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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공태희 OBS 예능제작팀 PD

한·EU FTA가 체결을 위한 협상이 타결됐다. 어떤 이는 농업을 비롯한 다수 분야에서 한·미 FTA이상의 재앙이 될 것이라 우려를 나타냈다. 어떤 이는 산업별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엇갈리는 사안임에도 신속한 협상 타결에 박수를 보냈다. 그들은 한국 경제가 꾸준하게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속적인 수출증대라고 한다. 한국이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다자간 자유무역만이 구원이라고 한다.

물론 한국 경제 기적의 동력은 단연코 해외 수출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FTA의 정수인 자유무역 정신으로 일구어낸 기적이 아니었다. 높은 관세장벽을 유지했던 강력한 국내산업 보호 정책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보호무역으로 성장한 한국 산업이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세계에서도 으뜸가는 수준의 공산품을 자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우리도 여느 선진국처럼 빗장을 걸어 잠그고 발전한 후 후발국이 따라오지 못하게 하는 이른바 ‘사다리 걷어차기’에 동참할 시기일까?

▲ 한겨레 7월14일자 6면.
문제는 우리 스스로 보호무역을 고집할 이유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의미의 기간산업인 농축산업은 물론 교육, 의료 등 공공분야는 자유방임의 손에 맡겨 놓아서는 곤란한 일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루기 위해서 (영미식의)선진국 경제 시스템의 전격 채택을 외치는 것도 위험하다. 작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보호와 규제를 완전 철폐한 자유주의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를 전지구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참고로 세계 초일류 수준의 경제 기술 대국인 일본조차 어느 나라와도 FTA를 추진하지 않고 있다.

FTA는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다. 특정 산업은 무너지지만 다른 특정 산업에서 초과이익을 얻게 되므로 전체 경제에 보탬이 된다는 숫자놀음으로 단정 지을 일이 아니다. 산업간 계층간 양극화를 당연하게 인정할 것인가, 아니라면 취약 산업과 (이미 빈곤층이 되어버린)서민 그리고 교육과 의료 등의 공공부문을 사회 전체가 나누어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거시적 국가 경제는 물론 그 국가를 이루고 있는 모든 부문과 그 속에서 실제 살아 숨 쉬고 있는 모든 인간 개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철학적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경제야 말로 진지하게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므로. 

보호무역만이 절대선이고 자유무역은 죄악이라는 순진무구한 이분법적 주장이 아니다. 한·EU FTA의 경제 효용성을 떠나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세계 최대의 경제규모인 EU와 자유무역협상을 현재와 남북관계와 전혀 무관한 듯 인식하고 있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이다. 한·EU FTA와 남북문제는 경제적으로 직접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은 통행 불가능한 사실상의 국경선으로 가로막혀 있다. 한·EU FTA가 타결되어 북한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 횡단철로를 이을 수 있다면 유럽까지 뱃길로 20~30일이 걸리는 무역항로를 육상으로 10~15일 이내로 단축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우리 사회 어느 한 쪽에서는 제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공태희 OBS 예능제작팀 PD

적어도 한·미 FTA 협상에서는 개성공단 상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최대 쟁점 중 하나였다. 이번 한·EU FTA 협상에서 개성공단 상품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지하게 이루어졌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개성공단 남북간 실무접촉도 4번의 만남을 끝으로 사실상 결렬 위기로 치닫고 있다고 한다.
한·EU FTA가 피할 수 없는 숙명인지는 몰라도, 시베리아 횡단 철도까지 다다를 수 있는 경의선 복원처럼 남북화해에도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논의는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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