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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인권]

너무나 당연했던 사형제 폐지

사형제도는 국가에 의한 합법적 살인으로서 생명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오판을 회복할 수 없으며 보복 감정의 만족에 불과한 야만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적어도 내가 530GP사건을 변호하기 전까지는.

2005년 6월 19일 530GP 사건

2005년 6월 19일 새벽 530GP에서는 경계근무자가 내무반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총기를 난사하여 8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GOP 부대에서 군복무를 했다는 이유로 사건은 나에게 배당되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윤수처럼 까만 뿔테 안경을 쓰고 접견실에서 나를 만났던 피고인. 그 때 내 머릿속에서 맴돌던 의문은 ‘왜 죽였을까?’ 단 하나였다. “정말, 네가 죽였니?”라는 물음에 피고인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눈빛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자신이 죽였는지에 대해 긍정을 하지 않는 이상 왜 죽였는지는 물어볼 수가 없다. 그는 사회에서 말수가 적어 존재감도 잘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우리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처럼. 피와 함께 엉겨 벽에 붙어 있던 살점들, 내장이 반쯤 흘러나와 있던 시신. 기록을 통해 본 사건 현장은 참혹했고, 법정은 유족들의 오열로 가득 차 있었다. 피고인은 자백을 하지 않았고, 범행에 사용되었다고 증거로 제시된 총기에서는 피고인의 지문이 나오지도 않았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변호인인 나도, 검찰도, 재판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저 검찰관이기에 기소하고, 변호인이기에 최선을 다해 변호하고 군판사이기에 판단할 뿐이다. 피고인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형제 폐지론의 논거들
 
사형은 국가에 의한 합법적 살인이라고? 맞다. 마찬가지로 징역형은 합법적 감금이고, 벌금형은 합법적 재산권 침해이며, 압수수색은 합법적 주거침입이다. 사형이 생명권의 본질을 침해한다고? 어느 형벌은 박탈되는 법익의 본질을 침해하지 않나? 감금되는 순간 그 장소를 벗어날 자유는 본질적으로 침해된다. 사형으로 인한 오판을 회복할 수 없다고? 그러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20년쯤 수형생활을 하다가 무죄가 밝혀져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으면 20년의 세월이 회복되나?

보복감정을 충족시킬 뿐인 야만적 형벌이라고? 내 마누라를 강간하고 내 자식을 유괴한 사람을 고소하면서 그가 교도소에 구금되어 교화되고 재사회화되어 선량한 시민으로 사회에 복귀하기를 바라는가? 동해보복론부터 교육형주의, 목적형주의에 이르기까지 형벌에 관한 이론은 그야말로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형벌의 본질은 여전히 그리고 형벌이라는 제도가 존속하는 한 수형자에게 고통을 주고자 하는 보복이다. 기결수를 구금하는 시설의 명칭이 형무소에서 교도소로 바뀐 게 언제인데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그건 어차피 가둬두고 고통을 주는 기간 동안(응보형주의, 형무소) 기왕이면 재사회화를 도모하자는 것(교육형?목적형주의, 교도소)이지 형벌의 본질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 김학웅 변호사 (언론인권센터 언론피해구조본부장)

나이 사십줄에서야 민법 전공으로 겨우 석사학위를 받은 내가 형법의 심오한 이론을 제대로 알 리가 없다. 그리고 사형제가 옳은지 그른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오열하는 유족들에게 차마 저런 논거로 사형제 폐지를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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