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e야기] 김진혁 EBS PD

왜 이제야 궁금해졌을까? 영결식을 보고 나서 인터넷에 들어가 ‘포괄적 뇌물죄’라고 치고 검색을 해 봤다. 찾다 보니 눈에 띄는 사실이 하나 들어온다. 포괄적 뇌물죄는 형법상에 존재하는 범죄가 아니란다.

‘어 그래? 어째서 형법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법을 가지고 처벌을 하려 한 걸까?’ 그리고 나아가서 ‘어, 그래? 왜 나는 이런 사실을 몰랐었지?’ 거 참 희한하다. 나름 방송사 PD고 소위 ‘지식’ 어쩌고 프로그램을 만든 내가 사실 참 무식했구나 싶어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어쨌거나 궁금해서 좀 더 검색을 해 보니 포괄적 뇌물죄라는 것은 법원의 ‘판례’에 근거한 것이고, 그 계기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혐의를 처벌하기 위해서 정한 것이란다.

‘어, 그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같은 판례로 처벌한다?’

▲ 조선일보 5월 14일자 10면
그래, 뭐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근데 이거 또 모르던 게 하나 튀어 나온다. 포괄적 뇌물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직접’ 돈을 받아야 한단다.

‘어, 그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직접 돈을 받은 것은 아니잖아? 그럼 이게 뭐지?’

좀 더 찾아보니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일종의 포괄적 뇌물죄의 ‘공범’으로 본 것이란다. 가족이 돈을 받았으니 당연히 알고 있었으리라는 ‘상식’과 ‘정황’에 입각해서 ‘공범’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을 해서 증거를 찾다 보니 증거가 안 나와서 하지만 ‘상식’과 ‘정황’에 입각해 볼 때 당연히 가족이 받았으면 알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러니까 당연히 알 것이고 따라서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는데, 이건 포괄적 뇌물죄가 성립하려는 직접 돈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가족이 받았으니까 당연히 알 것이고, 하지만 증거가 안 나와서, 그래도 포괄적, 휴….

이 정도 검색만으로도 체력이 상당히 고갈이 되었지만, 그래도 내친김에 하나 더 검색을 해 봤다. 검색 키워드는 ‘권양숙, 논두렁, 시계’

내가 알기로는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1억 원짜리 시계 두 개를 받았다가, 논두렁에 버렸다고 한다. 근데 검색을 해보니 ‘어라, 그게 아니네?’

노무현 전 대통령 부산상고 동창이 밝힌 바에 따르면 박연차 회장이 시계를 건넨 건 권양숙 여사가 아니라 노건평씨 부부란다. ‘아니, 그러면 받지도 않은 시계를 왜 논두렁에 버렸다지?’ 이상해서 더 검색을 해 보니, 노건평씨 부인과 통화 중에 권양숙 여사가 안 받겠다며 이야기를 하다가 ‘그러면 논두렁에 버리든지’라고 말했단다.

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어째서 나는 아무 의심 없이 권양숙 여사가 1억짜리 시계 두 개를 논두렁에 버린 걸로 알고 있는 걸까? 아, 나는 이제 거의 절망 한다. 어디 가서 ‘지식’ 어쩌고 프로그램을 연출했다고 말도 못 꺼낼 것 같다. 이게 다 나의 무식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 이건 다 나의 잘못이다.

▲ 김진혁 EBS PD
진즉에 기사를 보면 바로 인터넷에 들어가서 수많은 기사들을 클릭해 보고 키워드 하나하나를 검색해 보고, 글의 맥락을 살피고, 아니 그걸로 부족하다. 이게 형법에 근거한 죄인지 판례에 근거한 죄인지, 판례라면 어떤 판례가 있었으며, 각각의 판례들은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등등을 미리 잘 이해해서 기사를 보지 못한 나의 부족함과 불찰 때문이다. 절대로 이건 언론의 잘못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누구나 ‘받아쓰기’를 한다. 선생님이 한자 한자 불러 주면 또박 또박 한자 한자 예쁜 글씨체로 공책에 적는다. 그러면 나중에 그 공책을 모아서 선생님이 불러준 그대로 잘 받아쓰면 100점이란 빨간색 글자와 함께 ‘참 잘 했어요’라는 도장을 찍어 준다.

‘언론, 참 잘했어요.’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