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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 넛 ‘말달리자’

|contsmark0|살다보면 그런 거지 우-후 말은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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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모두들의 잘못인가 나는 모두 알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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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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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9|노래하면 잊혀지나 사랑하면 사랑 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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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2|돈 많으면 성공하나 차 있으면 빨리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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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5|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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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8|닥쳐 닥쳐 닥치고 가만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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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1|우리는 달려야 돼 바보놈이 될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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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4|말달리자 늙는 거지 그댈 위해 일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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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7|모든 것은 막혀 있어 우리에겐 힘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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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0|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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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3|사랑은 어려운 거야 복잡하고 예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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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6|잊으려면 잊혀질까 상처받기 쉬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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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9|닥쳐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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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2|우리는 달려야 돼 거짓에 싸워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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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5|말달리자 말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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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4|‘말달리자’에는 세 명의 ‘거지’가 등장한다. ‘살다 보면 그런 거지’와 ‘이러다가 늙는 거지’와 ‘복잡하고 예쁜 거지’가 그들이다. 크라잉 넛이 무대에 섰을 때 나는 세 번 놀랐다. 우선 그들의 행색이 너무도 ‘거지’ 같아서 놀랐다. 드라마 <왕초>의 촬영 현장에서 갓 빌려 온 엑스트라를 방불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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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7|두 번째는 그들이 뿜어내는 소리의 서늘함에 놀랐다. 마치 이십여 년 전 산울림의 ‘아니 벌써’를 처음 들었을 때의 지진파가 되살아나 콩닥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쓸어 내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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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0|세 번째는 이 ‘거지’들이 던지는 말의 진정성(선정성이 아니다)에 놀랐다. 그들은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실은 악을 쓰고 있었다) 그 소리는 썩어 가는 세상에 던지는 비수였고 폭탄이었다. 우리가 어디쯤에서 쉬쉬하며 파묻은 의식의 탯줄이었다. 바로 그것은 주·체·성 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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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3|크라잉 넛의 모습과 노래에선 이른바 깡이라는 게 느껴진다. 깡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오기와 용기다. 칼끝만 보여도 소름이 돋아 제풀에 무릎 꿇는 비굴함이 아니다. 왜 그렇게 비겁하냐고 되물으면 ‘냅둬. 이렇게 살다 죽을래’ 하는 안일함과는 대척점에 선 것이 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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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6|나의 이미지 사전에는 두 개의 말달리는 장면이 인쇄되어 있다. 하나는 그 배경이 일송정과 해란강이다. ‘지난 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의 의연한 이미지다. 또 하나는 젊은 날의 서정주가 그린 그림 속에 있다. 생명파라고 불리던 시절에 지은 ‘꽃밭의 독백’이라는 시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버렸다’ 서정주는 이어서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치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 앞에서 울고 섰을 뿐이다’라고 쓰린 감정을 마무리했다. 바로 한계상황의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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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9|크라잉 넛의 ‘말달리자’에는 두 가지 다른 방향의 소리가 상존한다. 하나는 입 닥치고 조용히 사는 게 좋을 거라고 위협하는 소리다. 깝죽대다가 낙마하기보다는 차라리 바보놈이 되라고 강요하는 소리다. 열심히 일하고 돈벌어 차도 사고 그렇게 살다 죽으라고 유혹하는 소리다. 자존심 따위는 잊어버리는 게 나을 거라고 그 소리는 을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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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72|또 하나는 그 길들임과 기만에 맞서 힘차게 싸우라고 부추기는 투쟁의 소리다. 누군가에 의해 그어진 선을 따라 눈치보며 살 수는 없다는 각성의 소리다. 허위와 안일 따위와는 협상테이블에 마주앉지도 말라고 들쑤시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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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75|결국 한쪽에선 닥치라고 하고 한쪽에선 달리자고 한다. ‘말달리자’에서 말은 사람의 특성인 말과 네 발굽을 가진 말의 이중구조다. 그리고 내뱉는 말이건 내닫는 말이건 그것을 가로막는 어떤 힘에 결사항전하는 노래다. 살다 보면 그런 거라고 자위도 하고 노래로 슬픔을 달래 보기도 하지만 피끓는 젊음은 막혀 있는 세상 언저리에 주저앉으려는 자신에게 채찍을 들이댄다. 입 닥치고 조용히 살기에는 천방지축 들끓는 저항의지가 그를 잠재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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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78|노래방에서 아무리 따라 부르려 해도 ‘말달리자’를 원곡의 냄새대로 부를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한참 동안 실의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내게는 이미 불의 앞에 악을 쓰는 성대가 퇴화해 버린 것일까. 서슬 퍼런 젊음이 도망가 버린 (내가 그것을 쫓아낸 것인지…)내가 슬퍼졌다. ‘말달리자’는 타락한 세상의 속도를 멈추게 하려고 악쓰는 노래이다. ‘이렇게 살다 죽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의 비굴한 (처연한?) 표정 위에 뿌리는 부패 방지 왕소금이다. 무당이 주문을 외어 잃어버린 힘을 복원하듯 불의와도 적당히(?) 사이 좋게 지내려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말달리자’를 외쳐 보자. 잊었는가. 가슴 속 말은 해야 말이고 우리 속 말은 달려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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