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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야기] 이채훈 MBC PD

▲ 이채훈 MBC PD.
보고 또 봐도 늘 가슴 설레는 TV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디스커버리 채널의 로고송 <세상은 경이로워>(The World is Just Awesome). 우주 비행사, 아프리카 토인, ‘제일 더러운 일을 하는 사람’ 등 다양한 지구촌 사람들이 ‘붐디야다 붐디야’ 후렴 장단에 맞춰 부르는 이 노래(http://freeter.tistory.com/49)는 아름다운 지구에 대한 찬가요, 평화와 공존을 희구하는 사랑의 노래다.

우주 속의 인간을 생각해 본다. 태양 같은 별 10억 개가 모여서 은하계를 이루고, 다시 10억 개의 은하계가 모여서 우주를 이룬다. 별마다 대략 10개의 행성이 있고 행성마다 5개의 위성을 거느리고 있다고 가정하면 우주에는 (1,000,000,000)제곱 x 10 x 5개의 별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인 이 푸른 지구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시간을 따져본다. 지구가 생겨난 지 45억년, 무수한 생명체가 태어나고 죽어갔다. 직립 원인이 나타난 것은 길게 잡아 400만년, 우리와 같은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난 것은 약 100만년이라고 한다. 지구의 나이를 하루로 치면 인류가 존재한 기간은 15초에 해당하고, 한 개인의 평균 수명을 80년이라 하면 0.000012초, 글자 그대로 찰나에 불과하다.

보이저 1호가 1990년 6월 명왕성 부근, 약 64억km 거리에서 촬영한 지구는 0.12 픽셀 크기의 희미한 점에 불과하다. 그래서 지구는 경이롭다. 우주 한 구석의 푸른 먼지에 불과한 곳에서, 눈 깜짝할 동안 살다가 사라질 우리 인간들이 이토록 활발히 사고하고, 창조하고, 소통하고, 사랑하며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지 않은가!

<창백한 푸른 점>의 저자 칼 세이건은 노래했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의 총합 /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 이데올로기들, 경제적 독트린들 /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 모든 영웅과 비겁자 /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 왕과 농부 /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 모든 슈퍼스타 / 모든 최고 지도자들 / 인간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 저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 먼지의 티끌 위에서 / 살았던 것이다.”

기나긴 우주의 역사를 고려하면 “100년 안에 일어날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지만 100만년 안에는 반드시 일어나는” 대사건들이 있다. 공룡을 멸종시킨 거대한 운석 충돌, 폼페이를 삼켜버린 화산 대폭발 같은 자연현상들이다. 이러한 불가항력의 자연 현상에 덧붙여, 자기를 멸종시킬 재앙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 낸 족속이 바로 인간이다. 핵전쟁의 위협은 논외로 하자. 인간의 ‘비자연적인’ 생활 습성 때문에 생겨나는 신종 바이러스도 논외로 하자. 화석연료를 지금처럼 사용할 경우 지구 온난화는 50년 만에 인류 멸종을 가져올 거라고 한다. 지구 연령을 하루라 하면 0.0000075초, 바로 코앞에 대재앙이 닥친 것이다.

최근 국내 다큐멘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도 바로 이 점이다. 북극 빙하가 녹아내리고, 남태평양의 섬들이 물에 잠기고, 동남아 산호초가 파괴되고, 아마존 삼림이 헐벗게 되는 이 모든 과정은 인간 중심으로 보면 서서히 진행되는 것 같지만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한 순간에 불과하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본격화한 이 재앙은 작금의 신자유주의와 함께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 아마존 벌채 모습.
그렇다면 대안은? 일부 PD들의 용감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대안은 찾기 어렵다. 지구 차원의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중단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대체연료가 보편화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누구나 동의할 만한 큰 방향은 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윤 추구를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공멸을 초래할 신자유주의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안 된다. 지구촌에 창궐한 시장 만능주의 인플루엔자를 치료할 백신을 개발해야 한다. 

다행히 세계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규제 완화와 부자 감세에 집착하는 무리들이 ‘오직 한국에만 있을 뿐’이라는 게 지구 차원에서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이윤 극대화에 매달리는 이 어둠의 바이러스들에게 푸른 별 지구의 ‘경이로움’은 낯선 단어일 것이다. 이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 푸른 별 지구가 자전하여 태양빛을 받을 때 달콤한 아침이 시작된다는 것,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기 때문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아름다움이 이어진다는 것, 지구 위 우리의 삶이 찰나에 불과할 정도로 짧기 때문에 오히려 경이롭다는 것, 인간이 ‘지구 최악의 해충’이란 오명을 벗고 이 푸른 별의 은총에 보답하려면, 사랑과 평화 같은 거창한 단어는 차치하고, 이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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