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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야기] 이정호 참세상 편집국장

▲ 이정호 참세상 편집국장
지난 17일 일요일 밤 두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일간지와 방송사의 노동 담당기자였다. 그들은 내게 “어제 대전에서 왜 그렇게 과격하게 경찰과 충돌했냐”고 물었다. 혹 민주노총이 고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부 부지회장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본격 하투(夏鬪)의 불을 지피려 한 의도적 충돌이 아니었냐는 나름의 해석을 숨기지 않았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늘 “준비 안 된 파업은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임성규 위원장은 지난달 당선 이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현장을 보니 6월에 총파업은 어렵더라”고 말했다. 물론 임 위원장이 시기를 지목해 파업하기 어렵다고 한 것을 두고는 말이 많다. 보수 언론은 이날 기자간담회 기사에서 임 위원장을 생각만큼 강성이 아닌 합리적인 지도부라고 평가했다.

그런 임 위원장이 지난 16일 대전에서 열린 민주노총 노동자대회에서 “6월 총력투쟁을 최대한 앞당겨 보겠다”고 발언했다. 이를 두고 언론이 16일 대전 거리의 유혈 사태를 ‘6월 총파업’을 위한 ‘군불 때기’로 몰아가고 있다. 노동 담당기자를 6개월만 해보면 알겠지만, 민주노총이 ‘총파업’ 대신 ‘총력투쟁’이란 용어를 사용하면, 이는 곧 지금의 현장 상태가 파업하기 쉽지 않은 수세적 조건이라는 소리다. 그런데도 언론은 죽창을 앞세운 민주노총의 기선을 꺾어 놓겠다는 열의에 차 요란하게 민주노총의 과격 시위를 앞 다퉈 비판하고 나섰다.

경찰과 노동자 양측의 많은 부상자가 났다는 스트레이트 기사와 함께 붙은 해설기사는 제대로 된 원인을 내놓지 못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기막힌 삶이라는 근본 원인까지 도달하진 못하더라도, 지난 16일 밤 현장에서 많은 부상자와 함께 과격시위를 낳은 직접 원인조차도 제대로 파악해 짚어주는 언론이 없다. 그날 현장에 있었던 노동자 몇 명만 붙잡고 물어보면 해결될 것을.

▲ 조선일보 5월18일자 1면.
나는 지난 18일 낮 신탄진의 금속노조 한 공장에 교육을 갔다. 대전역에 내려 국도를 타고 신탄진으로 가는 길에 대전중앙병원이 있다. 거기서 1.5km쯤 더 북쪽으로 가니 대한통운 대전지사였다. 마중 나온 노조 간부도 지난 16일 오후 거리 시위에 참가했다며 차 안에서 장소를 설명해줬다.

교육 시작 전 16일 집회에 참가했던 노동자 몇몇을 만나 양측이 “왜 그렇게 심하게 충돌했냐”고 물었다. 지난 9일에도 동료의 죽음에 대한 분노를 안고 대한통운 대전지사 안으로 치고 들어가자던 것을 지도부가 막았다. 그래도 그날은 경찰이 길을 열어줘 노동자들은 자극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16일엔 9일보다 더 많은 노동자가 모였는데도 경찰은 막아섰다. 물대포에 자극받은 노동자이 들고 있던 만장은 자연스럽게 죽창이 됐다. 많은 부상자를 내면서 경찰은 이후 1km 가량을 밀렸다. 대한통운 대전지사까지 밀고 들어온 노동자들을 말린 건 경찰이 아니라 노조 지도부였다. 그들은 마이크를 잡고 “이후 더 큰 투쟁을 위해 오늘 싸움은 여기서 정리하자”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노동자는 내게 “이대로 끝나면 대전경찰청장 목이 날아 가겠더라구요”라고 말했다. 그만큼 경찰이 당했다는 소리다. 지도부의 말을 들은 노동자들은 만장을 내려놓고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거나 늦은 저녁을 먹으려 식당으로 향했다. 이때 경찰이 “뒤에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진압했다”고 했다. 이 노동자는 다행히 대전에 살아 지리에 익숙해 펜스를 넘어 피했다. 그는 현장에서 좀 떨어진 곳의 식당에서 밥을 먹었기에 체포를 면했다. 그의 동료들은 현장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연행됐다. 경찰은 식당에 들어와 화물연대 조끼를 입었거나 비옷을 걸친 노동자들은 마구잡이로 연행했다.

지난 16일 밤에는 분노에 찬 특수고용직 노동자와 그 노동자에 밀려 망신당한 대전 경찰의 화풀이 진압과 연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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