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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생방송 중 가장 답답할 때는 언제일까?
CM 사고? 음향 사고? 자막 실수? 엉뚱한 VCR 플레이? 시간 계산 실수? 아니면, 출연자가 인정사정없이 늦을 때?

하나같이 극단적인 예들이지만, 무엇보다 돌발 상황을 결코 따라 잡을 수 없는 생방송 중 커뮤니케이션의 속도를 꼽고 싶다. 생방송에서 돌발 변수의 등장은 필연이다. 큐시트와 대본대로만 진행되는 생방송이란 태생적으로 불가능하다.

자막이나 대본은 물론 순서까지 수정해야 할 경우가 몇 번이고 발생한다. 육성으로 혹은 무선 통신으로 “빨리 빨리! 이렇게 저렇게 수정!”을 외치며 출연진과 제작진에게 전달하는 그 순간에도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직감하지만, 그러면서도 대처는 한없이 느릴 수밖에 없는 순간, 말 그대로 “어! 어! 어!”밖에 할 수 없는 그 순간. 시간의 상대성 이론을 체감하게 된다. 모든 객체에게 결코 시간은 동일하게 흐르지 않는다는. 그럴 때마다 궁극의 방송장비를 상상한다. 말을 하지 않고도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궁극의 방송장비를. 그렇다. 아마도 텔레파시일 것이다.

지난 한 달간 매주 하루씩 특집 생방송을 담당했다. 행사의 여왕, 5월을 맞아 벌어지는 갖가지 행사의 개막식을 현장 연결하는 생방송. 변수의 통제가 비교적 용이한 스튜디오에서의 스탠더드 생방송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 방송 환경에도 익숙해진 딜레이 생방송이었다.

하드 레코더를 통해 행사를 실시간으로 녹화 편집하면서 현장 시간보다 다소 늦게 방송하는 형식이었다. 지나치게 길어지거나 불필요한 부분을 실시간으로 편집하며 방송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부조정실 연출자에게 가장 어려운 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현장 행사의 정확한 예측 불가능(행사의 정확한 시간 예측과 확정된 출연진의 변동 예측 등)이며, 둘째는 현장에 대한 통제력 행사 불가능(현장 중계차 연출자도 마찬가지)이다.

예측할 수 있는 몇 가지 변수에 대한 대비책이 있다 해도, 애초에 모든 변수를 예측할 수는 없다. 어쩌면 생방송이란 때로는 요행에 기댈 수밖에 없는 가혹한 시련일지 모른다.
상상해보자. 당신이 생방송의 연출자이다. 변덕 심한 날씨보다 더 못되게 현장 상황은 급변하고, 자막과 대본은 물론 예정 큐시트의 순서까지 변경해야 한다. 중계캐스터는 물론 각 제작진에게 급작스럽게 수정사항을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언제나 연출자의 전달 속도보다 현장의 돌발변수가 더 빠르다. 당신이 부조정실에서 할 수 있는 단어는 “어! 어!”의 반복밖에는 없을 것이다.
필자는 그럴 때마다 정말이지 텔레파시의 필요를 느낀다. 생각만으로 동시에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을.

▲ 공태희 OBS 〈정한용의 명불허전〉 PD

가벼운 농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텔레파시의 본질이란 결국 말없이 통하는 생각의 공명(共鳴)이 아닐까? 본심을 가감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상태. 즉,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이래저래 좋은 방송을 위해서, 나아가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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