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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세상읽기]

▲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88만원 세대 저자)
올해 두 편의 한국 만화책을 읽었다. 하나는 최호철이 전태일 열사의 일대기를 5편의 책으로 엮은 〈태일이〉였고, 또 다른 하나는 최규석의 〈100℃〉였다. 하나는 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또 다른 하나는 87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공통점은 두 가지 모두 우리에게 아주 잘 알려져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최호철과 최규석의 스타일 차이만큼이나 두 개의 작품은 약간은 상이한 감성 터치를 하고 있는데,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판매량이라고 할 것이다.

배본소 중심의 만화 제작에서 최근의 웹튠과 단행본 중심으로 만화 제작방식이 전환되고 난 이후에 만화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의 상위에 들어온 적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규석의 〈100℃〉는 그야말로 뜨겁다. 물이 100℃가 되어야 끓는데, 99℃에서 멈추는 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겠느냐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책은 아마도 이번 여름 최고의 문제작이 될 것 같다. 사실 이 책이 발간된 것 자체가 이미 인터넷에서의 열기를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단행본으로까지 발행할 생각이 없었다고 알고 있는데, 인터넷에서 뜨겁게 진행된 열기가 실제 출간까지 이어졌고, 이게 다시 밑바닥에서 열기를 만들고 있다.

만화 〈태일이〉가 한국에서 프로 문학의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면, 만화 〈100℃〉는 이제 프로문학이 출간을 목표로 하는 단계에서 한국 독자들의 감성을 가장 먼저 적셔주는 최전선으로 갔다는 것을 의미하고, 상업적으로도 의미 있는 순간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년에 일본에서 고바야시 다키시의 1929년 〈게공선〉이 재발간되면서 아마 이제는 50만부가 넘어갔을 정도로 뜨거웠었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미니북으로도 발간되었는데, 이 책을 읽고 수만 명의 일본 20대가 일본 공산당에 가입하거나 지역 비정규직 노조에 가입하는 등 이 책의 반향은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급기야 이 우울하면서도 딱딱한 얘기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한국과 일본의 사회적 현상은 10년 격차를 두고 벌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오타쿠, 프리터, 은둔형 외톨이 현상이 일본에서 사회적으로 문제로 논의된 지 거의 10년 후에 한국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전개된 경향이 있다. 문학에서도 이 차이가 좀 생기는데, 일본에서 사소설 열풍이 분 이후에 한국도 오랫동안 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분자화 된 개인들에 대한 얘기들이 열풍이 있었다.

▲ <100℃> (최규석, 창작과 비평사, 2009)
그러나 20대 청년실업과 알바 현상에 대해서는 대단히 드물게 한국과 일본이 거의 공조 현상을 보이고 있고, 어쩌면 해방 이후로는 처음으로 한국과 일본이 동일하게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게공선〉과 불과 1년 격차를 두고 한국에 최규석의 〈100℃〉가 그야말로 뜨거운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것은 사실상 일본과 한국, 두 나라에서 거의 동시에 오랫동안 수면 아래에 있었던 프로 문학, 즉 ‘가난한 프로레타리아의 문학’이 잠을 깨고 떠오르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 같다. 여기에는 일본의 자민당, 한국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중들의 지독할 정도의 피로감과 함께 이제는 개선 혹은 보수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꼬여버린 양국 자본주의의 문제점 특히 노동의 재생산에서 벌어진 척박한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프로 문학을 보면서, 다시 한 번 한국의 TV가 읽어내는 시대의 감수성 혹은 시대의 첨병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규석은 나에게 “이해하기 위해서 경험을 할 필요는 없다”라는 명제 하나를 가슴에 남겼다. 흔히 87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87년의 당사자들은 “너희는 그 시대를 모른다”라는 ‘꼰대짓’을 하기 일쑤다. 그러나 오히려 최규석은 이해당사자가 아니기에 더 담백하게 그 시대를 아주 가는 스토리 라인으로 풍성하게 감정선을 건드리고, 이것이 한국의 10대와 20대에게 제대로 꽂혔다. 50대 데스크의 ‘왕꼰대’들의 감성으로는 지금의 10대와 20대의 서정과 상상력을 건드릴 수가 없다는 말일까? 자, 방송계에서는 ‘프로 문학’이라는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새로운 트렌드를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 기대되는 바이다.

이제 한국 문학도 80년대로 가고, 9시 뉴스 스타일도 80년대로 간 것 같다. KBS 라디오는 벌써 몇 달 전에 80년대로 간 듯하다. 한 쪽은 87년 스타일로, 한 쪽은 전두환 스타일로, 다시 한 번 프로문학과 서정문학의 경쟁이 시작되는가? 꼰대와 젊은이의 싸움이 다시 한 번 스크린을 놓고 붙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규석의 〈100℃〉는 TV가 바보가 되면 사람들은 다시 책을 붙잡고, 문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탄 아닐까? 한국의 프로 문학은 이제 기지개를 켜고, 왜 저항으로 문학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가, 그걸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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