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풀뿌리 닷컴] 이동유 대구CBS PD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으로 많은 국민들이 슬픔에 잠겼다가 조금씩 정상을 회복해 가는 중이다. 격정과 도전의 연속이던 삶만큼이나 죽음도 극적이어서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한때 그를 지지했다 지지를 철회한 사람들이 겪은 충격과 아픔은 사뭇 크고도 깊어 보인다.

게다가 사람들을 더 놀라게 한 것은 살아 있을 적에 그를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실패한 대통령으로 낙인찍기에 주저하지 않았던 수많은 국민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행렬에 끝없이 동참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아마도 대량실업과 고용불안, 극심한 빈부격차 등 사회적,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자신을 투영함으로써 현재적 고통을 잠시나마 잊고 스스로를 위무하려 했다는 심리적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 ⓒPD저널
그러나 이번 서거 국면에서 나를 정말 놀라게 한 것은 그의 죽음을 너무나 냉정하게 바라보는 대구·경북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거기에는 죽음이라는 허무 앞에 모든 원한과 원망을 내려놓고 화해와 용서를 추구하는 우리의 전통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전혀 없었다. 차갑기 그지없는 침묵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대구·경북사람들의 감정은 아마 미움이나 증오가 아닐까.

‘대통령 임기 내내 특유의 승부수로 국민을 쥐고 흔들더니 죽음의 순간마저 극단적인 방식을 택해 자신들의 일상을 뒤흔들고 정치적인 반전의 계기를 삼으려 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그들은 떨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수가 수사적인 ‘일부’가 아니라 매우 많은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은 클 수밖에 없다.

▲ 매일신문 6월1일자 27면.
영결식이 끝나자마자 터져 나온 대구의 모 유력일간지 소속 극우 보수 논객의 기명 칼럼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도대체 그는 무슨 자격으로 천국에서 보내는 고인의 두 번째 유서를 자신의 이름으로 작문했고, 신문사는 또 차마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비아냥과 조롱을 아까운 지면에 줄줄이 늘어놓도록 허락한 것일까?

그것은 대구·경북 사람들의 ‘노무현 미워하기’ 정서가 없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막돼먹은 오버액션이자 저급한 신문 판매 전략이었다. 왜 하나의 지역 사회가 한 정치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이렇게 옹졸하고 극단적인 쏠림현상을 보이는 것일까.

돌아보건대 대통령 노무현은 평범한 대구·경북 사람들에게 큰 해악을 끼친 일이 별로 없다. 오히려 그는 등을 돌린 대구·경북의 민심을 얻기 위해 물심양면의 갖은 공을 들인 대통령이었다. 물론 국가보안법과 사립학교법 개정 등을 시도해 보수적 기독교 교단과 반공주의자들, 그리고 사학재단 관계자들을 자극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평범한 TK사람들에게까지 원한을 살만한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득력 있는 또 하나의 가설은 노무현이 강고한 지역정서에 끊임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것인데, 평범한 TK들은 그것을 자존심을 걸고 지켜야 하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노무현을 거부했다는 설명이다.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운 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TK의 획일성이다. 솔직히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 이러한 획일성의 벽은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그 자리를 다양성이 채울 수 있으리라 기대해 왔다. 그러나 그 희망은 이번 서거 사태를 계기로 다시 회의적으로 돌아섰다.

▲ 이동유 대구CBS PD
부모 세대의 보수적 시각이 구조화 돼 다음 세대에까지 유산으로 되물림 되고 결국 그것이 사회적 가치를 재생산한다면 우리는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 비극적인 상황이다. 허나 어쩌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한 없이 가슴 아픈 이유는 바로 ‘바보 노무현’이 생전에 그토록 넘고 싶어 했던 벽 중에 하나가 그의 죽음 앞에서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이 지역주의의 망령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