댓글은 직설적이었다. 한국에 대한 지독한 분노와 모멸감이 대부분이었다.

국내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WBC 일본의 우승은 태극기 퍼포먼스에 대한 강력한 복수심이 원인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유령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일본에서는 주류 언론에서도 인용할 정도로 일반적인 의견이다.

태극기 퍼포먼스는 한국인에게는 감격을 드러내는 극적 표현이겠지만, 일본인에게는 짙은 모멸감을 주는 행위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웃이 애써 꺼려하는 일을 되풀이 하며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세상사의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독도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를 애써 무시하며 “한국인은 과학적 근거를 경시한다”고 주장하는 일본 우익에게도 두 손을 꼭 붙잡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우리 사회에서는 한국의 지리적 틀을 벗어난 사고(思考)는 종종 비애국으로 치부되곤 한다. 특히 일본과 관련된 일본인의 시각에 동감한다는 표현의 반응은 반드시 “당신은 친일파”다.

▲ 공태희 OBS 〈정한용의 명불허전〉 PD

여러 부문에서 가장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는 이웃나라의 반응을 걱정하는 것이 친일파라니! 그렇다면 필자는 친일파를 자처하련다. 그리고 친북, 친팔레스타인, 친베트남, 친몽골, 친중, 친러시아, 친미는 물론 친이슬람, 친가톨릭, 친불교 그리고 그 외 전세계 모든 국가와 종교와 단체와 동호회의 ‘친구’를 목표로 남은 생을 마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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