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여기 주목을 끄는 ‘성인가요 프로그램’이 있다. 지상파만큼 돈은 못써도, 10대 일색의 가요 프로그램이 브라운관을 점령한 가운데 5년이 넘는 시간동안 폐지의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지역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고군분투하는 성인가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TJB대전방송 〈전국TOP 10 가요쇼〉(연출 정용진, 이하 가요쇼)다.
◇ 지역민방 9개 컨소시엄으로 참가
〈가요쇼〉는 지역 방송사들의 궁여지책 끝에 나온 프로그램이다. 지역 민영방송 9개 방송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으로 참여했다. TJB대전방송이 제작하고, KNN부산방송이 판매하고, 방송은 서울지역을 제외한 제주, 강원, 부산, 광주 등 전국적으로 방송된다. 최근엔 OBS경인TV가 이를 구매해 방영하고 있고, 케이블 성인가요 전문채널 아이넷(inet)도 방송하고 있어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주변 식당에서 한 번쯤 스쳐지나가며 봤을법하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난해 10월, 금융위기로 인해 제작비는 20%가 삭감이 됐고, MC 개런티와 가수 섭외 비용을 댈 수가 없어 프로그램은 폐지를 확정됐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가수 장윤정과 그의 소속사 측에서는 “없어져서는 안 되는 프로그램”이라며 발 벗고 나섰다. 장윤정은 ‘노 개런티’로 프로그램 출연을 약속해 지난 2월부터 MC를 보고 있고, 장윤정의 소속사 인우프로덕션은 프로그램에 1억 5000만 원을 들여 공동투자를 했다. 대신 DVD 판권을 가져가는 형식으로 서로의 조건을 충족시켰다.장윤정, 박현빈, 윙크 등 신세대 트로트 가수들을 길러낸 인우프로덕션 홍익선 사장은 “이 사회는 부모님들이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온통 TV에는 10~20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만 채워져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며 “〈가요쇼〉를 관람하면서 기뻐하고 좋아하는 우리 어른들을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고 투자를 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 장윤정·박현빈 “트로트 살릴 수 만 있다면”
257, 258회 공개방송이 진행된 지난 10일 대전 CMB아트홀. 이날 객석 1200석은 각지에서 모인 어르신들로 빼곡히 매워졌다. 제작진은 ‘이정도에 뭘 놀라냐’는 눈치다. 지난달 울산에서 진행된 방송에서는 4만 명이 모이며 〈가요쇼〉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는 후문이다. 이날도 경남 거창에서 버스 3대를 대절해 올라온 어르신 등 관람객들은 MC 장윤정을 보며 환호성을 보냈다. “어머니들, 안녕하세요~! 장윤정이예요~ 윤정이 실물이 더 예쁘죠? 오예~!”라며 애교를 부리는 장윤정을 보며 아주머니들은 이에 질세라 더 큰 함성과 몸짓으로 화답하며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녹화가 계속됐다.
장윤정은 〈가요쇼〉에 대해 “제가 ‘어머나’를 통해 데뷔하던 2003년에 저와 함께 탄생한 성인가요 음악방송이 바로 〈가요쇼〉”라며 “신인시절 〈가요쇼〉에서 VJ로 활약을 했고, 또 2005년에는 김범수 아나운서와 함께 1년 동안 진행을 맡으며 함께 성장해 온 프로그램이라 애착이 크다”고 말했다. 또 그는 “데뷔 초 트로트 가수로서 설 무대가 많지 않아 고생을 해봤던 터라 무대의 소중함을 안다”면서 애정을 표시했다.데뷔곡 ‘빠라빠빠’를 통해 〈가요쇼〉에서 이름을 알린 가수 박현빈은 “데뷔 이후 1000일 남짓한 기간 동안 하루도 쉬어 본적이 없을 정도로 빡빡한 스케줄이지만 〈가요쇼〉 만큼은 무슨 일 이 있어도 온다”면서 “무대 한 번 서는 게 소원이었던 신인 때를 생각하면 개런티가 없어도 올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열린음악회’ 못지않은 ‘가요쇼’
하지만 〈가요쇼〉가 저예산 제작비에 질이 떨어지는 무대를 가수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모 중견가수는 “〈열린음악회〉 60인조 오케스트라가 〈가요쇼〉 15인조를 못 따라가네”라며 〈가요쇼〉 악단을 추켜 세울 정도다. 미국 뉴욕연예인협회 악단장을 역임하며 한인들을 상대로 십수년간 공연을 해온 김용환 지휘자(김용환 팝스 오케스트라)는 “미국에서만 10년 넘게 공연을 했지만, 지난해 2월 〈가요쇼〉의 부름을 받고 아예 한국으로 들어왔다”며 “훌륭한 단원들과 함께 좋은 음악을 제공하기 위해 늘 공부하고 연습하고 있다”고 열의를 표시했다.
가수 류기진은 “가수들에게 〈가요쇼〉가 최고의 무대로 손꼽히는 것은 바로 무대와 조명, 무엇보다도 음향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가수들이 노래 부르기에 너무 편하다”고 말했다. 쌍둥이 트로트가수 윙크는 10대 가요 프로그램에 빗대며 “음악전문 방송에도 자주 나가지만 〈가요쇼〉 만큼 댄스 트로트를 충분히 소화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정용진 PD는 ”지역 민방은 방송통신위원회 제재는 받을지 모르지만, 지원은 사실상 없다. 민영방송에도 정부의 지원이 활발한 일본이 부럽다”고 말했다. 정 PD는 “지자체의 손길을 바라지만, 어려워진 경기 탓으로 지원해주는 곳은 없다”며 협찬에 대한 갈증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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