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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의 영화이야기]

지난 며칠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놀람에 슬픔에 아픔에 휩쓸려 열흘을 보냈다. 돌아보면 개인적으로 힘들고 아픈 일이 있었을 때도 방송을 쉴 수는 없었으므로 분장을 하고 카메라 앞에 섰고 라디오 부스에서 마이크 앞에 앉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주일 휴가가 지난 후 방송을 해야 했을 때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이란 게 참 쉽지 않구나 싶었다. 아마 방송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 일은 하지만 조금 달랐다. 개인적인 슬픔이라기보다는 집단의 슬픔이었고 아픔이었다.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고 많은 사람들이 당혹감과 깊은 슬픔으로 하루하루 눈물로 보냈다. 종일 텔레비전을 보며 인터넷으로 기사를 읽고 동영상을 찾아보며 슬픔의 바다로 헤엄쳐 들어갔다. 사람들은 마치 그 슬픔의 바닥을 확인이라도 하겠다는 듯 끊임없이 새로운 뉴스에 지나간 영상에 빠져들며 댓글을 달고 게시물을 적었다.

필자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아픔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격으로 게시물을 적을 여유 따위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방송을 할 수 있을까,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 걸까, 어떤 역할이라는 것을 할 수는 있는 걸까.

많이 고민스러웠다. 당황스럽고 막막했지만 방송은 나가야 했고 무슨 말이든 무슨 음악이든 들려줘야 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으므로 영화로 세상을 말했고 사람들의 탄식과 슬픔을 전했다. 그리고 음악을 들려줬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프로그램을 처음 듣는다는 사람들이 있었고 평소에는 늦은 시각이라 듣기 어렵다던 사람들도 본방으로 함께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의 말, 목소리가 많은 위로가 됩니다, 위로가 되는 음악 부탁합니다. 그래, 그 안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담겨 있었다. 위로….

▲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Joint Security Area, 2000)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가라….”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삽입된 노래 “부치지 않은 편지”를 부른 김광석의 목소리는 어쩜 그렇게 위로가 되는지. 영화에서 북한 병사 송강호도 그랬다. “광석이는 왜 그렇게 빨리 죽었네?”라고. 그러게, 그이는 왜 그렇게 빨리 죽었을까.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의 목소리로 녹음된 노래가 있다. 또 피곤하고 지친 몸과 마음에 위로가 되는 스팅(Sting), 사라 맥라클란(Sarah Mclachlan), 에이미 만(Aimee Mann), 성시경의 노래가 있다.

〈시네마 천국〉, 〈쉰들러 리스트〉, 〈브레이브 하트〉, 〈필라델피아〉, 〈포레스트 검프〉의 테마곡들. 그런가 하면 위로가 되는 영화도 있다. 알프레도가 죽으면서 남겨준 필름을 돌려보자 어린 시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던 키스신만을 모아놨던  영화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다음에 어느 초콜릿을 고르게 될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의 미래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포레스트 검프〉의 깃털 하나, 그리고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의 소망으로 죄수들이 작업장이었던 지붕 위에서 모두 맥주 한 병씩 마시던 장면 등 우리 마음을 쓰다듬어 주고 삶이라는 게 결국은 살만하다고 일러주는 영화들이 있다.

물론 우리가 지금 당장 영화를 찾아보지는 못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고 일상으로 돌아와 어느 날 문득 영화 한 편을 보며 마음에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도 죄수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는가. 이 세상 어딘가에는 삭막하지 않은 곳이 있다고, 우리 마음속에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것이, 우리만의 것이 있다고. 그건 희망이라고.

▲ MBC FM <이주연의 영화음악> 진행자, 이주연 아나운서
어떤 언론은 “추모의 민심은 무엇이냐, 당신의 스러진 꿈 일으켜 세우겠다”며 이 현상을 미래를 향해 열어놓고 있고 어떤 언론은 “7일간의 국민장은 끝났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며 이제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하지만 언론이 국민의 슬픔의 유통기한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한 번, 마음껏 이 슬픔을 표현하고 서로 위로하는 것뿐이다. 그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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