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이 방송을 ‘장악’하면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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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프랑스=표광민 통신원

재벌이 방송분야에 진출할 때, 어떤 일이 생길 것인가. 어떤 이들은 신규사업자의 진출로 방송의 다양성이 보장되고 고용이 창출될 수 있다고 한다. 경제적 효과를 잠시 뒤로 한 채 생각해 본다면, 방송이 재벌을 더 이상 비판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재벌의 방송 장악을 거부한 프랑스에서는 지금도 방송은 독립성을 지키며 재벌을 비판하고 있다. 이번에는 프랑스 공중파 France 3와 거대재벌 볼로레(Bollore)가 라운드에 섰다.

볼로레 기업은 1822년으로 역사가 올라가는 볼로레 가문의 족벌 기업으로, 본래는 담배에 사용되는 종이 등을 만들어 오던 이름난 제지회사였다. 그러다 현재의 회장 뱅상 볼로레(Vincent Bollore)가 취임하면서 기업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뱅상 볼로레 회장은 다른 회사들을 인수합병하며 자사를 거대재벌로 재편했다. 그 결과 볼로레 그룹은 교통, 에너지에서부터 미디어, 통신까지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다. 특히 2005년부터는 케이블 종합채널인 Direct 8와 아침에 배포되는 〈Direct Matin〉과 저녁에 배포되는 〈Direct Soir〉, 두개의 무료신문을 창간해 세계 6위 규모의 미디어 기업이 되기도 했다.

▲ France 3의 시사고발 프로그램 <확실한 증거> 홈페이지.

이 볼로레 그룹의 성장발판은 아프리카였다. 뱅상 볼로레는 1991년 해양운송 회사인 델마-빌줴(Delmas-Vieljeux)를 인수하며 토목, 건설 사업을 필두로 옛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의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에도 볼로레 그룹의 총자산 가운데 20% 정도는 아프리카에 투자되어 있다. 

프랑스 공중파 방송 France 3가 파헤친 볼로레 그룹의 비리 역시 아프리카 개발 사업 와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볼로레를 비판한 것은 이 채널의 〈확실한 증거〉(Pieces a conviction)라는 시사 고발 프로그램으로 2000년부터 시작해, 각종 사회 부조리를 파헤쳐왔다. 이 프로그램이 지난 5월 13일, 볼로레 그룹이 아프리카 토고의 한 신문을 ‘매수’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아프리카 개발사업에는 볼로레 그룹의 경쟁사로 프랑스-스페인계 자본인 프로고자(Progosa)라는 기업 역시 진출해 있다. 두 경쟁사는 2005년부터 토고의 수도 로메 항구 개발 사업으로 대립했는데, 2007년 당시 로메 지방의 한 신문에서 프로고자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게재된 일이 있었다.

〈확실한 증거〉의 취재진은, 로메지역 한 주간지 편집자 오귀스탱 아씨오보(Augustin Assiobo)의 증언을 통해 이 기사가 볼로레 그룹의 후원 아래 쓰여졌다고 보도했다. 즉, 프로고자에 대한 비난 기사는 볼로레 그룹의 한 임원이 돈을 건네준 대가로 작성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확실한 증거〉는 기업이 신문사에 돈을 주는 행위가 아프리카에서는 빈번하다고 덧붙이기는 했다.

이에 대해 볼로레 그룹은 지난달 30일 프랑스 방송자문위원회에 항의서한을 제출해 France 3에 대한 제재조치를 요구했다. 〈확실한 증거〉가 자사에 대한 부정확하고 편파적인 내용의 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볼로레 그룹 측은 한걸음 더 나아가 ‘기사 매매’를 증언한 오귀스탱 아씨오보가, 오히려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거짓말을 한다고 비난했다. 현재 볼로레 그룹과 France3는 방송자문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볼로레 그룹의 입장에서야 방송이 자신들의 잘못된 행적 대신 번듯한 겉모습을 보여주길 바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이 그룹이 적극적으로 미디어 시장에 진출해 방송사를 만들고 아침 저녁으로 무료신문을 배포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재벌이 방송을 장악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지난해 9월 논의되었던 미디어 사업분야 규제 완화 방침이 사회 전반의 비판으로 한 달여 만에 철회된 것도 재벌의 방송진출이 가져올 재앙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몇몇 유력 신문들이 이 보고서가 마치 통과된 것처럼 오보를 낸 바 있다. 아마 해당 신문사 담당기자들의 프랑스어 실력에 문제가 있었거나 신문사의 양심에 문제가 있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 프랑스=표광민 통신원/ 프랑스 고등교육원(EPHE) 제 5분과 정치철학 박사과정

미디어법을 환영하는 이들 역시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대부분 재벌일 방송분야 신규사업자들이 방송의 다양성을 확대하고 언론의 독립성을 훼손시키지 않으리라 믿을 만큼 순진하거나, 아니면 속으로는 재벌의 언론장악을 바라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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