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음악’ 꽃가루 실어 나르는 벌이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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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음악’ 꽃가루 실어 나르는 벌이 됐으면”
[라디오스타 시즌3] ⑫ EBS ‘세계음악기행’ DJ 가수 이상은
  • 원성윤 기자
  • 승인 2009.06.09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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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세계 곳곳을 누빈다. “웽”하는 프로펠러 소리를 힘차게 낸다. 타악기 퍼커션의 흥겨운 리듬이 펼쳐지는 삼바의 나라 브라질에서부터 시부야케이의 일본, 유럽의 애시드 재즈까지. 매체에서 좀처럼 접하기 힘든 월드뮤직이 펼쳐지는 이곳, 바로 EBS FM 〈세계음악기행〉(연출 방성영)이다. 런던, 뉴욕, 오키나와 등 해외에서 음반작업을 주로 하는 가수 이상은이 지난 5월부터 DJ를 맡았다.

가수, 화가, 사진가, 시인 등 같은 듯 다른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이상은. 그에게 라디오는 각별한 존재다. 아니,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해 준 매개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담다디’로 강변가요제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1988년, 그는 MBC FM 〈FM 대행진〉을 거쳐 황금 시간대인 밤 10시 〈밤의 디스크 쇼〉에 전격적으로 발탁됐다. 19살의 나이를 감안하면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 “내게 라디오는 스승…참 많은 걸 배워”

▲ EBS <세계음악기행> DJ 가수 이상은 ⓒPD저널
“당시 라디오 DJ를 하면서 조동익, 한영애 선배 등 훌륭한 선배들을 참 많이 만났어요. 그 때가 싱어송라이터 붐이 한참 일었을 때예요. 평론가들도 당시를 르네상스라고 표현 하니까요. 작가가 써준 원고를 보고도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질문도 못했죠. 그래서 힘들어서 울고 그랬는데…. 그때 참 많이 배웠어요.”

이후 그의 음악세계도 크게 변하게 된다. 1, 2집을 연달아 히트시키고, 그는 홀연히 모든 국내 활동을 중단하고, 뉴욕으로 떠난다. 3집 ‘더딘 하루’(1991)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작사, 작곡, 연주, 녹음에까지 이르는 모든 과정을 혼자서 작업하게 된다. 이후 ‘공무도하가’ ‘언젠가는’ ‘비밀의 화원’ 등 색깔 있는 음악들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선보였으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여성아티스트로 국내외에서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도 , 〈세계음악기행〉 청취자들도 프로그램에 거는 기대가 많다. 이상은은 “좋은 음악을 깊이 있고, 월드뮤직을 다루기 때문에 저 스스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면서 “맡은 지 한 달가량 됐는데 이제 안정기에 접어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상은은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라디오 DJ를 도맡아 하는 현상에 대한 단상도 밝혔다. “일본이나 외국의 경우 아티스트들이 DJ를 많이 하는 경우 없어요. 에이브릴 라빈이 DJ 하는 거 보셨어요. 한국은 마치 탤런트들이 드라마 하듯이 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일까. 음악가들이 라디오를 하는 게 장점이 많아 보여요. 그래서 저도 잘 선택한 것 같아요.”

◇ “최근의 라디오, 인스턴트 식품 같아 씁쓸”

이런 이상은에게 음악은 밥보다 더 소중한 존재다. 국내에서도 해외에서 길가다 무심코 들른 레코드 가게에서 CD를 고르며 기쁨을 누리는 그에게 월드뮤직을 찾는 것은 인생의 기쁨이다. “빵 먹을 돈을 아껴서 CD를 산다”는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때문에 그는 최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

“최근 라디오 음악들을 듣고 있으면 대량 생산되는 인스턴트식품을 먹고 있는 것 같아요. 팝 프로그램도 정형화 돼 있어요. 기계로 찍어내는 비트가 가득한 음악들은 들어도 남는 게 별로 없어요. 반면 월드뮤직은 정성스럽게 손으로 만든 음식 같아요. 영양가 있잖아요. 저희 프로그램도 그런 면에서는 한정식 집 같죠? (웃음)”

◇ “난 개척자 같은 의무감 있어”

웃으면서 말하지만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는 그의 표정은 자못 심각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많이 경직돼 있는 것 같아요. 남미의 아버지들은 딸들이 춤을 못 추면 울어요. 그만큼 유흥을 즐기거든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좋은 의미로 부지런하지만, 취미도 없고 놀 줄도 몰라요. 문화예술 쪽도 좋은 게 많은데…. 인간개혁·개조가 일어나야 되지 않나 생각해요.”

한국에서 여성 아티스트로의 삶은 어떤 의미일까. 이상은은 “2, 3번째 삶을 살겠다는 것 보다는 뭘 해도 첫 번째이고 싶었다”면서 “개척자 같은 의무감이 있다. 꽃가루를 실어 나르는 벌처럼 다른 나라의 좋은 것들을 우리나라에 계속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이번에 이상은이 또 무슨 일을 벌였구나. 깜짝이야’하는 느낌이 좋다”면서 “팬들의 기대를 늘 배신하고 싶다”며 내년에 발매될 14집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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