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토론’은 얼마나 진화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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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토론’은 얼마나 진화했나
[옛날방송 다시보기(29)] 이정호 참세상 편집국장
  • 이정호 참세상 편집국장
  • 승인 2009.06.1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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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방송사에서 밤 9시 메인뉴스가 시보에 맞춰 정확히 방송되기 시작한 건 80년 이후다. 87년 6월 항쟁의 힘으로 각 방송사의 토론프로그램도 유명 정치인 불러다 놓고 ‘대담’이란 형식으로 비정기적 특집 편성하던 것에서 탈피해 고정 시간을 확보했다. KBS가 1TV를 통해 토요일 밤 10시30분부터 <심야토론>을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초기엔 MBC 출신의 이인원씨가 진행했다. 당시 MBC는 금요일 밤 10시부터 <박경재의 시사토론>을 진행했다.

20년 전 1989년 봄, 두 시사토론 프로그램의 주제는 대충 이렇다. <심야토론>은 1989년 5월20일 ‘오늘의 선생님’, 5월27일 ‘우리의 수출경제’, 6월3일 ‘공명선거’를 다뤘다. <박경재의 시사토론>은 5월19일 ‘박근혜 씨와 함께’, 5월26일 ‘무엇이 참교육인가’, 6월2일 ‘분당-일산 개발’을 다뤘다. 두 주제 가운데 공통되는 건 전교조 창립 문제를 다룬 ‘오늘의 선생님’과 ‘무엇이 참교인가’다.

KBS의 ‘오늘의 선생님’은 4.19때 교원노조 사무총장을 지낸 강기철 비교문명연구소장, 하용도 대한교련 사무총장, 성내운 광주경상대 학장, 김종철 서울대 교수, 이수호 전교조 사무처장, 평민당 박석무 의원, 민정당 함정한 의원 등 7명이 토론자로 나왔다. 충분히 토론자의 기계적 균형은 맞춘 셈이다. 방청객은 해직교사와 중경고 현직교사들이 나왔다.

토론 프로그램에선 진행을 빠르게 하고 지루함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진행자가 말을 끊거나 다른 사람에게로 발언권을 넘기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의 선생님’에선 전교조쪽 얘기가 채 끝나기 전에 말을 끊고 상대편으로 넘기는 사례가 반복됐다. 반면 김종철 서울대 교수가 교원노조 설립불가론을 말할 때는 진행자가 확신에 찬 동의의 어조로 “시기상조다” “네” 따위로 추렴을 달아 시청자들에게 동의를 확산시켰다. 방청객으로 나온 해직교사의 발언 도중에는 “그래서” “장황하게 이야기하시는데” 등의 토를 달아 발언자를 당황하게 만들고 시청자의 부정적 시각을 은근히 유도하기도 했다.

진행자만 편향적인 게 아니었다. 카메라도 편견을 드러냈다. 교원노조를 비난하는 한 시청자의 전화를 받을 땐 카메라가 멀리서부터 서서히 진행자를 클로즈업시켜 진행자의 “숙연해 하는” 얼굴을 부각시켜 극적 효과를 보탰다. KBS는 교원노조 설립 찬반을 묻는 시청자 전화의 집계결과를 자막으로 보여줄 때도 편향성을 드러냈다. 전화로 의견을 말한 시청자가 모두 251명이었다. 이 가운데 1위가 교원노조 결성 반대로 47명이었다. 2위는 노조 결성에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단체행동 자제를 요구한 내용이 39명, 3위는 교원노조 결성 찬성으로 36명이었다. 2, 3위를 합쳐 교원노조 찬성이 75명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억지로 교원노조 반대를 1위로 만들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MBC는 <박경재의 시사토론>이 다룬 ‘무엇이 참교육인가’에서 전형적인 양비론을 드러냈다. 이날 현장토론에선 교원노조 찬성론자가 일방적으로 이겼다. 그러나 토론을 마감하면서 진행자는 교사들에게 법 질서를 절대로 벗어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참교육에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민주적 질서를 깨지 않는다면 잘못된 탄압이나 방해를 하지 말 것을 당부해 한쪽으로 기울어진 토론의 축을 기어이 중화시켰다.

▲ 이정호 참세상 편집국장

서로 다른 견해의 단순한 나열로 균형을 억지로 확보하려는 기계적 양적 분배에 급급하는 TV토론 프로그램의 뻔한 균형감각은 때때로 질의 불균형을 교묘히 은폐하는 요식행위가 돼 국민들의 판단을 더욱 어렵게 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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